‘괴물 오피스텔’ 논란에도 과천 e편한세상 시티 건립 강행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nice@sisajournal-e.com)
  • 승인 2019.06.06 08:00
  • 호수 15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적률만 1200%대로 인근 주민 반발 거세…뒤늦게 경관심사 진행해 특혜 논란도

고층 주거시설이 내 집 인근에 들어오는 것을 반기는 게 그동안 부동산 시장의 관례였다. 이 시설이 일대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며 집값 전반을 끌어올리는 ‘상승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과천의 상황은 반대였다. 최고 28층 높이로, 지역 내 최고층 오피스텔의 착공을 앞두고 시행사와 지자체, 주민들 간 내홍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 감사원이 행정감사까지 진행 중이지만 사업 주체 측은 예정대로 6월 분양을 강행한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1-22 e편한세상 시티 과천 공사 현장 ⓒ 시사저널 박정훈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1-22 e편한세상 시티 과천 공사 현장 ⓒ 시사저널 박정훈

말 많던 오피스텔, 당초 계획대로 6월 분양

문제의 오피스텔은 과천시 별양동 1-22번지 일원에 건축 예정인 ‘e편한세상 시티 과천’이다. 과거 코오롱 본사 사옥을 허물고 지하 7층, 지상 28층 1개 동, 총 549세대로 구성된 오피스텔을 짓는 사업으로, 과천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와 대림산업이 각각 시행과 시공을 맡았다. 올해 3월말 기존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가시설물(펜스)이 바람에 주저앉으며 시로부터 한 차례 철거중단 명령을 받았지만, 이 사업장을 둘러싼 잡음은 이미 2년여 전부터 시작됐다. 과천시가 1218%로 전국에서 유례없는 오피스텔 용적률(대지 연면적에 대한 건축 연면적 비율)을 허가해 줬기 때문이다.

과천시는 정부청사 이전으로 인한 상업지역 침체와 건물의 노후화 개선 차원에서 지구단위계획상 용적률을 완화하며 재건축 활성화를 유도했다. 그런데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기업 유치나 상업시설 신축 없이 오피스텔 건립만 추진했다. 개발 주체인 시행사가 과천시의 용적률 완화 조치를 활용해 소위 돈이 되는 오피스텔 분양사업에만 몰두한 까닭이기도 하다. 결국 과천시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1200%가 넘는 ‘괴물 오피스텔’을 지을 명분을 마련해 준 셈이 됐다.

더군다나 과천시는 조례 해석상 경관심의 진행 여부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제때 해야 할 경관심의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주민들의 반발로 감사원의 행정감사가 추진됐고, 과천시는 뒤늦게 경관심의에 나서면서 사업자 특혜 의혹도 일고 있다. 주민들은 “국내 최고의 빌딩숲인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평균 용적률도 800%다. 하물며 전원도시로 이름난 과천에서 1200%가 넘는 용적률은 말이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사업 주체 측은 6월 분양을 위한 견본주택 개관 및 홍보 등 준비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감사가 진행돼도 행정 절차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천시 관계자는 “감사 진행 중에도 분양과 관련한 행정 절차는 진행해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시행사도 시민 의견을 일부 반영해 당초 599세대에서 549세대로, 용적률도 1300%에서 1200%대까지 낮췄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과천시는 상업지역 도시관리계획 검토용역을 오는 7월초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주민들의 반발이 계속된 데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시민들은 ‘감사원 감사 결과와 도시관리계획 용역 결과를 사업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적용할 게 아니라면 왜 한 것이냐’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과천에서는 현재 이곳 외에도 그레이스호텔(용적률 1298% 적용 오피스텔)과 미래에셋 연수원 부지(용적률 400% 적용 오피스텔) 등 평균보다 높은 용적률로 성냥갑 오피스텔 건축이 추진 중이다. 과천은 좀처럼 보기 힘든 천혜자연과 주거단지가 어우러진 수도권 내 몇 안 되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번 오피스텔 분양 및 착공이 이뤄지면 비슷한 시기, 높은 용적률로 인허가를 받은 고밀도 오피스텔이 줄줄이 들어서며 기존 도시 이미지와 정체성이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지 주민들은 “과천시가 개발업자의 이익을 보전해 주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받았다”고 주장한다. 상업지역 본래의 용도에 맞지 않는 고밀도 주거시설 등장으로 기반시설 부족 현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통상 오피스텔은 아파트와 달리 교통유발부담금이나 학교용지부담금 등을 내지 않는데, 높은 용적률 탓에 다세대가 입주할 경우 도로나 학교 부족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오피스텔 건축허가 시 받는 법정 주차대수는 지자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일반 아파트보다 훨씬 적어 인근 주차난도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천에 사는 30대 주부 A씨는 “오피스텔 예정지는 대로변이 아니라 2차로 수준의 이면도로다. 용적률만 올려 과도한 거주자를 수용하면 지금도 심한 교통체증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학교 문제는 더 심각하다. 오피스텔의 경우 1인 가구뿐 아니라 일반 아파트와 같은 20~30평대 평형도 있는데, 과천에는 중학교가 2곳이 전부다. 수용이 쉽지 않은데 단순히 수익성 논리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학교·교통 등 기반시설 부족도 문제

과천에 앞서 용적률을 완화한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이 같은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집값 안정화 차원에서 공공주택 확충에 힘을 쏟아 왔다. 최근 그 대책으로 상업지역 등 도심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주거 용적률 한시적 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오는 2022년 3월까지 3년 동안 상업지역의 주거용 용적률을 당초 400%에서 600%로 올리고 준주거지역의 상한 용적률은 400%에서 500%로 상향 조정한다. 개정된 도시계획 조례를 통해선 상업지역 내 약 1만2400가구, 준주거지역 내 약 4400가구 등 총 1만6800가구의 도심 내 추가 주택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 도심 접근성이 좋은 입지에 주택을 공급한다는 측면에서는 환영받지만 일각에서는 현재 과천에서 벌어지는 기반시설 부족현상이 서울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상업지역 내 고밀도 주거단지 증가는 주거의 쾌적성 확보 및 상업기능이라는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고밀도 주택이 상업지구에 들어서는 것은 주변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면밀히 검토한 후 기존 도시계획이나 인구계획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