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돗물 사태’에 성난 민심…인천시 행정 신뢰도 ‘빨간불’
  • 이정용 인천취재본부 기자 (teemo@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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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 수습에 막대한 예산 투입 불가피…주민들, 시 관계자들 검찰에 고발

5월30일부터 시작된 인천의 ‘붉은 수돗물 사태’는 인재로 드러났다. 정부는 인천시의 총체적 관리 부실에서 빚어진 문제로 결론 내렸다. 사태 초기에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붉은 수돗물로 인해 불안감을 호소하는 서구 주민들에게 원인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가정에서 간혹 발생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붉은 수돗물의 공포가 서구 뿐 아니라 중구 영종도와 강화도 일대까지 확산하면서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학생들의 급식이 중단되는 일까지 발생하자, 학부모들의 분노가 극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6월13일 오후 인천시 서구 당하동 한 가정집에서 주부가 식재료를 손질하기 위해 생수를 따르고 있다. ⓒ 연합뉴스
6월13일 오후 인천시 서구 당하동 한 가정집에서 주부가 식재료를 손질하기 위해 생수를 따르고 있다. ⓒ 연합뉴스

박남춘 인천시장은 붉은 수돗물 사태가 터진 지 19일만에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초기대응이 미흡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시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상수도사업본부장을 직위해제하고 상수도사업본부의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나섰다.

시는 이르면 이달 하순부터 수돗물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복구비와 보상비로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시의 수습 계획에도 성난 민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피해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상수도사업본부장을 처벌해달라며 검찰에 고소‧고발장을 냈다. 민선 7기 출범 1년을 앞둔 박남춘호는 행정신뢰 회복이라는 중대한 숙제를 떠앉게 됐다.  

 

인천시, 보름간 붉은 수돗물 원인도 파악 못해 

5월30일 오후 1시30분께 인천 서구 검단과 검암 지역에 붉은 수돗물이 나온다는 주민 신고가 잇따라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에 접수됐다. 이튿날에도 약 30시간이나 붉은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10개 학교의 급식이 중단됐고, 약 8500세대가 제때에 설거지나 목욕을 하지 못해 불편을 겪었다.

상수도사업본부는 일반 가정에서 온수를 섞어 쓰다 보니 발생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안심하고 사용해도 된다고 밝혔다. 상수도사업본부는 저수조 물탱크 청소 작업 등 복구작업을 벌였고, 수돗물은 수질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복구 작업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중구 영종도와 강화도에서도 붉은 수돗물이 확대됐다. 시민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시민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치자, 인천시는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준하 행정부시장은 6월4일 기자회견을 열고“대책본부를 가동해 각종 조처를 했지만 현재까지 적수가 발생하고 있다”며 “민관합동조사반을 구성해 수질검사와 현장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시는 수돗물 공급 체계를 전환하는 과정(수계 전환)에서 내부 침전물이 섞이면서 이물질 발생과 함께 붉은 수돗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사고 원인은 내놓지 못했다. 사고 발생 9일만인 6월7일 정부차원의 ‘정부원인조사반’이 구성돼 현장 조사가 시작됐다.

붉은 수돗물은 영종도로 번졌다. 시는 영종도의 붉은 수돗물 공급은 서구와 연관성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뒤늦게 말을 바꿨다. 박준하 행정부시장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수자원공사 관계자 등 전문가와 논의한 결과 영종도 지역도 이번 수계 전환 영향으로 수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그 사이 붉은 수돗물로 인한 피해는 점차 늘어갔다. 교육부는 6월15일 서구 111개교, 영종도 26개교, 강화도 12개교가 급식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피해가구는 1만여 세대로 파악됐다. 피해 민원은 2만여건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17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수돗물 피해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인천시
박남춘 인천시장이 17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수돗물 피해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인천시

 

고개 숙인 인천시장…붉은 수돗물 사태 발생 19일 만에

박 시장은 6월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시와 상수도사업본부의 미흡한 대처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사고 발생 19일만이자, 정부가 이번 사고에 대한 원인을 발표한다고 밝힌 지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박 시장은“2주일 넘게 지속되는 수돗물 피해로 고통받는 시민에게 죄송하다”며 “사태 초기 적극적인 시민 안내와 대응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이어“모든 상황을 대비한 철저한 위기대응 매뉴얼을 준비해놓지 못한 점, 초기 전문가 자문과 종합대응 프로세스가 없었던 점 등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는 6월18일 정부 원인 조사반의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붉은 수돗물은 상수도관 벽에서 떨어진 물때와 바닥에서 떠오른 침전물 때문이었다. 붉은 수돗물이 나온다는 민원이 시작된 5월30일 풍납취수장과 성산가압장이 전기 점검으로 가동을 멈췄다.

인천지역의 수돗물은 서울의 풍납취수장과 경기 팔당취수장에서 끌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근 수산‧남동정수장 수돗물로 대체하는 수계전환이 진행됐다. 단수없이 다른 정수장에서 물을 끌어오다 보니 물이 흐르는 방향이 바뀌었다.

규정상 역방향으로 물이 흐를 경우 10시간 이상 시간이 소요된다. 역방향 수계전환 시에는 관 흔들림과 충격 등의 영향을 고려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물질 발생 여부를 확인한 후 정상 상태가 되면 공급량을 늘려나가야 한다. 그러나 인천시는 평소보다 2배 많은 물을 흘려보냈다.

사전 대비와 초동 대처도 미흡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당초 상수도 수계를 전환할 때 수계 전환지역의 배관도와 밸브 등에 대한 도면을 작성하고, 현장 조사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통수 전에 대책을 수립하는 등 사전에 준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는 수돗물 대체공급 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 지역별 밸브 조작 위주로만 계획을 세웠다. 측정기 고장이 사태 장기화의 원인으로 꼽혔다. 당초 정수지 탁도가 기준 이하로 유지됨에 따라 정수지와 흡수정의 수질은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지만, 조사결과 탁도계 고장으로 정확한 탁도 측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수돗물을 음용하지 말 것도 권고했다. 이는 초기 상수도본부가 수질 적합판정을 받았다며 안전하다고 한 결과를 뒤집는 결과다. 필터 이물질에 대한 성분분석(XRF) 실시 결과, 오염된 필터는 알루미늄이 36~60%, 망간 14~25%, 철 등 기타성분이 26~49%를 포함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빨래나 설거지 등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이번 사태에 대해“담당 공무원들이 문제의식 없이 수계전환을 해서 발생한 것으로, 거의 100% 인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천시) 담당자들이 답을 제대로 못 할 뿐 아니라 숨기고, 나쁜 말로 하면 거짓말하는 것도 느꼈다"며 "환경부가 3일 전문가를 투입했는데도 인천시는 10일을 놓쳤다. 민원에 대응하느라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인천 서구 지역 주민들이 20일 인천지검 앞에서 붉은 수돗물 사태 책임을 물어 전 인천시 상수도 사업본부장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인천평화복지연대
인천 서구 지역 주민들이 20일 인천지검 앞에서 붉은 수돗물 사태 책임을 물어 전 인천시 상수도 사업본부장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인천평화복지연대

인천시 후속조치에 나섰지만 ‘성난 민심’ 여전

인천시는 정부 조사발표 이후 대대적인 후속조치에 돌입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자인 상수도사업본부장과 공촌정수사업소장의 직위를 해제했다. 책임자 직위해제에 이어 정부 합동감사단 등 외부 감사기관에 감사를 의뢰해 추가적인 인사조치까지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시는 상수도사업본부 인력의 전문성 부족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보고 상수도 관련 업무를 경험한 공무원들로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조사 및 후속조치 추진과정 등 전 과정 담은 백서도 발간해 배포할 예정이다.

시는 오는 30일까지 3단계로 분류해 진행 중인 수돗물 정상화 대책을 차질 없이 진행해 이달 하순에는 수질을 회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정수지 정화·송수관 수질 모니터링 △송수관 방류·정화작업 △배수관·급수관 지속방류 등 3단계 작업을 거쳐 수질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사태 수습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시는 예비비 등 1100억원을 사태 수습에 사용할 계획이다. 보상대책으로는 상.하수도 요금 전액 면제와 저수조 청소비, 의료비, 필터 교체비, 생수구입비, 수질 검사비, 소상공인 지원 등 7개로 결정했다. 보상 기간과 형태,확인 과정 등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주민들의 반발은 지속되고 있다. 주민들은 상수도본부가 수질에 문제가 없다며 수돗물을 사용하라고 했으나 환경부가 음용을 권장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점에 분노하고 있다.

주민단체로 구성된 인천 수돗물 적수사태 비대위는 “시가 사태를 축소하고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구심이 든다”면서 “총체적 부실 대응의 책임을 박남춘 시장과 부시장이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미추홀참물(인천시 수돗물)이 피해지역 25개 동 중 7개 동(28%)에만 지원되고 있다면서 생수 공급과 함께 피해 보상기준과 지원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다.

피해주민들은 직위 해제된 전 상수도사업본부장을 직무유기와 수도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가 수계 전환과정의 총체적인 대응 부실에서 벌어진 만큼 상수도사업본부장을 처벌해달라고 요구했다.

사태 초기 수돗물 탁도가 먹는 물 수질 기준을 초과했는데도 수돗물 공급을 중단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주민들이 상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인천시 등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인한 피부질환과 위장염 환자 수는 각각 48명과 25명이다.

이에 따라 박남춘 인천시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행정신뢰 추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올해 2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인천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안전’을 손꼽았다.

오는 7월1일 민선 7기 인천시장 1주년을 맞는 박 시장이 어떤 메시지를 낼지 관심이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인천시의 안일한 위기대처 능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태”라며 “박 시장과 인천시 고위직들이 반성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위기대처 매뉴얼을 만들고, 물관리 체계를 비롯해 민관혁신기구를 구성하는 등 신뢰회복에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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