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 합류한 마블 ‘여성·성소수자·아시아 영웅’ 품다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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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콘에서 베일 벗은 마블의 페이즈4

코믹스 덕후들의 성지, 지상 최대 팝컬처 페스티벌, 할리우드 신작 영화 홍보의 장. 매년 7월 찾아오는 코믹콘(San Diego Comic-Con) 이야기다. 할리우드 관계자들과 스타들이 쏟아져 내리는 코믹콘 행사가 7월17일부터 21일(현지 시각)까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렸다. 올해 초미의 관심사는 지난 몇 년간 그러했듯 마블 스튜디오였다. 개국 공신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떠난 마블은 어디로 갈 것인가. 10여 년간 거침없는 성공 신화를 보여준 마블의 앞날은 장밋빛인가. 마블 수장 케빈 파이기는 또 어떤 ‘떡밥’을 투척할 것인가. 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페이즈4 라인업이 20일 코믹콘에서 베일을 벗었다.

블랙 위도우 ⓒ MARVEL
블랙 위도우 ⓒ MARVEL

페이즈4의 문을 여는 히어로는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하는 블랙 위도우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한 블랙 위도우를 어떻게 영화로 다시 불러낼 것인가. 선택은 과거다.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가 어벤져스에 합류하기 이전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 개봉은 2020년 5월1일이다. 마블의 여성 솔로 무비는 《캡틴 마블》에 이어 두 번째다.

마블은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의 애인인 제인 포스터(나탈리 포트만)를 통해서도 여성 슈퍼히어로를 강화한다. 스튜디오와의 의견 충돌로 《토르》 시리즈에서 하차했던 나탈리 포트만이 2021년 11월5일 개봉하는 《토르: 러브 앤 썬더》(이하 《토르4》)로 컴백한다. 여자 토르로서의 컴백이다. 남성 중심의 할리우드에서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높여온 나탈리 포트만이다. 코믹콘 행사에서 묠니르(토르 무기)를 번쩍 들어올린 나탈리 포트만의 영향력은 단순 캐릭터를 넘어, 마블의 기울어진 성비 부수기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 캐릭터 강화뿐이 아니다. 페이즈4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다양성이다. 그중에서도 아시아 시장에 대한 마블의 야심이 역력히 드러나는데, 이를 보여주는 작품이 첫 아시안 히어로를 내세운 《샹치와 10개 반지의 전설》(이하 《샹치》)이다. 1973년 오리지널 마블 코믹스를 통해 첫 등장한 샹치는 세계 최정상급 쿵푸 실력을 바탕으로 영국 정보국 MI6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는 중국계 히어로다.

당초 스티븐 연, 루디 린, 견자단 등이 후보 물망에 올랐으나, 마블로부터 낙점받은 최종 주인공은 중국계 캐나다인 시무 리우. 캐나다 CBC에서 방영 중인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에 출연 중인 이 배우는 이번 캐스팅으로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다. 《중경삼림》 《무간도》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양조위도 합류한다. 악당 만다린 역이다. 그의 필모를 떠올렸을 때 일차원적인 악당을 보여주지는 않으리란 기대를 품게 한다.

7월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코믹콘’의 마블 스튜디오 전시장에서 배우 마동석이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서서 얘기하고 있다. ⓒ AP 연합
7월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코믹콘’의 마블 스튜디오 전시장에서 배우 마동석이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서서 얘기하고 있다. ⓒ AP 연합

중국 시장 공략에도 심혈 기울여

마블이 중국계 슈퍼히어로를 라인업에 올린 데는 다양성을 존중하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만을 위한 선택이라고 판단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마블이 누구인가. 남다른 비즈니스 수완으로 슈퍼히어로를 할리우드 산업 노른자위로 끌어올린 제작사 아닌가. 그런 마블이 14억 중국 시장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실제로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경우 중국에서만 6억2910만 달러의 엄청난 흥행 수익을 올리며 중국이 흥행 금맥임을 증명한 바 있다(참고로 국내에서 《엔드게임》 수익은 1억520만 달러다). 지난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출연진 전원이 아시아계 배우들로만 구성된 영화)이 증명해 보인 아시안 흥행 파워 역시 《샹치》 제작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북미에서 2021년 2월12일 개봉 예정이다.

《샹치》보다 앞선 2020년 11월6일 개봉하는 《이터널스》는 여성, 다인종, 다양성 등을 껴안으려는 마블의 최근 행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중국계 미국인 클로이 자오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에는 파키스탄 출신인 쿠마일 난지아니, 멕시코계인 셀마 헤이엑, 아프리카계 흑인인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그리고 한국계인 마동석(영어 이름 Don Lee)이 출연한다. 그야말로 ‘위 아 더 월드’ 캐스팅인 셈.

우리 입장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역시 마동석이다. 마블 합류설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던 마동석은 당초 예상됐던 악역이 아닌, 주요 배역 중 하나인 ‘길가메시’에 낙점됐다. ‘길가메시’는 초인적인 파워를 지닌 히어로로 토르, 헐크 등과 비견되는 캐릭터다. 실제로 코믹콘 행사에 참석한 마동석은 “길가메시와 헐크가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질문에 “마크 러팔로(헐크 역) 있나요? 없어요? 그럼 길가메시요”라는 말로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수준급 영어와 액션 실력을 지닌 마동석의 별명 ‘마블리’가 ‘마블LEE’로 불리길 기대해 본다.

마블의 성 소수자(LGBTQ) 슈퍼히어로도 페이즈4를 통해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앞서 케빈 파이기는 “향후 마블 영화에 2명의 LGBTQ 캐릭터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중 한 명의 정체가 이번 코믹콘을 통해 밝혀졌다. 테사 톰슨이 연기한 《토르》 시리즈의 발키리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본 관객이라면, 발키리가 토르에 이어 아스가르드의 새로운 왕이 된 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코믹콘에 《토르4》 출연자로 참석한 테사 톰슨은 이와 관련, “새로운 왕으로서 첫 번째 임무는 발키리의 여왕을 찾는 일이 될 것”이라는 말로 발키리의 정체성을 직간접적으로 밝혔다. 발키리는 코믹스에서도 양성애자로 등장하는 캐릭터다. 테사 톰슨에 따르면 《토르3: 라그나로크》에 이를 암시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삭제됐다고. 공식 자리에서 캐릭터 성 정체성을 밝힌 만큼 《토르4》에선 삭제되는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발키리가 마블의 첫 번째 성 소수자 히어로가 될 것인가는 지켜볼 일이다. 《토르4》 이전에 개봉하는 《이터널스》에도 게이 히어로가 등장할 것이란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순서가 어찌 됐든 대중문화의 변화를 선도해 온 마블은 이렇게 또 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블랙위도우》 《이터널스》 《샹치》 《토르4》가 마블 다양성의 폭을 넓힌다면,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편인 《닥터스트레인지: 멀티버스의 광기》는 마블의 장르 폭을 넓힌 예정이다. 마블 최초의 공포영화로 제작될 전망이기 때문. 베네딕트 컴버배치, 베네딕 웡, 치웨텔 에지오포 등 1편 출연진이 복귀하는 가운데, 스칼렛 위치로 활약해 온 엘리자베스 올슨이 새롭게 합류한다. 1편을 연출했던 스콧 데릭슨 감독이 전편에 이어 메가폰을 잡는다. 2021년 5월7일 개봉이다.

 

‘디즈니 플러스’에 뛰어든 마블 영웅들

페이즈4에서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TV 시리즈다. 이 배경엔 올해 11월 론칭하는 디즈니 자체 인터넷 영화 서비스(OTT) ‘디즈니 플러스’가 있다. 선발주자인 ‘넷플릭스’ 따라잡기가 시급한 마블은 디즈니 플러스에서만 공개되는 마블의 TV 시리즈를 통해 가입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그 면면이 화려하다. 페이즈 1~3기를 수놓았던 히어로 팔콘(앤소니 마키), 윈터 솔져(세바스찬 스탠), 로키(톰 히들스톤), 호크아이(제레미 레너) 등을 내세운 솔로 드라마들이 대거 TV 시청자를 만난다. MCU와의 연계성이 밀접한 만큼, 마블 영화 팬들로서는 ‘디즈니 플러스’를 건너뛰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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