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 노쇼’는 예고된 참사였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4 10:00
  • 호수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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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무인 호날두, 약속 안 지킨 유벤투스, 주관사의 무능, 무모한 일정 용인한 프로축구연맹 등이 합작한 총체적 참사

세계적인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유벤투스)를 향해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급기야 후반 40분이 지나자 그의 라이벌인 리오넬 메시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광판에 나온 호날두의 표정에는 짜증이 묻어나 있었다.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관중이 자리를 뜨는 낯선 풍경과 경기 종료 후 박수 대신 야유가 7월26일 밤의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호날두 노쇼 사태’로 명명된 이번 촌극의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 세리에A의 명문 유벤투스와 K리그 선발팀(팀K리그)의 친선경기는 현역 선수인 호날두가 뛰는 모습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서 일찌감치 매진됐다. 문제는 호날두가 정작 그라운드에 들어서지도 않은 것이다. 구매자인 대한민국 국민들이 기대한 알맹이가 빠졌다. ‘날강두(호날두+날강도)’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자극적 표현을 부정하는 이가 없을 정도다.

7월26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7월26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호날두의 결장은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7월30일 프로축구연맹에 따르면 이번 친선경기의 주최사인 더페스타는 계약서에 호날두의 팬 사인회 참가와 경기 45분 이상 출전을, 1군 선수 70% 포함, 경기 시간 준수 등과 함께 주요 조항으로 넣었다. 각 조항을 위반할 경우 위약금이 발생하는데, 결과적으로 유벤투스는 이들 대부분을 어겼다.

더페스타의 로빈장 대표는 경기 다음 날인 7월27일 밝힌 입장문에서 경기 당일 호날두 출전 여부를 둘러싼 상황을 소개했다. 후반 10분이 지나도 호날두가 출전하지 않자, 로빈장 대표가 유벤투스의 인솔자인 파넬 네드베드 부회장을 찾아가 따지고 호소까지 했지만 “호날두가 안 뛴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는 것. 경기 후 유벤투스의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은 “호날두가 컨디션 난조와 근육 문제로 힘들어했고, 경기 하루 전(25일) 출전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실상 정리됐다”고 말했다. 유벤투스는 한국을 방문하기 전 싱가포르와 중국 난징에서 한 차례씩 친선전을 가졌다. 호날두는 21일 싱가포르에서 토트넘을 상대로 63분, 24일 난징에서 인터밀란을 상대로 90분 풀타임을 뛰었다. 그사이에 여러 이벤트도 소화했다. 빡빡한 아시아 투어 일정을 짠 구단 처사에 호날두가 화를 냈고, 한국에 오기 전 이미 뛰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여러 정황에서 드러난다.

 

유벤투스 “호날두가 안 뛴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부상 예방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웠다고 해도 호날두의 태도는 곳곳에서 한국 팬들을 실망시켰다. 팀 미팅 전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아 그가 메인이 되기로 한 팬 미팅과 사인회는 파행됐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결장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는 취재진을 노려본 뒤 무응답으로 떠났다. 이탈리아로 돌아가서는 멀쩡히 러닝머신을 타는 모습을 개인 SNS로 올려 한국 팬들을 한 번 더 분노하게 했다. 유벤투스 구단 내부와 이탈리아 현지 언론도 한국 팬들에게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은 호날두의 모습을 비판했다. 메시가 2010년 소속팀 바르셀로나와 방한했을 당시 감기몸살로 인해 출전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15분여를 뛰며 팬 서비스를 한 것과 비교됐다.

유벤투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유벤투스는 약속한 킥오프 시각(오후 8시)이 지나도록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예정보다 2시간 늦게 입국한 유벤투스는 호텔로 와서 식사, 팀 미팅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오후 6시30분이 넘어 숙소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출발한 탓에 금요일 저녁 강변북로의 교통체증에 갇혔다. 결국 오후 8시가 훌쩍 지나 유벤투스 선수단을 태운 3대의 버스가 도착했다. 그 와중에도 유벤투스는 워밍업 시간 등을 요구했고, 경기는 9시가 다 돼 시작할 수 있었다. 중계사인 KBS는 1시간 넘게 빈 그라운드를 보여주는 초유의 방송 공백 사태를 맞았고, 6만 명이 넘는 관중은 찜통 더위 속에 하염없이 부채질만 했다.

게다가 유벤투스는 경기 시간을 전·후반 40분씩 하고, 하프타임을 10분으로 줄이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다. 예정된 전세기의 출국 시간인 새벽 1시에 맞춰 떠나겠다는 의도였다. 프로축구연맹은 경기 시간 전·후반 45분과 하프타임 15분을 준수하겠다고 반발했다.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유벤투스가 경기를 취소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놨다는 게 프로축구연맹의 설명이었다. 이런 사태에도 유벤투스는 이탈리아로 돌아간 뒤 어떤 사과문이나 성명을 내지 않고 있다.

팀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경기 후반이 끝나기 전 관중들이 자리를 뜨고 있다. © 뉴시스
팀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경기 후반이 끝나기 전 관중들이 자리를 뜨고 있다. © 뉴시스

예고된 참사였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일정 자체가 정상적인 이벤트가 진행되기 어려웠다. 유벤투스는 사실상 당일치기로 한국을 찾았다. 당초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지기로 한 경기가 취소되면서 대안으로 찾은 것이 한국이었다. 그 결과 경기가 벌어지는 26일 오후 1시에 들어와 다음 날 새벽 1시에 떠나는 12시간 일정이 잡혔다. 그나마도 중국에서 출발이 지연되며 10시간도 채 머물지 못했다. 호텔로 이동해 팬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를 갖고, 바로 경기장으로 이동해 친선전을 소화한 뒤 자정이 조금 지나 다시 출국하는 스케줄은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다

주관사인 더페스타는 “전세기를 이용하니까 문제없다”고 한 유벤투스 마케팅 책임자의 호언장담만 믿었다. 업계에 거의 알려진 바 없는 군소 회사는 초대형 이벤트를 치를 역량이 부족했다. 메인인 경기 진행뿐만 아니라 사전 이벤트, 경기장 내 응대 등 곳곳에서 구멍이 나 소비자의 불만이 속출했다. 급기야 경기장 내 A보드로 홍보된 스폰서 중 하나가 국민체육진흥법상 금지돼 있는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인 것으로 밝혀져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중계사인 KBS는 졸지에 불법 사이트를 시청자들에게 노출한 셈이 되고 말았다.

더페스타의 로빈장 대표는 스스로를 뉴욕 월가에서 일한 재무 관리 전문가로 소개하며 이번 친선전 유치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 이후 책임감 있는 태도나 빠른 대응 없이 유벤투스와 프로축구연맹 사이를 오가며 책임공방을 펼치는 중이다. 경기 후 종일 자신의 이름이 검색어 1위를 달리자 그제야 입장문과 함께 호날두 출전 조항을 공개했지만, 자세한 계약서 내용과 법적 책임에 대한 문의에 대해서는 답을 피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의 책임도 적지 않다. 대전료 격으로 받는 5억원에 눈이 멀어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무너트렸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올스타전 형식의 대회지만 프로축구연맹은 주관사가 더페스타이고 K리그는 초청팀 형식으로 참가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주인 의식은 실종된 채 올스타전 수익으로 잡은 5억원을 메우기 위해 택한 유벤투스전은 대참사로 돌아왔다.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돈벌이에 손을 내밀며 명의를 빌려주고, 무모한 행위를 방관한 격이다.

구매자들의 집단소송 움직임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이번 ‘호날두 노쇼’ 사태는 슈퍼스타에 기댄 대형 이벤트의 양면성을 보여줬다. 지난해 러시아월드컵에서 기적 같은 독일전 승리 이후 상승세를 타던 한국 축구에 상처와 실망감을 준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숙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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