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암 발생’ 익산 장점마을 대책위 “치열한 2라운드 시작될 것”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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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2년여 만인 6월20일 환경부 "주민 암 발병 일부 비료공장 영향으로 추정" 발표
주민들 "20년 고통 달래주기엔 택도 없는 결과" 분노

2001년 마을에 비료공장이 들어선 후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으로 논란이 계속됐던 전북 익산 장점마을에 대한 최초의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조사를 담당한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은 6월20일 주민설명회를 열고 2018년 1월 착수한 주민건강영향조사의 결과를 발표했다. '공장에서 꾸준히 배출해 온 발암물질이 암 발병에 영향을 줬을 거라 추정된다'는 게 이날 결과의 주 내용이었다. 그러나 국립환경과학원의 발표를 들은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환경부가 6월20일 전북 익산시 국가무형문화재 통합전수관에서 연 '장점마을 주민건강 영향조사 설명회'에서 관계자들이 주민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환경부가 6월20일 전북 익산시 국가무형문화재 통합전수관에서 연 '장점마을 주민건강 영향조사 설명회'에서 관계자들이 주민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에 마무리된 조사는 2017년 4월,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시작됐다. 2001년 마을에 문제의 비료공장이 들어선 후 20년 가까이 주민들은 끊임없이 지방자치단체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1급 발암물질이 하루에 수십 톤 씩 공장 굴뚝을 통해 마을로 내려오면서, 피부병과 각종 암에 걸리는 주민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호소에도 지자체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줄곧 요지부동이었다.

그 사이 30명 가까운 주민들이 암으로 사망했다. 최재철 장점마을주민대책위원장은 "민원 몇 번 넣으면 겨우 한 번 지자체 공무원이 조사하러 마을에 왔다"며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과 악취로 숨도 제대로 쉬며 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시사저널 5월16일자 기사 '[르포] 공장 들어서고 주민 30명이 암, "마을이 전멸했다"')

5월6일 방문 당시 만난 전라북도 익산 장점마을 피해자들. 2015년 위암 수술을 받은 김영환씨(위)와 10년 넘게 피부병을 앓고 있는 박연자씨(가명) ⓒ 시사저널 고성준
5월6일 방문 당시 만난 전라북도 익산 장점마을 피해자들. 2015년 위암 수술을 받은 김영환씨(위)와 10년 넘게 피부병을 앓고 있는 박연자씨(가명) ⓒ 시사저널 고성준

암 발병 영향 '추정'된다는 발표에 분노한 주민들

2017년 국립환경과학원이 조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민들은 늦게나마 제대로 된 원인 규명과 대책이 나오길 바라는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번 발표를 들은 마을 주민들은 "20년 고통의 대가가 겨우 이 정도냐"며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비료공장에서 배출된 발암물질이 일부 주민들의 암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추정'된다는 식의 다소 불확실한 결과에 대해 불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재철 마을주민대책위원장은 "우리가 20년 살면서 공장 때문에 얻은 직접적인 고통이 있고 그 기억이 생생한데 이렇게 애매하게 '추정된다' , '개연성이 있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버리면 되나"라며 "이 같은 결과를 갖고 향후 손해배상청구 건으로 법정 다툼을 벌이게 돼도 주민들은 결코 이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조사에 참여한 환경부 담당자는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환경역학조사에서는 오염물질의 배출원을 확인하고, 그 물질이 환경과 인체 내에 노출이 됐는지를 보고, 또 질병과 관련이 있는지도 점검한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물질의 인체 노출을 확인하지 못했고 환경 중에서도 일부 확인 됐지만, 상관성이 완벽히 증명되지 않아 '추정된다'는 식으로 표현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20일 주민설명회에서도 환경부 측은 “가해 비료공장의 파산으로 가동 당시 배출량과 노출량 파악이 곤란하고, 소규모 지역에 사는 주민에 대한 암 발생 조사로 인과 관계 해석에 한계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익산시에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사후 관리를 요청하겠다고도 발표했다. 피해주민들에 대한 향후 소송지원과 구제급여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재철 대책위원장은 "10년 동안 들인 치료비와 수술비를 지원받으려면 가족동의서를 비롯해 증명하고 제출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아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며 "주민들마다 누구는 덜 받고 누구는 더 받고 하다보면 마을의 분위기를 흐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라북도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을 괴롭혀 온 인근 비료공장의 모습. 주요 설비는 이미 사라졌고 바닥은 온통 화학물질로 질퍽거렸다. ⓒ 시사저널 고성준
전라북도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을 괴롭혀 온 인근 비료공장의 모습. 주요 설비는 이미 사라졌고 바닥은 온통 화학물질로 질퍽거렸다. ⓒ 시사저널 고성준

"청와대, 국회에 적극 알려 '암 마을' 오명 벗을 것"

한편 2017년 뒤늦게 공장이 폐쇄된 후, 공장 부지는 여전히 시꺼먼 폐허상태로 방치돼 있다. 이에 주민들은 부지를 시 차원에서 매입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익산시는 이 부지를 '공원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예산 등의 이유로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재철 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이번 발표 후 제대로 2라운드 싸움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최 대책위원장은 "이젠 지자체의 무관심을 방관하지 않고 청와대나 국회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의 피해 사실을 알릴 것"이라며 "'암 마을'이라는 오명을 이제라도 좀 씻어내고 싶은 게 마을 주민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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