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소녀상 전시 중단’ 논란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6 15: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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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에서 “헌법 21조 어겼다” 항의 집회 이어져…“전시 중지 멈춰달라” 인터넷 서명운동도

일본 열도 중부에 자리한 아이치현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제 중 하나인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열린다. 2010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이 국제예술제는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8월1일 시작해 10월14일 막을 내린다. 하지만 기획전시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는 전시기간 75일 중 겨우 3일을 채운 뒤 중지됐다. 협박을 포함한 항의전화와 메일이 빗발쳐서다. 결국 관람자와 관계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며 주최 측은 전시장 문을 닫았다.

8월4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 문화예술센터 밖에서 일본인들이 아이치 트리엔날레 전시 중단을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4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 문화예술센터 밖에서 일본인들이 아이치 트리엔날레 전시 중단을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협박’과 ‘망언’으로 얼룩진 예술제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는 위안부, 천황제, 일본 헌법 9조, 미군기지 문제 등을 모티브로 한 작가 16인의 작품이 전시됐다. 협박이 쇄도한 작품은 한국 김서경-김은성 부부의 ‘평화의 소녀상’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천황이었던 쇼와 천황을 모티브로 한 오우라 노부유키의 ‘원근을 안고’였다. 이들 작품은 과거 일본에서 전시가 불허된 경험이 있는 작품들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2012년 도쿄도 미술관에서 열린 JAALA국제교류전에서 미니어처가 전시되었는데, 미술관의 운영요강에 맞지 않는다며 작가도 알지 못한 채 4일 만에 철거당했다.

‘원근을 안고’의 경우, 전시를 거부당한 역사가 더 길다. 1975년부터 10년간 뉴욕에서 체재하며 제작한 이 작품은 1986년 도야마(富山) 현립 근대미술관이 주최한 ‘86도야마의 미술’에서 처음 전시됐다. 이 작품은 전람회가 끝난 후 도야마현 의회에서 “불쾌하다”고 비난당했고, 우익단체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작품은 해당 전람회의 도록과 함께 비공개로 전환되었고, 1993년 미술관은 작품을 매각했다. 그리고 도록 470권을 전부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 후 작가는 작품 공개와 도록 재출판을 위해 소송했으나 패소했다. 2009년에도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미술관에서의 전시가 거부당했다.

기획전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는 과거 열린 ‘표현의 부자유전’에서 이어지는 전시다. 2012년 5월 도쿄 신주쿠의 니콘살롱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국 사진작가 안세홍의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사진전. 당시 니콘은 개최 직전에 중지를 통보한다. 다행히 도쿄 지방재판소의 가처분 결정으로 사진전을 열 수 있었다. 니콘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안세홍 작가를 지원한 시민단체가 2015년 1월 도쿄 네리마의 갤러리에서 ‘표현의 부자유전’을 개최했다. 2015년 전람회의 연속선상에 있는 이번 트리엔날레의 기획전에는 안세홍 작가의 사진작품도 물론 전시됐다.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가 성사된 데는 트리엔날레 예술감독 쓰다 다이스케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쓰다 감독은 미디어와 저널리즘, 표현의 자유에 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저술활동을 펼쳐온 이다. 그는 2015년의 ‘표현의 부자유전’을 감상하고 표현의 기회를 박탈당한 작품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2017년 트리엔날레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했고 작년에는 ‘표현의 부자유전’의 실행위원들과 협의해 기획전을 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쇄도하는 협박과 항의에 전시는 또다시 파국을 맞았고, 3일 만에 중단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의 전시와 그 중지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일본 정치인들의 발언이었다. 전시 이틀째인 8월2일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기획전을 관람했다. 나고야는 아이치현의 중심 도시로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가 전시된 아이치 예술문화센터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전시를 관람한 후 가와무라 시장은 소녀상 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봐도 일본인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다. 즉시 중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트리엔날레의 개최 비용을 아이치현과 나고야시 등이 부담하고 일본 정부도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과 관련해 “세금을 사용하고 있으니 마치 일본 전체가 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시 중지를 요구했다. 마쓰이 이치로 오사카 시장과 자민당의 여러 의원도 전시를 비판하고 나섰다. 마쓰이 시장은 일본 보도진들의 취재에 “일본에서 공금을 투입하며 우리 선조를 짐승같이 취급하는 듯한 전시물을 전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고 발언했다.

물론 이들 발언을 비판하는 정치가도 있다. 자민당의 다케이 스케 중의원은 지난 8월3일 자신의 트위터에 “정부나 행정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납세하고 있다. 정부와 행정에 종순하거나 같은 의향을 가진 작품에만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또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는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의 발언이 일본 헌법 21조의 ‘표현의 자유’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오무라 지사는 8월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금으로 (전시회를) 진행하기 때문에라도 표현의 자유, 헌법 21조를 지켜야 한다”고 자신의 뜻을 밝혔다.

8월4일 아이치현 문화예술센터 8층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손에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 들려 있다. 주최 측의 전시 중단 결정에 따라 이날부터 전시장은 닫힌 상태다. ⓒ연합뉴스
8월4일 아이치현 문화예술센터 8층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손에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 들려 있다. 주최 측의 전시 중단 결정에 따라 이날부터 전시장은 닫힌 상태다. ⓒ연합뉴스

전시 재개 요구 계속돼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의 테마는 ‘정(情)의 시대’다. 쓰다 예술감독은 이번 전람회의 전체 콘셉트에 대해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이라는 한자에는 ‘감각에 의해 생기는 마음의 움직임’(감정, 정동), ‘실상, 사실, 진상’(실정, 정보), ‘인정’ 등 크게 세 종류의 의미가 있다. 2015년, 내전이 계속되는 시리아에서 대량으로 발생한 난민 신청자를 감정으로 거부하는 움직임이 커졌던 유럽 각국의 여론을 바꾼 것은 3세의 시리아 난민 소년의 익사를 담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중략) 유럽을 가득 채우고 있던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 불안을 바꾼 것은 인간이 가진 ‘정’ 중에서도 가장 빨리 표출하는 원초적인(primitive) 연대와 타자에의 상상력이지 않았는가.”

쓰다 감독은 작품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SNS에 투고하지 못하도록 했다. 인터넷상의 단편적인 ‘정보’에 의해 작품이 평가받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정보’는 전시를 중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또 다른 ‘정’은 전시 재개를 위한 연대를 만들어냈다. 나고야시에서는 가와무라 시장에 대한 항의집회가 열렸고 신문에는 전시 중지를 비판하는 독자 투고가 속속 실리고 있다. 서명 사이트(change.org)에서는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의 작품 철거와 전시 중지를 멈춰 달라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8월14일 낮 12시 기준 약 2만6000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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