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보람이가 지상파 공룡 MBC와 맞먹는다
  •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boong33@skku.edu)
  • 승인 2019.08.22 14: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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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의 포노사피엔스] 포노사피엔스發 혁명으로 권력 교체…‘SNS+팬덤’ 혁명 만들어

시사저널은 이번 호부터 매월 한 차례씩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가 쓰는 ‘최재붕의 포노사피엔스’를 연재합니다. 최 교수는 화제의 신간 《포노사피엔스》의 저자로 수많은 강연회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는 융·복합 기술공학 전문가입니다. 최 교수는 이번 ‘최재붕의 포노사피엔스’를 통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순식간에 불어닥친 ‘4차 산업혁명’ 현장을 밀도 있게 그려나갈 계획입니다. 인문학과 공학을 하나로 연결하는 융·복합 전문가의 눈을 통해 제조업의 한계에 봉착한 우리 산업계가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지도 속 시원하게 진단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아마 2016년부터였을 거다. 온 사회가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 기폭제는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사건이었다. 전 세계가 경악했고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당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는 광풍이 온 사회를 휩쓸었다. 모든 직업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고,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는 가득했지만, 무엇을 어찌할 수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미래를 대비한다고 뜬금없이 인공지능을 배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막연하게 오지 않은, 그렇지만 꼭 올 것만 같은 그런 불안한 미래로 남겨진 채 잦아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도둑처럼 혁명이 찾아들었다. 인공지능도, 로봇도, 자율주행차도 아직 우리 주변에 찾아오지 않았지만, 인류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일상의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가 가진 모든 상식을 바꾸고 내가 지금까지 해 오던 모든 일의 본질까지 바꿔야 하는 엄청난 혁명의 시대가 어느새 현실이 됐다.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모든 데이터는 혁명의 시대가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왔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에게 혁명은 현실인가, 아니면 막연한 미래인가. 당신의 일상에 찾아온 혁명을 인지하라. 그것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출발점이다.

데이터는 혁명의 흔적을 말한다

2017년 AMA(American Music Award) Social Media 부문에서 BTS가 세계 1위로 호명됐을 때 경악한 것은 미국뿐만이 아니었다. 엄청난 미국 청소년 팬들이 ‘FAKE LOVE(페이크 러브)’와 ‘BTS’를 합창하는 모습은 한국의 어른들을 더욱 경악하게 했다. 방송에서는 보지도 못했던 우리나라 아이돌이 세계 1위에 오른 것도 놀랄 일인데, 심지어 미국에서 저렇게 엄청난 광팬을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BTS는 그렇게 미디어 산업혁명의 상징이 됐다. 유튜브를 통해 데뷔하고 활동하면서 ‘ARMY(아미)’라는 강력한 팬덤을 통해 세계 1위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들의 성공은 음악 소비 생태계 혁명의 상징이다. 음악 소비의 절대 권력이었던 방송사와 음악 유통업체들이 권력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팬덤(Fandom)에 내어주었다는 걸 BTS가 증명해 냈다. 그렇게 미디어 산업 생태계에 혁명은 현실이 됐다.

지난 50년간 대한민국 절대 언론권력이던 지상파 방송사의 최근 경영 성적은 참혹하다. 주 수입원인 광고매출은 스마트폰이 등장한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절반 이하로 내려갔다. 올해 실적은 더욱 절망적이다. 상반기에만 4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KBS와 MBC는 결국 월화드라마를 폐지하기로 하고, 제작비가 많이 드는 프로그램들을 대폭 정리하기로 했다. 막연했던 혁명이 그들에겐 현실이 됐다.

그들의 광고비를 앗아간 혁명군은 명확하다. 네이버는 이미 2016년 광고매출 3조원 가까이에 근접하면서 지상파 3사와 신문 3700여 개사의 광고비 합계를 넘어섰다. 그리고 네이버가 주춤하는 사이 동영상 부문에서는 모바일 동영상 점유율 85%를 넘긴 유튜브가 새로운 혁명군으로 급속 성장해 버렸다. 이미 대한민국 국민 3100만 명이 매일 유튜브를 접속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데이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은 TV를, 그리고 절반은 유튜브를 보고 있다고 말이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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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튜브’ 月 광고수익 37억…MBC와 비슷

최근 6살 꼬마 보람이가 만든 유튜브 채널 ‘보람튜브’가 월 광고수익 37억원을 올렸다는 뉴스가 우리 사회 전체를 경악하게 했다. 청담동에 100억대 건물을 매입하면서 알려진 보람튜브의 데이터는 경이적이다. 보람이와 놀아주려고 엄마와 함께 시작한 보람튜브 브이로그 채널의 구독자 수는 1700만 명을 넘었고, 토이리뷰 채널도 1500만 명을 넘었다. 영상 한 편당 평균 조회 수는 무려 2900만 회에 달한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결국 누적 조회 수 기반으로 광고비를 지급하는 유튜브 정책에 따라 보람이는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MBC 노동조합의 성명은 비통하다. “7월25일 하루 MBC 광고매출이 1억4000만원이다. 임직원 1700명의 지상파 방송사가 여섯 살 이보람양의 유튜브 방송과 광고매출이 비슷해졌으니, MBC의 경영 위기가 아니라 생존 위기가 닥친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지상파 방송에 찾아온 혁명이다. 많은 이들이 보람이 수익의 부당함과 기존 시스템의 붕괴에 대해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유튜버 수입을 규제하자는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왔다. 그들은 현실에 찾아온 혁명을 부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이미 혁명은 현실이다.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면 수익을 만들어낸 원인은 명확하다.

만약 MBC 드라마 한 편이 시청자 수 2900만 명을 찍었다면 시청률 90%를 달성한 게 된다. 시청률 90% 드라마라면 광고가 월 37억원만 붙을까. 그 어려운 걸 보람튜브가 달성했으니 수익이 따라오는 건 당연하다. 미디어 소비의 형태가 달라졌으니 미디어 산업이 재편되는 건 숙명이다. 지상파 방송국은 이제 타 채널과 시청률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 KBS·MBC가 권력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소비자가 절대 권력이 된 시대다. 상식과 권력이 교체하는 진정한 혁명의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참, 어른들은 알고 있을까. 보람튜브가 매월 350만 달러를 유튜브로부터 벌어들이는 외화 획득 효자기업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여전히 내 상식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그래서 혁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에게는 오직 ‘부작용’만 보일 뿐이다.

프랑스의 최고 지성으로 불리는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음악 소비 변화는 미래 소비 변화를 예측하는 지표’라고 했다. 음악 소비의 범위를 확대하면 바로 미디어 소비가 된다. 미디어 소비 산업에는 이미 거대한 혁명이 현실이 됐다. 이 혁명은 어디까지 번져 있을까. 금융도 이미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행에서 조사한 모바일뱅킹 이용률은 이미 63.5%(2018년 12월 조사 기준)에 달한다. 50%를 넘었으니 우리나라 은행 업무의 표준은 이제 모바일뱅킹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기준 은행 업무 중 무인서비스 처리 비중이 이미 90.5%에 달한다. 산술적으로는 90% 지점을 폐쇄해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씨티은행은 80% 지점 폐쇄를 전격 실시하고 실적을 7%나 개선하며 디지털 금융 시대의 도래를 입증했다. KB국민은행은 결의에 찬 파업을 하루 만에 해산했다. 이유는 은행 업무가 문제없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은행가의 혁명군은 카카오뱅크와 토스다. 지점 하나 없이 오직 스마트폰으로만 은행 업무를 보는 카카오뱅크는 출범 2년 만에 천만 고객을 확보했다. 토스도 서비스 개시 3년 만에 120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금융 서비스로 안착했다. 은행도 업의 본질에서 비즈니스 형태까지 혁명적 변화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4월24일 더팩트뮤직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한 BTS ⓒAP연합
4월24일 더팩트뮤직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한 BTS ⓒAP연합

새로운 권력에는 더할 수 없는 기회

유통시장도 거대한 혁명의 물결을 피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오프라인 소비는 줄고 온라인과 모바일 유통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유통 혁명의 시대에 돌입했다. 백화점 3분의 1이 문을 닫았고 프랜차이즈 전문 소매점 20%가 이미 파산했다. 125년 전통의 미국 백화점의 상징 시어즈(SEARS)는 이미 파산했다. 미국 유통의 혁명군은 아마존이다. 앱 하나로 매장도 직원도 없이 유통을 재정의한 이 회사는 이미 신문명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도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디지털 유통은 급속히 증가 중이다. 유통산업 생태계의 재편은 이제 정해진 운명이다.

우리는 매일 영상을 보고 금융 업무를 처리하고 또 물건을 산다. 이렇게 일상에 혁명이 도둑처럼 찾아왔다. 여기 이 혁명에는 인공지능도, 로봇도, 자율주행차도 아직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우리가 인지해야 할 혁명은 바로 일상에 찾아온 혁명, 인류 삶의 거대한 변화다. 이 혁명은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준비해야 한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타이틀이 붙은 혁명적 변화라면 더욱더 세심하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모든 혁명은 권력의 교체를 수반한다. 혁명은 기존 권력엔 위협이지만 새로운 권력에는 더할 수 없는 기회다. 개인 회사가 만든 영상 한 편이 전 세계 3000만 명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시대가 열렸다. 권력의 교체가 일어나는 혁명의 시대, 당신은 ‘위기’와 ‘기회’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지금 이 시대가 당신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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