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소녀상’ 압력에 의아한 독일 “일본 왜 이러지?”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6 13: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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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독일 ‘평화의 소녀상’ 전시 기관에 끊임없는 압력…“1년 다 된 지금도 우릴 찾아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독일의 한 사회복지시설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을 문제 삼고 작품 철거를 요구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로 새롭게 확인됐다.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특별 전시관이 일본 정치권과 극우파의 압력으로 폐쇄된 사건은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뉴욕타임스 보도를 통해 서구 사회에도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독일에서는 일본 정부가 현지 대사관과 영사관을 통해 독일의 문화·교육시설에까지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유력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 보도로 알려지면서 문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로테 죌레 하우스는 독일 북부 함부르크의 복지시설로 세미나 공간 및 여러 사회봉사단체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 개신교 신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의 이름을 딴 이 기관은 지난해 8월14일부터 9월30일까지 6주간 로비에 김서경·김운성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안내문도 곁들였다.

2018년 8월14일부터 약 6주간 독일 함부르크 내 복지시설 ‘도로테 죌레 하우스’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됐다. ⓒ풍경세계문화협의회
2018년 8월14일부터 약 6주간 독일 함부르크 내 복지시설 ‘도로테 죌레 하우스’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됐다. ⓒ풍경세계문화협의회

“소녀상 전시 크게 문제시해 매우 놀랐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이레네 팝스트 독일 개신교 북부지회 여성위원회 대변인은 “여성위원회는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문제를 제기해 왔으며, 평화의 소녀상 전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유감스럽지만 분쟁지역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는 문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팝스트 대변인은 소녀상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와 닿는 특별한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소녀가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연약하면서도 강인해 보였다”며 “하루에 100여 명이 오가는 곳인데, 방문객들도 동상의 취지에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전시 이틀째 되던 날, 그는 뜻밖에도 함부르크 일본영사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영사라고 밝힌 남성은 “이 동상은 반일적 작품이며 동상과 관련된 내용들이 모두 사실과 다르니 치워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2015년 한국과 일본이 협의를 맺어 문제가 해결됐고, 전시 설명에 적힌 ‘성노예’라는 단어도 틀린 말”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위원회 측은 내부 논의를 거쳐 일본영사관 측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소녀상에서 일본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작가의 말대로 평화에 대한 염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서한을 보내 ‘일본 측의 입장을 함께 전시해 대화를 유도하자’ ‘공동으로 행사를 주최해 위안부 문제와 소녀상에 대해 공개적으로 대화하자’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대신 마루야마 후미에 당시 함부르크 총영사가 여성위원회를 영사관으로 초청했다. 마루야마 총영사는 소녀상을 치워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이뿐만 아니라 영사관 측은 함부르크 주정부에까지 항의를 했다. 정교분리 원칙을 지키는 독일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팝스트는 “교회는 일본에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있어 6주간 예정대로 전시를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여러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팝스트는 “소녀상 전시를 이렇게나 크게 문제시해 매우 놀랐다. 오히려 일본 총영사의 격한 반응이 소동을 일으켰고, 저항을 야기했다”고 술회했다. 또한 그는 “일본 총영사가 전시에 관여하는 것이 기억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에서는 표현의 자유 및 예술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매우 중요하다.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독재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8월13일 독일 문화기관들에 대한 일본대사관의 개입에 대해 보도했다. ⓒ쥐트도이체차이퉁 홈페이지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8월13일 독일 문화기관들에 대한 일본대사관의 개입에 대해 보도했다. ⓒ쥐트도이체차이퉁 홈페이지

일본 정부의 과도한 개입, 독일에선 ‘역효과’

일본 정부는 전시 이후에도 사람을 보내 철거 여부를 확인하고, 소녀상의 행방을 묻기도 했다. 팝스트에 따르면 전시가 끝난 지 1년이 다 돼 가는 현재까지도 일본인들은 소녀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로테 죌레 하우스를 찾는다. 그는 “지난주(8월 첫째 주)에도 한 일본인이 왔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한 방문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기관은 관광객이나 예술 애호가가 작품 감상을 목적으로 흔히 찾아오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팝스트는 일본영사관과 방문객들에 대해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단 1mm도 토론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으며 타협할 용의가 전혀 없어 보였다”는 인상을 전했다.

이처럼 독일 내 일본대사관과 영사관은 조직적이고 집요하게 소녀상 전시에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이 대응 매뉴얼을 공유하고 있다는 정황도 있다. 마루야마 함부르크 총영사는 소녀상 작가 및 관련 시민단체들을 가리켜 ‘극단주의자들’이라고 표현했다. 공교롭게도 올해 6월, 독일 리페 지역 자치기구(LWL)의 마티아스 뢰브 회장을 만나 LWL이 관할하는 탄광박물관의 소녀상 전시를 항의한 이소 마사토 뒤셀도르프 일본 총영사도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김운성 작가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극단주의라는 비판은 말이 안 된다. 오히려 소녀상 설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극단적이다. 작품을 만들어 보여주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작가가 하는 일”이라며 예술의 자유를 옹호했다. 그는 “한 국가가 한 작품에 대해 이 정도로 반응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일본영사관 측이 강압을 하면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일본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소녀상 전시 중단 사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선진국이라는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사건”이라고도 평했다.

실제 일본 정부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설치 방해는 독일에서 역효과를 내고 있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8월13일 ‘전쟁범죄-일본식 반사작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독일의 문화 기관들이 일본대사관의 개입에 의아해했으며 일부는 압력도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라인하르트 쵤너 본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는 8월3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아이치 트리엔날레 전시 중단은 “수치스럽고 터무니없으며 민주주의에 걸맞지 않은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쵤너 교수는 “이 (위안부) 문제를 일본에서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없다면, 도쿄에 첫 번째 공적인 위안부 추모비가 세워질 때까지 이 동상을 다른 나라에 세우기 위한 모든 활동을 지지하겠다”고 표명했다.

마티아스 뢰브 LWL 회장 또한 이소 총영사에게 “독일은 과거 나치 역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그런 책임감을 자체적인 문화에 구현했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이후에도 이런 작업을 통해 (과거사 문제를) 상기시키는 작업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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