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당 빅뱅] 막장 드라마 쓰는 중도정당들 ‘빅텐트론’ 실체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7.30 10:00
  • 호수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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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화되는 바른미래·평화당 내분
비례대표 출당, 당 자금 장악이 관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사이에서 중도 성향을 나타내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의원들을 만나보면 공통적으로 ‘중원(중도 정치지형)이 넓어졌기에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말을 많이 한다. 또, ‘에마뉘엘 마크롱’이라는 정치 스타를 배출한 프랑스 집권 중도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를 거론하는 인사가 많다.

ⓒ 시사저널 포토
ⓒ 시사저널 포토

그러나 ‘프랑스의 기적’이 한국에서 재현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두 요인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제3지대에서 ‘안철수와 호남계’라는 어정쩡한 동거가 먹혔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 “‘정계개편’은 무슨? ‘정계개판’이지. 정당정치가 이렇게 희화화된 적이 없다. 바른미래당의 실패는 중도정치 실험의 실패다.” 해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바른미래당 의원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모두 당내 갈등의 중심엔 당 구심점이 없다는 게 자리 잡고 있다. 리더십 부재란 뜻이다. 지난해 손학규 전 의원이 바른미래당 대표에 당선됐을 때 당내에선 “안철수가 손학규를 밀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손 대표는 ‘탕평인사’를 내세워 사무총장에 유승민계인 오신환 의원을 임명했다. 그동안 당의 살림살이를 책임져온 이태규 의원을 사무총장에서 밀어냈다는 것을 안철수계로선 ‘정치적 배신’으로 여길 수 있다. 한 당직자는 “손 대표로선 유승민계를 통해 안철수계를 견제하려 했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태규 의원을 비롯해 다수의 안철수계 원외 지역위원장들이 4·3 재보선 참패 후 손 대표 퇴진에 나선 것도 이런 구원이 깔려 있다.

창당 초기 조배숙 의원을 당 대표로 선출하는 과정부터 잡음이 있었다는 점에서 평화당 역시 리더십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분당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이윤석 전 의원 대신 민영삼 전 건국대 특임교수가 최고위원에 뽑히면서다. 당시 당내에서는 여론조사 반영 여부를 놓고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격렬하게 맞붙었다. 그리고 6월10일 정동영 대표가 지명직 최고위원에 측근인 박주현 의원을 임명하면서 내분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10여 명의 의원들이 별도 모임을 갖고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이하 대안정치연대)라는 새판 짜기에 들어간 것도 이 무렵이다.

정체성 논란도 빠질 수 없다. 바른미래당은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결합’을 통합선언문에 집어넣었지만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용도 폐기됐다. 호남계 의원들의 ‘진보’와 유승민계(바른정당계)의 ‘보수’, 여기에 뚜렷한 성향이 없는 안철수계가 한데 뒤섞이면서 혼선을 거듭한 것이다. 평화당 역시 정의당과의 연대를 고려한 정동영 대표의 ‘적극적 좌클릭’에 당내 상당수 인사들이 반대하면서 내분으로 비화한 모습이다. 당내 갈등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선거’라는 정치적 심판을 거치면서 노골화됐다.

※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리더십 실종, 지지율 하락…의원들 좌불안석

정계개편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지난 4·3 재보선 직후부터라고 봐야 한다. 박지원 평화당 의원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의 연대를 희망하는 발언을 하면서 불씨가 타올랐다. 그러나 당시 박 의원의 제안에 손 대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손 대표로선 원외인사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평화당 측 제안을 덜컥 받아들이는 데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 바른미래당 내 호남계 생각도 다르지 않다. 평화당 창당 때 함께 뛰쳐나가지 않고 이제 와서 뒤늦게 합류하는 것은 정치적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고민이 해결된 것은 7월17일 10명의 평화당 의원이 ‘대안정치연대’를 출범하면서부터다. 이들이 먼저 제3지대에서 빅텐트를 차린 이상 바른미래당 호남계 의원들의 부담은 한결 줄었다. 때마침 바른미래당 유승민계는 ‘손학규 흔들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때 손 대표 측이 내놓은 것이 ‘주대환 카드’다. ‘플랫폼 자유와 공화’ 공동의장 출신인 주대환 혁신위원장은 손 대표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이사를 역임했기에 선임 때부터 손 대표 측근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손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젊은 혁신위원들의 요구에 부딪쳐 주대환 체제는 보름을 채 넘기지 못했다.

현재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은 당헌·당규상 당원 투표로 선출된 당 대표를 무작정 끌어내릴 방법이 없다. 유승민계로 대표되는 바른미래당 비당권파가 지도체제 개편을 핵심으로 한 혁신위 결론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평화당 비당권파가 창당 준비에 나선 것은 그마저도 힘들다고 봐서다.

혁신위 활동을 놓고 바른미래당 내분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분당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많다. 현재 손학규 체제를 떠받치는 세력은 호남계에 당직자인 임재훈 사무총장, 채이배 정책위의장, 측근인 이찬열 의원 정도가 꼽힌다. 손 대표로선 호남계를 등에 업고 유승민계 등 비당권파를 견제하려 했지만 제3지대가 열리면서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최근 원내대표에 비대위원장까지 지낸 호남계 중진 김동철 의원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바른미래당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완전히 해체하는 게 맞다. 손학규 대표는 ‘중도대통합 정당’ 출범의 계기를 만들고 명예롭게 2선으로 후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앞으로 호남계 행보를 가늠케 한다.

손 대표 쪽에서 낼 다음 카드는 뭘까. 현재로선 ‘적진 분열’이 최상의 카드다. 7월24일 손 대표가 한 달 넘게 공석 중인 당 윤리위원장에 안병원 전 국민의당 당무감사위원장을 임명한 것에서 속내가 보인다. 안 위원장은 손 대표와는 아무 인연이 없는 인사로 당내에서는 안철수계로 분류된다. 대신 현 정국에서 권한은 막강하다. 혁신위 활동에 위압을 줬다는 의혹을 받는 유승민 전 대표뿐만 아니라 손 대표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하태경 의원의 징계 여부가 안 위원장 손에 놓여 있다. 만약 최고위원인 하 의원의 당원권을 정지시키면 최고위 내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동수가 되기 때문에 손 대표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다. 혁신위 활동 등 비당권파의 활동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생기게 되는 셈이다.

‘안병원 카드’는 안철수계와 유승민계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촉매제다. 한 당내 인사는 “설령 손학규 체제가 무너진다 하더라도 유승민계와 안철수계가 화학적으로 결합하긴 힘들다. 유승민계는 지역구 의원 수, 안철수계는 당협위원장 등 하부 조직의 강점을 이유로 나중에 헤게모니 싸움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당내 인사도 “안철수 전 대표는 늘 꽃길만 걸으려 하는데, 앞으로의 정국은 흙탕물 싸움이다. 그런 식으로 정치해선 누구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다”며 그동안의 안 전 대표의 행보를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갈등의 밑바닥에는 △돈 △당 대표직 △비례대표 의원들을 누가 가져가느냐가 걸려 있다.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비례대표는 탈당 시 의원직을 잃게 된다. 제명 또는 출당조치를 통해서만 의원직이 유지된다. 익명을 요구한 바른미래당 의원은 “호남계가 탈당하면서 손 대표나 유승민계에 비례대표 제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손학규 체제는 바로 붕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평화당은 좀 더 구도가 명확해졌다. 제3지대를 표방한 대안정치연대는 우선 몸집부터 불리는 게 상책이다. 1차 목표는 바른미래당 호남계와의 연대다. 무소속 손금주·이용호 의원 합류도 유력해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내상을 심하게 입은 곳은 두 당의 당권파다. 임재훈 바른미래당 사무총장은 “손 대표 취임 이후 유승민 전 대표가 당 활동을 제대로 한 적이 있는가. 패스트트랙 때부터 활동을 재개하더니, 이제는 대표 퇴진만을 요구한다. 이건 선배 정치인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유승민계+안철수계, ‘친이계’와 손잡나

바른미래당 당권파와 비당권파는 서로를 향해 “당권을 거머쥔 뒤 결국엔 (당권파는) 민주당, (비당권파는) 한국당과 정치적 거래를 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유승민계가 합쳐 ‘개혁보수’를 내건 신당 창당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대로 ‘안철수+유승민계’가 당을 뛰쳐나온다면, 바른미래당 호남계와 평화당은 한데 뭉치기가 더 쉬워진다. 이렇게 출발한 ‘국민의당 시즌2’에는 결국 안철수계가 빠지고, 손학규계가 합류하는 구도가 되는 셈이다.

어찌 됐던 ‘아름다운 합의이혼’을 위해선 비례대표 문제부터 풀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돈과 의원 수가 양립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한쪽이 당 대표 자리와 당 자금을 갖고, 나머지 한쪽은 비례대표를 나눠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바른미래당 내 상당수 비례대표 의원은 대안정치연대와 결합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선 교섭단체도 충분히 가능하다. 반대로 바른미래당 내 유승민·안철수계는 한국당 내 비박계 현역의원들과의 연대를 통해 다음 행보를 이어나갈 수 있다. 총선 불출마를 검토 중인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평화당+호남계는 ‘진보의 확대’, 유승민계+안철수계는 ‘보수의 확대’라는 ‘각자도생’으로 다음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호남계인 박주선 의원도 지난 5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개혁적 보수나 합리적 진보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의 중도세력 갈등은 이 영역에서 활동하는 주자들의 이념과 정치적 역량이 비슷비슷해서 생긴 일이다. 또다시 국회의원 배지를 달려면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게 마땅치 않다. 이 때문에 바른미래당 호남계와 평화당은 ‘호남’이라는 지역, 안철수·유승민계는 ‘개혁보수’라는 이념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의 갈등은 세포분화를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 감동은 없고 구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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