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냐 진흥이냐’…게임 둘러싸고 부처 갈등 가열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0 15: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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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 “정부가 해법 내놓지 못하고 있다” 비판

게임 탓에 불거진 문재인 정부의 내홍이 ‘인사 논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록한 이후 국내 보건행정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와 게임산업 진흥정책을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간 갈등 양상이 표면화하고 있다. 총리실까지 나서며 부처 간 갈등을 조정하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입장 간극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김용삼 문체부 1차관을 비롯한 문 대통령의 이른바 ‘게임복심’들이 부처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시사저널과 만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때 ‘바다이야기’ 사태 당시 게임업계와의 유착설 등이 제기됐던 김 차관을 비롯한 몇몇 정부 인사들이 노골적으로 게임사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탓에, 온라인 게임의 사행성 논란 등 부작용은 정부 관심 밖의 영역으로 멀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가 강조했던 ‘소통의 정치’가 유독 게임 정책에선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4월19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김용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월19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김용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게임업계 유착설 휘말렸던 김용삼 1차관 구설

"게임을 마약처럼 생각하는 부정적인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2017년 4월14일, 디지털경제 국가전략 대선후보 초청 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게임업계는 반색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보다 나은 환경에서 사업을 해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일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친(親)게임 성향의 인사들을 포진시켰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바로 김용삼 문체부 1차관이다. 김 차관은 비고시 출신으로 1급 실장까지 올랐다. 이른바 ‘고졸 신화’로 불린다. 김 차관은 과거 문화관광부(現 문체부)가 1998년 게임업무를 일원화해 맡았을 당시 게임산업 담당 사무관을 지냈다.

청와대는 김용삼 차관의 임명 배경으로 "고졸 출신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주요 보직을 역임한 입지전적 인물로, 합리적인 업무처리와 공감 능력을 토대로 문화예술 현장과의 소통, 문화산업 경쟁력 강화 등 현안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김 차관의 임명을 두고 보수진영과 게임업계에서는 뒷말이 무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차관이 과거 게임음반과장(2003년 6월~2005년 8월)으로 재직할 당시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졌다는 게 문제가 됐다. 바다이야기 논란이 불거진 직후 김 차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무과장으로 전보됐는데, 이를 두고 상품권 도입 ‘정책 실패’ 책임을 묻는 질책성 인사라는 의혹이 일었다.

김 차관은 게임업계와의 ‘유착설’에도 휘말린 바 있다. 2006년 검찰은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인 안다미로의 김용환 대표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김 차관을 기소했다. 김 차관이 안다미로 주식 5000만원어치를 샀다 손실을 입자 손실액을 이 회사 대표로부터 돌려받은 게 화근이 됐다. 검찰은 이를 뇌물로 봤다. 이후 1년여의 공방전이 오간 끝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2007년 6월 김 차관 손을 들어줬다. "김 과장(現 차관)이 다른 투자자들과 달리 혜택을 받아 김용환씨로부터 신주인수대금을 반환받았다고 볼 수 없고, 김용환씨가 업무 편의를 제공받기 위해 김 과장에게 특혜를 제공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무죄 판결 이유다.

뇌물수수 혐의는 벗었지만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김 차관에 대한 업계 평판은 차갑게 식었다. 당시 한 게임사에 근무했다는 관계자는 “(김 차관이) 게임업계에 큰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게임물 사행화 문제를 막지 못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며 “무죄를 받긴 했지만 자신이 관리·감독해야 할 민간기업에 투자하고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게 과연 공무원으로서 맞는 자세인지도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가 5월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  연합뉴스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가 5월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 연합뉴스

총리실에 날라온 진정서 '親게임정책 과해'

국내 게임 감독 실무를 담당했던 오랜 고참이지만, 그만큼 각종 구설에 시달렸던 게 김 차관이다. 그가 다시 국내 게임정책을 주무르는 문체부로 ‘컴백’하는 것을 두고 우려가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근 이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하자 국내 게임사들이 WHO 결정에 반발했다. 복지부가 WHO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표하며 게임사와 날을 세우자 김 차관을 비롯한 문체부 측이 게임사들의 이익을 강하게 대변하고 나서면서 ‘부처 간 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정부 내 난맥상이 빚어지자 급기야 이낙연 총리까지 부처 간 반목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게임 관련 규제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번 내홍에 대해 ‘예고된 갈등’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문 대통령이 게임을 육성 산업으로 분류한 뒤, 과거 정부에서 논란이 일었던 김 차관까지 다시 불러들였다는 것은 게임사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위한 ‘큰 그림’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WHO를 비롯해 향후 게임과 관련해 어떤 부정적 분석·우려가 제기되더라도 문체부와 청와대는 귀를 열지 않을 것이란 불신이 복지부를 비롯한 사감위, 게임 관련 시민단체에 팽배해 있다. 실제 최근 정부가 온라인 게임의 월 결제 한도 폐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알려지면서, 이 같은 우려는 더 확산되는 모양새다.

취재 결과, 게임 관련 시민단체인 ‘중독예방시민연대’와 ‘도박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모임’은 지난 6월1일 국무총리실에 ‘정부가 사행성 게임으로부터 발생되는 중독 및 질환과 사회적 폐해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며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게임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이 게임 중독과 사행성 조장 우려 등은 등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김 차관의 의견을 듣기 위해 문체부에 연락처를 남겼지만 회신이 오지 않았다. 다만 게임 업무를 담당하는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게임은 이제 영화와 같은 하나의 콘텐츠 범주로 봐야 한다. 어느 소비자가 한 달에 영화를 50만원어치 본다고 나라가 규제하지는 않지 않나. 게임도 마찬가지로 이용자가 즐길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며 “어느 정책이든 찬반은 있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여러 의견들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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