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살인 뒤에 숨겨진 범인의 두 얼굴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1 08: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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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신정동 연쇄 납치살인 사건

서울시 양천구 중앙에 위치한 ‘신정동’은 자연마을인 신기(新機)의 ‘신’과 은행정(銀杏亭)의 ‘정’에서 유래한다. 1963년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신정동(新亭洞)이 됐다. 이후 두 번의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1977년에는 강서구 관할이었다가 1988년 분할되면서 양천구에 편입됐다.

지난 2005년과 2006년 신정동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다. 20대 후반의 회사원 권아무개씨는 신정동에서 가족들과 거주했다. 그는 6월6일 현충일을 맞아 오전 9시쯤 아침식사를 한 뒤 여유롭게 쉬고 있었다. 그런데 몸이 평소답지 않았다. 감기 기운이 돌자 이날 오후 “약국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권씨는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휴대전화도 꺼져 있었다.

다음 날 오전 9시쯤 동사무소 공공근로자인 A씨는 신정동 주택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었다. 그는 한 초등학교 담벼락과 주택가 골목 사이에 있는 쓰레기 무단투기장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쌀포대로 포장된 정체불명의 물체였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성폭행 의심됐으나 정액반응 ‘음성’

가까이 가보니 사람의 손같이 생긴 게 삐져나와 있었고, 손가락에는 매니큐어가 칠해진 상태였다. A씨는 처음에는 누군가 마네킹을 쌀포대에 담아 버린 줄 알았다. 그는 쓰레기 수거차량에 옮기려고 물체를 들었는데 상당히 무거웠다. 느낌이 이상해 배도 만져보고 손도 만져봤다. 그랬더니 그건 마네킹이 아니라 젊은 여성의 시신이었다. A씨는 112에 “여자의 시신이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다”고 신고했다.

양천경찰서 형사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시신은 다름 아닌 전날 실종된 권씨였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권씨의 집에서 약 2km쯤 떨어진 곳이다. 발견 당시 시신의 얼굴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었고, 몸은 쌀포대 두 개를 위아래로 겹쳐 씌운 상태였다. 그리고 배 쪽을 노끈으로 묶어서 시신이 아닌 것처럼 위장했다. 겉옷은 모두 입혀져 있었으나 속옷은 벗겨졌다가 올려진 듯 말려 있었다.

경찰은 권씨의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목졸림)’로 판명됐다. 그런데 단순 질식사로 보기에는 몸 곳곳에 이상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양쪽 가슴에는 치아로 물어뜯긴 상처가, 손목에는 결박을 당했던 흔적이 있었다. 복부에는 큰 출혈 흔적이 있었는데, 폭행당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범인이 시신을 상대로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흔적도 나왔다. 권씨의 음부에 종류가 다른 생리대 두 개가 들어 있었고, 휴지도 둘둘 말아서 집어넣어져 있었다. 성폭행이 의심됐지만 정액반응은 음성으로 나왔다. 또 피해자의 몸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문 등도 나오지 않았다. 범행 후 몸을 깨끗이 닦아낸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권씨의 위에서는 아침에 먹은 음식물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이것은 권씨가 집을 나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살해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당시 시신이 유기된 인근 주택가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권씨가 납치당하거나 시신이 유기되는 모습을 본 목격자도 없었다. 사건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11월20일 신정역 인근에서 40대 주부가 실종된다. 이 지역에 살던 이아무개씨가 퇴근 후 집으로 오다 사라진 것이다. 이씨의 남편은 아내가 귀가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집에 오지 않고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지만 처음에는 처가에 간 것으로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는 그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 남편은 경찰서에서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는다. “당신 아내가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연락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의 시신은 주택가 주차장에 유기돼 있었다. 최초 발견자는 인근 식당 주인 B씨였다.

그는 이날 아침 쓰레기 무단투기장에 있는 특이한 물체 하나를 보게 된다. 마치 죽은 사람을 염할 때처럼 묶여 있었다. B씨는 해당 물체에 다가가 발로 툭 차봤더니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 겹으로 포장된 비닐을 벗기자 싸늘하게 식은 시신이 나왔다. 바로 전날 밤 실종된 주부 이씨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의 시신은 옷을 입은 상태에서 검은 비닐봉지로 얼굴을 가렸다. 김장할 때 사용하는 대형 비닐봉지로 몸을 감싼 다음 그 위에 야외용 돗자리로 둘둘 말아서 끈으로 묶은 모습이었다. 끈은 세 종류가 나왔는데, 노끈, 전기선, 나일론 끈이다.

국과수 부검 결과 이씨의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였다. 신체를 훼손하지는 않았으나 복부 쪽에 있는 갈비뼈(9·10번)가 골절돼 있었다. 누군가에게 심하게 폭행당한 흔적이다.

이씨의 몸에서는 범인의 지문이나 DNA 등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이 이씨의 동선을 파악해 보니 신정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마지막 모습이 포착됐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이씨는 지하철역을 나온 후 바로 납치돼 끌려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납치 후 탈출에 성공한 3차 피해자

6개월 사이에 한 동네에서 연속으로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바짝 긴장했다. 권씨의 시신 발견 지점과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의 거리는 불과 1.8km 정도였다. 경찰은 두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이거나 모방범죄 둘 중 하나일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1차 사건과 마찬가지로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한 동네에서 연속으로 살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경찰 수사는 무기력했다.

그렇게 또다시 6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다. 2006년 5월31일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는 날이었다. 이날 20대 여성 C씨는 오후 5~6시쯤 목동오거리에서 남자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C씨는 택시를 타고 가던 중 게임에 열중하다 그만 목적지를 지나 신정역에서 내렸다. 이때 한 남성이 말을 걸었으나 C씨는 이를 무시했다.

그러자 이 남성은 C씨에게 다가와 “소리 지르면 죽인다”고 위협하며 옆구리에 흉기를 들이댔다. C씨가 끌려가면서 고함을 지르자 주변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남성은 “여자친구가 술을 많이 마셨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둘러댔다. 이때부터 C씨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C씨를 납치한 남성은 인근 주택가로 끌고 가며 눈을 가렸다. C씨가 반항하면 목을 주먹으로 세게 쳤다. 어느 한곳에 이르니 거주지로 보이는 주택의 반지하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곳에는 또 한 명의 남성이 있었다. C씨를 납치한 남성이 집 안으로 들어오자 “왔어” “알아서 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C씨는 남성이 화장실에 간 사이 열린 문으로 나와 해당 주택 2층 계단 앞 신발장 뒤에 숨었다. 그리고 얼마 후 범인들을 피해 죽을힘을 다해 달려 한 초등학교 앞에 다다르자 이곳에 몸을 숨긴 후 남자친구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C씨는 이렇게 가까스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끌려갔던 곳의 위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반지하 바닥에 톱과 많은 끈이 있었다는 것과 2층 신발장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이 3차 사건을 끝으로 신정동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납치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2015년 12월 양천경찰서는 이 사건의 전담팀을 편성해 재수사에 나섰지만 지금까지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4년이 지났는데도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어떠한 단서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 사건은 동일범 소행일까

범죄 전문가들마다 판단기준 달라

신정동 연쇄 납치살인 사건을 두고 범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경찰은 세 가지 가능성(동일범, 모방범죄, 개별사건) 모두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2015년 10월1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세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했다. 그 근거로 시신 유기 장소가 주택가 쓰레기 무단투기장이라는 점, 또 시신을 포장한 형태가 비슷하고, 끈으로 묶는 방법도 유사하다고 봤다.

단, 1차 사건 피해자의 시신은 끈으로 가운데 한 번만 묶었는데, 2차 사건 피해자의 시신은 세 번에 걸쳐 꼼꼼하게 묶여 있었다. 이에 대해 한 범죄 전문가는 “1차 피해자 시신의 손이 밖으로 나왔었기 때문에 학습을 통해 더욱 단단하게 묶은 것”으로 내다봤다. 1·2차 피해자의 사망원인도 동일했다. 복부 쪽에 폭행 흔적이 있는 것도 비슷했다. 범행이 일어난 날은 공교롭게도 모두 공휴일이거나 휴일이었다.

2차 피해자의 상의에서 발견된 곰팡이는 3차 사건과 연결된다고 봤다. 국과수 감정 결과 이 곰팡이는 실내 반지하 같은 환경에서 생기는 종류로 확인됐다. 이걸 토대로 보면 2차 피해자는 지하나 반지하 같은 장소에서 살해됐다고 볼 수 있다. 3차 피해자가 납치 당시 반지하 바닥에서 톱과 많은 끈을 봤다고 했는데, 이것은 1·2차 사건과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세 사람의 납치 장소가 신정역 근처라는 것도 동일범의 소행을 뒷받침한다고 봤다. 1차 피해자인 권씨도 병원에 가려면 신정역 근처로 이동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범죄 전문가는 “세 명의 서로 다른 범죄자가 이런 식으로 범행을 했는데 정말 우연히 이것이 이 지역에서 이 시간대에 벌어졌을 가능성은 정말 낮다”며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확신했다.

이에 반해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전혀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SBS 방송 이후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이 세 사건이 서로 관련 없는 독립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방송에서 제시한 3차 사건과 1·2차 사건(배 교수는 기고에서 ①②③으로 표기)과의 연결 증거는 납치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한 것인데 ‘끈’에 대한 진술은 실제 본 것을 진술했다기보다 기억의 삽입이나 확대 해석 등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이어 “이 피해자가 분명 납치와 같은 범죄를 당한 것은 맞지만 1·2차 사건들과 연결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신정동이라는 위치 정도와 불완전한 ‘끈’에 대한 진술 정도를 가지고 잔혹한 살인 유기 사건과 결부시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너무 나간 이야기 같다”고 강조했다.

배 교수는 또 1·2차 사건의 연쇄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시신이 발견된 현장 상황에서 핵심적인 부분이 다르고 피해자를 살해한 방법에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며 “두 사건이 독립된 사건이라는 증거가 두 사건이 연결됐다는 증거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고 핵심적인 부분에서도 차이가 난다. 결론적으로 두 사건의 연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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