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를 본 적이 있다. 그의 아내이자 탤런트인 신은정의 화보 촬영장에 예고 없이 나타난 것이다. ‘와, 피지컬이 모델 뺨치네.’ ‘게다가 로맨티스트였어!’ 강렬하게 남았던 그에 대한 기억이다. 이후 그는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활약했고, 특유의 선 굵은 연기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박성웅’ 하면 떠올려지는 장르가 있다는 것,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이번 작품 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 감독과 동료 배우가 오직 ‘그’만을 후보에 올려두고 출연을 설득했다. tvN 수목드라마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이하 《악마가》)의 ‘악마’가 바로 그 역할이다. 《악마가》는 악마(박성웅)에게 영혼을 판 스타 작곡가 하립(정경호 분)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인생을 건 일생일대 게임을 펼치는 영혼 담보 코믹 판타지다. 박성웅은 극 중 악마적 메소드 연기로 유명한 톱 배우 ‘모태강’ 역을 맡았다. 무명 시절을 거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지만, 실은 악마가 빙의된 상태. 하립과 영혼 계약을 체결한 절대 갑 악마 ‘류’가 모태강의 본체다.
박성웅이 연기하는 악마는 그동안 우리가 접해 온 악마와는 다른 캐릭터다. 톱스타 모태강의 몸에 본체를 숨긴 악마를 ‘극과 극’ 매력으로 풀어내는데, 틀에 박히지 않은 악마 모태강 캐릭터는 싱크로율 200%의 연기에 CG효과가 더해지면서 더욱 정교하고 독보적인 악마로 완성됐다. 《악마가》는 괴테의 고전 명작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적 설정 위에 현실적이고 풍자적인 요소를 가미해 유쾌한 웃음과 공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영혼의 갑을관계’로 돌아온 ‘레전드 콤비’ 정경호, 박성웅의 호흡도 볼거리다.
SF 미스터리 추적극 《써클: 이어진 두 세계》를 통해 실험적인 연출로 호평을 이끌어낸 민진기 감독과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영화 《싱글즈》 《미녀는 괴로워》 《남자사용설명서》 등 휴머니즘이 녹여진 코미디에 일가견 있는 노혜영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배역에 대해 소개해 달라.
“악마가 빙의된 톱스타 ‘모태강’을 연기해요. ‘모태강’은 모두가 생각하는 악마와는 다른 독특한 악마예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고 도전 욕구가 생겼죠. 코믹 요소를 가미해 자칫 어두울 수 있는 설정들을 재미있게 풀어나간다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이에요. 노력한 만큼, 그 이상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드라마가 나올 것 같아요. 액션, 멜로, 휴먼, 코믹, 판타지, CG마저 잘 나온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출연진이 화려하다.
“배우들과 다채로운 케미스트리를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말하지 않아도 뭘 원하는지 서로 잘 아는 정경호와의 케미는 물론이고, 모태강의 비서이자 강 과장 역으로 나오는 윤경호, 지서영을 연기하는 이엘과의 관계에서도 독특한 케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모태강은 지서영과의 관계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 부분도 흥미롭고요. 인간의 몸에 들어간 악마가 저항하고 흔들리는 모습, 차갑지만 때로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모태강은 그야말로 반전 있는 악마예요. 그래서 더 매력적입니다.”
박성웅과 공동 주연을 맡은 정경호. 두 사람은 OCN 《라이프 온 마스》에 이어 tvN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로 재회해 ‘믿고 보는 콤비’로 사랑받고 있다. 《라이프 온 마스》에서는 시간을 뛰어넘어 만나게 된 과거와 미래 형사로 호흡을 맞췄고,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에서는 인생을 걸고 게임을 벌이는 악마와 스타 작곡가로 의기투합한 것.
실제로 두 사람은 《라이프 온 마스》 이후 인생을 나누는 좋은 선후배가 됐다는 후문이다. 정경호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박성웅이라는 사람을 빨리 알았다면 제 인생이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공개적인 애정표시를 했고, 이에 박성웅은 “이제라도 정경호를 만난 게 다행이다”고 화답할 만큼 달달한(?) 관계다.
함께 출연하는 정경호와는 특별한 사이라고 들었다.
“이 작품 역시 정경호가 적극적으로 추천해 출연하게 됐어요. 대본이 탄탄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말하더라고요. 정경호가 ‘이 역할은 선배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대본을 읽었고, 이후 미팅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 감독님이 함께 나왔어요. 작품을 할 수밖에 없었죠. 물론 작품도 좋았고, 정경호와 호흡도 좋아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요. 5개월 동안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군데군데 예상치 못한 애드리브로 현장은 줄곧 웃음바다였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정경호는 몇 년 동안 잔소리를 듣고도 못 고치던 습관을 그의 한마디로 바로 고쳤을 정도로 그를 믿고 따른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두 사람을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 한번은 정경호가 술을 마시고 그의 팔을 물며 과한 애정표현을 했다는 후문.
정경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 형을 만났을 때 무섭다기보다는 큰 존재로 다가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어려웠다. 한번은 술을 많이 마시고 형에게 ‘큰 버팀목이 생긴 것 같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형은 정말 내 마음의 안식처다.”
민진기 감독은 캐스팅 비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떠올려도 모태강 역을 맡을 만한 배우는 박성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던지라 박성웅에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절친 정경호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빅 픽처였다. 섹시하고 코미디적인 부분을 가지면서도 영혼을 쥐었다 폈다 하는 포스를 가진 배우가 박성웅 말고 또 있을까 싶다.”
톱스타 역할에 대한 부담은 없나.
“JTBC 드라마 《맨투맨》 이후로 톱스타 역할은 두 번째예요. 제가 톱스타가 아니라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하며 연구하고 노력해요. 전작과도 캐릭터가 달라 매 순간이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톱스타보단 악마 측면에 방점을 찍고 보시면 재밌을 것 같아요.”
영화에 출연하면 유행어를 만들어낸다. 이른바 유행어 부자인데 이번엔 어떤가?
“제가 유행시키려고 한 적이 없는데, 관객분들이나 시청자분들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행복한 일이죠. 아, 저도 제 유행어를 일상에서 가끔 쓰고 있어요(웃음). 이번 드라마에서도 반복되는 대사가 있어요. ‘스탠바이 온!’이라고 말하면 변신을 하거든요. 그게 초반에 많이 나와서 시청자분들이 가볍게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악마가》라는 드라마에 대해, 판타지 속에 응축돼 있는 우리의 삶, 그리고 철학이 보이는 드라마라고 했다. 희로애락이 있고, 치부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해피엔딩이다. 모든 걸 깨닫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건 행복이니까. “보시면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드라마가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