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은 자, 국회의원 하지도 말라”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1 17:00
  • 호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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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시시비비] 역대급 국회 파행, 누구의 책임인가···책임 소재 가리는 적극적인 노력 필요

무려 76일 동안 굳게 문을 닫고 있었던 국회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 등 98명의 요구로 일단 문을 열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한국당이 6월 국회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반쪽 국회가 예상된다. 한국당을 끌어들일 타협이 이뤄질 수 있느냐와 상관없이, 도대체 이런 식의 식물국회가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파행이 연례행사처럼 돼 온 것이 우리 국회의 역사였지만, 이번처럼 아무 대책 없는 장기 파행은 가히 역대급이었기 때문이다.

장기 휴업에 들어간 국회를 향해 여론의 질타가 계속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담대함을 우리 국회의원들은 보여주었다.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에는 “부지런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고 형제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라”면서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사도 바울의 말이 나온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일하지 않으면서도 세비를 꼬박꼬박 받아가며 국회의원으로서의 온갖 혜택을 변함없이 누린다.

걸핏하면 국회를 거부하고 파행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이 낡고 낡은 구태정치는 언제나 사라질 수 있을까.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달라 갈등을 빚는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절차에 따라 내려진 결정에도 동의할 수 없다며 국회를 박차고 나가 들어가지 않고 버티는 모습은 구시대 정치의 낡은 유물이다. 비판할 것이 있고 싸울 것이 있으면 국회에 들어가서 하라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요구일 정도로 시대는 바뀌었다. 하지만 정치는 바뀌지 않고 있다. 이제 이런 낡은 정치행태가 무한정 반복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국회 파행에 대한 책임의 소재를 국민이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6월18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문 의장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자리를 정하며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6월18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문 의장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자리를 정하며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무리한 한국당의 요구, 장기 파행 가져와

이번 국회 장기 파행의 일차적 책임은 한국당에 있음이 명백하다. 정국운영에 대한 여당의 최종적 책임이나 정치력 미흡을 탓하기에는 한국당의 요구가 너무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황교안 대표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이라며 “한국당을 국회에 못 들어가게 만든 거 아니냐”고 여권에 책임을 돌렸지만, 청와대나 민주당이 한국당을 국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그동안 한국당이 국회 복귀의 조건으로 내세워온 것이 패스트트랙의 철회와 사과였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안건들에 대해 끝까지 반대하는 것이야 야당으로서의 권리지만, 멀쩡히 국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처리된 안건들을 놓고 무한정 국회를 거부하는 모습에서는 어떠한 합리성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당의 국회 거부가 전례 없이 장기화됐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 중심에는 황교안 대표가 있었다. 국회를 거부하고 전국을 돌며 ‘민생투쟁 대장정’ 장외투쟁을 선도했던 그는, 그 뒤에도 “원인이 해소되지 않고 무턱대고 정상화되는 것은 안 된다”며 당내 일각의 국회정상화론에 쐐기를 박았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황 대표의 행보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은 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수치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과 1대1 회담을 하면서 존재감을 확실히 확인하려는 욕심이 큰 것 같다. 원내 전략에도 욕심이 너무 많다.”

황 대표는 차기 대권을 넘볼 수 있는 제1야당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것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무모할 정도의 강공 드라이브를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수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키는 장외투쟁을 이끌어감으로써 관료 출신의 이미지를 벗고 투쟁력을 갖춘 야당 정치인으로 변모하려 했을 법하다. 그러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정치 초년생 황 대표의 강공 일변도 행보는 우리 국회를 식물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우리는 한 정당의 생존을 위해 국회를 볼모로 잡는 데 동의할 수 없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나왔다. 장제원 의원은 황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 거부를 ‘제왕적 리더십’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장 의원은 “‘정치의 중심’인 국회는 올스톱시켜 놓고, 당 지도부의 스케줄은 온통 이미지 정치뿐이다”며 “도대체 누굴 위한 정치이고, 누굴 위한 당이냐”고 물었다. 한국당 내에서도 황 대표의 개인 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함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여권이 한국당의 국회 복귀를 위해 쥐여줄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철회 및 단독 영수회담을 사실상 국회 복귀의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두 가지 모두 청와대와 여당이 받아들이기에는 떠나버린 차가 된 상태다. 한국당도 이를 모를 리 없지만, 장기간 국회를 거부해 오다가 빈손으로 복귀할 경우 지도부 책임론이 당장 불거질 것이다. 그래서 한국당이 새로 제시한 것이 ‘경제실정 청문회’인데, 뭔가 국회 복귀의 명분을 억지로 만들어내기 위한 궁색한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 그런 청문회를 민주당이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청원까지 거론

한국당이라고 언제까지나 국회를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민주당 또한 국회 정상화는 해야 할 테니 어떤 식으로든 타협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한국당 등원의 명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같은 국회 파행이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정치문화를 청산해 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과 언론이 국회 파행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회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으면 싸잡아 국회의원들 욕하는 데서 그칠€게 아니라, 어느 정당 혹은 누구의 책임이 큰가를 가려내야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를 거부하는 자가당착의 정치가 어째서 반복되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이제 필요하다. 과거 독재와 민주의 대결구도였던 시절 국회 거부는 여론에 호소하는 야당의 무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환경은 바뀌었고 국회에서는 흑과 백의 대결이 아닌 합리적인 토론과 절차적 민주주의가 요구되게 되었다. 더 이상 과거식의 국회 거부 투쟁은 여론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럼에도 국회 거부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양 휘두르는 정치는 그만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에 갇혀 있음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국당이 집권의 꿈을 갖는 야당이 되겠다면 제한된 지지층뿐 아니라 다수 국민의 의식 수준을 따라가려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할 일이다.

오죽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민이 믿고 선출했지만, 일하지 않고 헌법을 위반하며 국민을 무시하는 국회의원은 그래서 더 국민이 직접 소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청원까지 올라왔을까.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물론 쉽게 현실화되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을 소환하자는 요구에 담긴 좌절과 분노만큼은 제대로 읽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지만, 지금 우리 국민은 말한다. “일하기 싫은 자는 국회의원 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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