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아내 폭행’ 충격, 함무라비 법전 다시 부활해야 하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3 17:00
  • 호수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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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베트남 아내 구타 사건을 보며

TV를 보던 남편이 갑자기 말한다. “저저저, 그거그거, 뭐더라 그그.” 나이가 좀 되니까 우리 부부한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말더듬 현상이다. 나는 별 어려움도 없이 답한다. “함무라비 법전.”

이렇게 쿵짝이 맞는 이유는 한 가지다. 우리가 보고 있던 TV뉴스에 아내를 구타하고도 “맞을 짓을 해서 때렸다. 다른 남자들도 다 동감할 것”이라고 말하는 남자가 나왔고, 둘 다 저 아득한 무지몽매를 도대체 법으로 어떻게 교화를 하지, 라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함무라비 법전식으로 하면, 저 XX 저거는 지가 때린 만큼 매우 처맞아야 돼. 때린 횟수만큼 손가락을 잘라버리든가.”

이번엔 내가 더듬는다. “함, 함, 여튼 함식으로 하는 건 당대 맥락에선 굉장히 선처한 거래. 죄지은 만큼만 벌하기. 그 전엔 너무 쉽게 지나친 처벌을 했으니까.” “그래서 다시 함무라비식 처벌이 필요하다는 거야. 지가 뭘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모르잖아.”

7월8일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A씨(36)가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고 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7월8일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A씨(36)가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고 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상상으로나마 카타르시스 주는 사적 복수

물론 우리 부부의 이런 대화는, 더듬는 말만큼이나 답답해서 하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건 자체는 이미 널리 알려진 다문화가정 폭력이다. 하지만 소위 솜방망이 처벌, 되풀이되는 폭력, 변화하지 않는 낙후된 인식 등등의 문제가 되풀이되면 어떻게 될까. 과연 ‘우발적으로’ 아내나 애인을 죽인 남자들은 ‘선처’를 받아 풀려나오고, 여기저기서 매일 여성들이 죽고 자살당하고, 여전히 베트남에서 캄보디아에서 동남아에서 아내를 ‘사오는’ 농촌남편들이 수두룩하고, TV에서 버젓이 다문화 며느리와 고부갈등 이런 언어로 된 예능 프로그램이 한국의 낙후된 가부장 문화에 적응 못한다고 외국인 며느리들을 닦달한다. 또는 시대를 이해 못한다고 시어머니를 닦달하거나. 이게 그냥 고구마 백만 개, 라는 표현으로 해소되는 문제일까.

‘자경단’이라 이름 붙임 직한 사적 복수자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시기가 있었다. 리암 니슨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아버지로 등극시킨 테이큰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법이 가혹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옳고 그름, 해서는 안 될 일과 정상참작할 일을 구분하지 못할 때, 우리를 대신해 공권력이 문제를 제대로 응징한다고 믿기 어려울 때, 말로나마 또는 상상으로나마 사적 복수가 카타르시스를 준다. 하지만 실제 자경단이 생겨난다면, 아마도 그것은 공포가 지배하는 시대로의 퇴행이 될 것이다. 말로만, 영화로만, 하고 마는 이유다.

사적 복수의 가혹함을 공적으로 금지한 것이 바로 함무라비 법전의 정신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상대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면 가한 그만큼을 벌한다. 단 사인(피해자의 가족, 친구, 동네 사람들 등)이 아니라 공권력이. 그나마 공권력에 의한 신체구타도 법에서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21세기라는 시대정신은 하나의 몸이 다른 하나의 몸에, 하나의 정신이 다른 하나의 정신에 폭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까지 발전 성장해 있다.

이런 시대에 다시 함무라비 법전이 부활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다니. 피해자가 여성, 아동, 사회적 소수자, 나중에는 정치적 반대자에 이르기까지 확장되면 어떻게 할 건가. 맞을 짓, 남들도 따위 말 뒤에 숨지 못하도록, 계몽의 깃발이 다시 필요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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