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文·트럼프에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6.3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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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남·북·미 판문점 회동, 꺼져가던 북핵 협상 희망 살려
트럼프 제의 하루 만에 전격 성사…북·미 양측, 결과에 만족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6월30일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시사저널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6월30일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시사저널

‘깜짝쇼’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던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세번째 만남이 드라마틱하게 마무리됐다. 정식 정상회담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내용이나 형식이 알찼다는 분석이다. 형식이나 결과물만 놓고 보면, 오랜 시간 기획된 1, 2차 북·미 정상회담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준비 과정부터 판이하게 달랐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1, 2차 회담은 준비 과정부터 실제 만남까지 걸리는 시간이 3개월 이상 소요됐기 때문이다. 1차 싱가포르 회담은 그렇다고 쳐도, 2차 하노이 회담은 그토록 오랜 시간 실무회담을 가졌는데도 아무 성과없이 끝났다. 반면 이번 3차 회동은 6월29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끝마치고 이제 한국으로 간다. 만약 김 위원장을 ‘경계선, DMZ(비무장지대)’에서 만난다면 ‘잘 지냈느냐’며 인사하고 악수할 것”이라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미국 의회전문지 ‘더힐’ 등 주요 언론들은 “이번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이 소수의 참모진하고만 협의한 뒤 전격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위터 글이 올라온 지 5시간만인 오후 1시, 북한에서 대미 협상을 진두지휘하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해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남조선을 방문하는 기회에 비무장지대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면서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보지만 우리는 이와 관련한 공식 제의를 받지 못했다”고 밝혀 만남 가능성을 높였다.

북한이 기다린 ‘공식 제의’는 6월29일 오후 방한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유엔사 직통 전화로 전화를 걸면서 이뤄졌다. 그리고 그날 밤 판문점에서 비건 대표와 북측 고위 인사간 실무 회담이 이뤄지면서 일정이 확정됐다. 이 자리에 북측에선 최선희 부상이 직접 나왔는지, 김창선 서기실 부장이 나왔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제3국 아닌 한반도 분단 현장에서 처음 만나

30일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DMZ(오래 전부터 계획된 것)에 간다”고 밝히면서 만남 가능성을 높였고, 이후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DMZ에 나오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공식화됐다.

종합해보면 30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사실상의 3차 회담은 앞으로의 북‧미 정상간 대화가 형식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는 시그널로 보여진다. 경우에 따라 두 사람 간 브로맨스(남자간 의리)가 생겨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김 위원장이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언론은 이를 비판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 위원장도 “하루 만에 전격적인 상봉이 이뤄지리라 생각지 못했다”면서 “난관과 장애를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싱가포르나 베트남과 같은 제3국이 아니라 분단의 현장인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CNN 등 미국 주요 외신들이 높게 평가하는 바도 ‘한국전쟁 당시 적대국인 북한 땅에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발을 밟은 것’이다. 미 대통령의 중국, 베트남 방문에 버금가는 미 외교사의 기록적인 일로 평가받을만 하다. 더군다나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1, 2차 정상회담보다 오히려 더 긴 시간 동안 단독 회담을 가졌다.

CNN이 속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경비구역에서 만난 자리에서 김 위원장에게 ‘기회가 되면 백악관을 방문해줄 수 있느냐’고 말한 것도 앞으로 북·미 정상간 대화에 있어 긍정적인 요소다.

6월30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시민들이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시사저널
6월30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시민들이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시사저널

더군다나 이번 만남은 아무 결론 없이 끝난 2차 하노이 회담 후 열린 것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자칫 끝없는 교착 상태로 흐를 수 있었던 북·미 대화가 다시 정상궤도로 올라왔음을 보여준다. 이날 회동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돌아간 뒤 2~3주 간 실무자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볼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협상 대표자로 비건 대표를 선임하면서 “북한도 새로운 팀을 꾸릴 것”이라고 말해 이후 전개될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기자회견장에 함께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도 “평화 프로세스의 큰 고개를 넘었다”고 평가한 것은 이번 회 동 성과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트럼프 "합의는 없었다. 제재도 계속된다. 하지만 협상도 한다"

물론 표면적으로 북‧미 양측이 이번 회동에서 합의점을 찾은 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한 것이 없기에 제재는 계속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판문점으로 내려와 우리측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50여분 가량 배석자 없이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가진 것은 앞으로 협상의 중요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양측 강경파가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개성공단 재개’를 미국측에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북측에는 '영변 핵시설 사찰 후 폐기' 카드를 제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회동을 끝마치고 북측지역으로 돌아가는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다”고 말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원할 때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꺼져가던 비핵화 협상의 불씨를 되살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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