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시간에 겸업” 배달 서비스로 투잡 뛰는 2030
  • 한다원 시사저널e 기자 (hdw@sisajournal-e.com)
  • 승인 2019.06.20 11:00
  • 호수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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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투어족 증가로 배달앱 시장 가파르게 성장
직장인들 사이 ‘1인 1직장’ 개념 점차 약해져

디지털 플랫폼 경제가 최근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하는 공유경제 또는 플랫폼 기업은 승차, 숙박, 가사, 배달 등 여러 영역으로 확산하면서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기존 산업 질서도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배달 서비스는 일에 쫓겨 개인 시간이 부족한 ‘타임푸어족’(time-poor族)에게 시간을 벌어준다는 측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배달음식, 온라인쇼핑 등을 즐겨 하는 우리나라는 온라인 앱을 통한 배달 주문 서비스가 일상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타임푸어족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가 늘면서 배달앱을 통해 ‘투잡(two-job)’ 전선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온라인 앱을 통한 배달 주문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 배달앱으로 투잡을 뛰는 사람들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최근 온라인 앱을 통한 배달 주문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 배달앱으로 투잡을 뛰는 사람들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플랫폼 경제로 실시간 거래되는 노동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플랫폼 경제의 영역도 덩달아 확장되면서 이른바 ‘플랫폼 경제 종사자’라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플랫폼 경제 종사자는 모바일 앱을 포함한 온라인 매체의 중개·알선으로 일감을 구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득을 얻는 사람을 일컫는다. 요즘엔 퀵서비스, 음식배달, 대리운전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플랫폼 경제 종사자가 등장한 배경엔 타임푸어족의 증가로 커진 배달 서비스 수요 영향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거래액 3347억원, 이용자 87만 명이었던 배달앱 시장은 지난해 거래액 3조원, 이용자 2500만 명 규모로 5년 만에 10배가량 성장했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스타트업뿐 아니라 이커머스 시장 강자로 올라온 쿠팡까지 배달앱 시장에 발을 들였고, 최근엔 편의점까지 동참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배달 서비스 수요와 함께 1인가구, 맞벌이 가족 규모가 커지면서 배달앱을 통한 투잡도 덩달아 각광받고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1인 1직장’ 개념이 점점 약해지는 추세다 보니 배달앱 서비스를 하나의 직업으로 삼는 2030세대도 늘고 있다.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 3월5일 직장인 2050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아르바이트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직장인 5명 중 1명은 직장생활과 병행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투잡을 하는 직장인들의 아르바이트 수입은 한 달 평균 50만원에 달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배달앱 서비스가 투잡으로 인기를 끄는 데는 상대적으로 쉬운 업무와 부가적인 수입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배달 서비스 관련 아르바이트, 근무 경험담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새벽배송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직장인 이아무개씨(33)는 “새벽배송은 시급이 높아 퇴근하고 짧게 하기 좋은 것 같다”며 “몸은 힘들지만 업무 자체가 어렵지 않아 새벽에 잠깐 일해 수입을 얻기 좋다.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퇴근 후 퀵서비스 업무를 하고 있는 김아무개씨(27)는 “재직 중인 직장이 주52시간으로 근로단축이 되면서 퇴근 후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생겨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는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도 얻기 힘들었다”며 “앱을 통한 아르바이트는 필요할 때 바로 일할 수 있어 많은 직장인들이 투잡으로 삼기 좋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근로단축 도입으로 수당이 줄어든 직장인들이 1~2개 겸업을 하는 것은 이제 필수”라고 덧붙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업에 대한 욕구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부업을 통해 생산성 향상, 노동시장 내 수입 격차를 줄이는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달앱 서비스는 무엇이든 집까지 가져다준다. 그것도 다음 날 아침, 이르면 당일에도 배송한다. 주문받은 상품을 다른 업체보다 더 빨리 고객 손에 쥐여주는 것이 유통·물류·운송 등 업계 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경쟁의 핵심 주제이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스타트업 등을 중심으로 배달앱 서비스 종사자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플랫폼 경제 종사자에 대한 노동권 인정이 여전히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계약이 아닌 위탁·수탁계약을 체결하거나 계약 없이 일회성 서비스를 제공해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의 근무 여건에 대한€실태 파악이 어려운 것은 물론, 일하는 도중 다치거나 사고가 났을 경우에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어렵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지난 2016년 ‘노동과 사회적 대화의 현대화 그리고 직업적 경로의 보장에 관한 법’을 제정해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규정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해당 법에 따라 산재보험·직업교육·노동삼권을 보장받는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2015년 독립적인 계약으로 근로를 제공해 노동자로 분류되지 못하는 사람도 ‘공정노동기준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행정 해석을 변경했다. 또 운전기사와 차량, 승객 등을 중개하는 우버(Uber)처럼 앱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운전자들의 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례도 통과시켰다.

 

노동권 인정받는 데는 한계

우리 정부도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기존에 없던 노동자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조속히 고용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선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에 맞는 대응책이 아직 마련되지 못한 상태다. 이성종 플랫폼노동연대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특수고용 종사자로 스마트폰 앱 등 플랫폼을 통해 개별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노동법상 노동자로 규정되지 않고 있다”며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생기는 불이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보호장치가 없는 게 한계”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당장 시급한 문제는 플랫폼 일자리에 4대 보험 우선 적용”이라며 “플랫폼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 확보와 공정한 수수료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는 다양한 직종에 분포돼 있어 이들에 맞춘 대책 수립이나 법제화에 어려움이 따른다”며 “표준계약서 작성, 산재보험 적용을 비롯한 사회법적 보호 방식과 함께 이들의 노동권을 보호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노동에도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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