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휴가, 진정한 의미를 찾아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31 18:00
  • 호수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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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동네 분식집 앞에는 ‘7월25일부터 28일까지 휴가 다녀옵니다’ 팻말이 걸렸고, 가끔 물리치료 받으러 가는 신경외과에도 ‘7월29, 30, 31일 진료 없습니다. 어르신들 병원도 잠깐 방학합니다’란 애교 섞인 메모가 나붙었다.

한때 왜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몰려서 휴가를 떠나나 궁금해한 적이 있었는데, 출판사를 운영하는 후배 덕분에 수수께끼를 풀었다. 자녀들 방학 기간을 이용해 휴가를 떠나다 보니 그리 되었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 해석일 테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후배 말로는 어차피 출판 공정을 담당하는 어느 한 곳에서 휴가를 떠나면 나머지 작업들도 스톱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출판업계만 하더라도 비슷한 시기를 택해 휴가를 떠난다는 게다. 다른 업계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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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모래사장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사람에 치이고, 꽉 막힌 도로에서 스트레스 받다 돌아와야 “휴가를 다녀왔구나” 실감 난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휴가란 진정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새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람들이 행복감이나 만족감을 느끼는 영역이 어디인지에 주목한 사회심리학의 고전적 연구에 따르면, 경제적 여유로움이 1위, 여가가 2위, 그리고 직업 활동이 3위로 나타났다. 물론 가족과 친구 그리고 건강도 행복감과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주요 영역이긴 하지만, 행복감과 만족도의 평균점은 경제적 여유로움과 여가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여가란 ‘열심히 일한 당신’이 잠시 일터를 떠나 재충전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의미임은 물론이다.

지금도 여름 휴가철만 되면 늘 되새기게 되는 소중한 기억이 있다. 그해는 유달리 태풍으로 인한 피해 보도가 뉴스에 자주 등장하곤 했는데, 마침 집안 어르신 한 분이 조치원(지금은 세종시로 편입된)에서 밭농사를 짓고 계셨기에, 안부도 여쭙고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겸 여름 휴가철을 이용해 1주일 일정으로 어르신 댁에 내려갔다. 한데 그 1주일은 도시 생활의 강팍함으로 인해 나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상처를 위로받는 힐링과 치유의 시간으로 남게 되었다.

어르신은 집 뒤편 밭에 서리태(검정콩)를 심어놓으셨는데 얼마나 정성 들여 꼼꼼하게 묶어두었는지 그토록 강한 태풍에도 쓰러진 포기 하나 없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당시 이미 70대 중반을 지나고 계셨던 어르신은 농사짓는 솜씨가 웬만한 장정 부럽지 않을 만큼 능숙하셨고,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매사 지혜로우셨다.

분꽃이 수줍게 오므라들면 “저녁 할 때가 되었네”하며 부엌으로 들어간 어르신이 손수 차려주셨던 밥상 또한 매번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집에서 담근 된장에 밭에서 갓 딴 호박과 풋고추 썰어 넣고, 양파에 두부를 곁들여 끓인 찌개는 ‘전국 맛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고, 정구지(부추의 사투리)로 부친 전도 입에서 살살 녹았다. 뜸 들일 때 살짝 얹어 쪄낸 터라 밥알이 군데군데 붙어 있던 흑찰옥수수 맛은 생각만으로도 입속에 군침이 돈다. 밥상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나누었던 이야기의 내용은 거의 생각나지 않지만, 삶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가슴 가득 포만감이 밀려오던 기억만큼은 생생하다.

휴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더없이 편안했다. 돌아가야 하는 일상이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언제든 나를 반갑게 맞아줄 곳이 있다는 든든함 덕분이었던 것 같다. 요즘의 나는 굳이 남들이 언제 휴가를 떠나는지, 누구와 함께 떠나야 할지, 그럴듯한 곳으로 가야할 텐데 식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 휴가란 외형적 형식 못지않게 나 자신과 오롯이 직면하는 시간이자 이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임을 직접 경험해 보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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