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쟁의 추억
  • 김정헌(화가, 4·16재단 이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4 18:00
  • 호수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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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추억’, 이는 말할 것 없이 일본 이야기다. 일본 총리 아베가 드디어 일을 냈다. 그는 ‘평화 헌법’인 지금의 헌법을 개정해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고 한다.

어째든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패권주의와 옆 나라 한국에서 때아니게 벌어진 6·25 전쟁으로 빠르게 경제 부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니 이들에게 전쟁의 기억은 저 멀리 사라져가고 오로지 전쟁과 학살로 엉켜 있는 ‘살인의 추억’ 만이 그들을 가끔 자극하고 흥분시킬 뿐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우월의식은 바로 이런 조선 침탈(임진왜란이나 식민지배)로 얻어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조선’, 지금의 한국의 발흥을 눈뜨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본 적이 있는가? 같은 장소에서 살인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데, 이 사건은 끝까지 해결이 안 되는 그런 줄거리다. 이런 연쇄 살인의 미해결에 재미 들린 범인이 살인의 기억에 매달려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때 살인의 기억은 ‘살인의 추억’이 된다. 이는 일본이 저지른 수없이 많은 전쟁과 난징 대학살 같은 만행을 종전 후에 ‘전쟁 범죄국’으로서 일본의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은(또는 못한) 경우와 유사하다.

그들의 만행에 대한 철저한 단죄가 안 되는 바람에 그들에게는 전쟁과 그에 따른 만행(학살)도 일종의 추억이 된 것이 아닐까?

종전 후 1949년에 태어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소설가에게서도 이런 과거의 기억이 시시때때로 드러난다. 그의 소설들은 대부분 이상한 가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가상이 전혀 현실에서 동 떨어진 그런 가상이 아니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항상 ‘초현실’의 세계를 넘나든다. 그는 이상하리만치 여행을 좋아하는데 그의 여행 수필집 《하루키의 여행법》을 보면 그가 다닌 여행은 거의 초현실적인 여행이다. 대표적인 여행이 종전 바로 직전에 중국(내몽고)과 몽골 국경선에서 이루어진 2만 명의 일본군이 사망했던 ‘노몬한전쟁’이다. 일본군은 이 지역에 중국인들을 이용해 지하 요새를 구축하는데 그들은 요새를 구축하자마자 목이 철사로 꿰어져  수천 명이 다 학살당한다.

이런 학살은 하루키의 아버지도 참전했다는 난징 대학살과도 연관된다. 그의 최근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는 바로 이 사건의 초현실적인 상징이다. 그러나 그는 이 ‘노몬한’을 둘러보면서 2차 세계대전 중 전쟁에 끌려와 사망한 200만 명의 일본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읊조린다.

“일본이라는 밀폐된 조직 속에서 이름도 없는 소모품으로 아주 운 나쁘게 비합리적으로 죽어갔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는 일본이라는 평화로운 ‘민주 국가’에서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받으면서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표면을 한 꺼풀 벗겨내면 그곳에는 역시 이전과 비슷한 밀폐된 국가 조직이나 이념 같은 것이 면면히 숨 쉬고 있지 않을까?”

그는 세계에 널리 알려진 소설가로서 아베와는 다른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과거를 돌아보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전쟁을 단순히 과거를 망각한 ‘추억’으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이번 사태로 일본에도 이런 양심적인 시민들이 ‘반 아베’를 외치며 평화 구축의 시민으로 다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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