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여행 보이콧 특수 못 누리는 韓…주적은 ‘바가지요금’?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0 10:00
  • 호수 15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주 만에 4분의 1토막 난 일본 여행 관심도
“국내 관광산업 체질 개선해야”

‘예고된 결과’였지만 중간 성적표는 예상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바람이 한 달 이상 불면서 일본 여행 보이콧 움직임도 점점 강력한 태풍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은 중국에 이어 자국을 두 번째로 많이 찾는 나라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가 일본이기도 하다. 그런 한국인들이 일본 관광을 본격적으로 거부하고 나섰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수치로 증명된다.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와 리서치 회사 컨슈머 인사이트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본 여행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대답한 사람은 8월 첫째 주 기준 7%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있기 바로 직전인 6월 넷째 주의 조사 결과는 27%였다. 불과 6주 만에 일본 여행에 대한 관심도가 거의 4분의 1토막 난 셈이다. 이런 결과는 컨슈머 인사이트가 2017년 1월부터 매주 조사를 실시한 이후 역대 가장 낮다.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42%와 비교하면 무려 35%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무엇보다 7%라는 숫자는 미주·유럽·아프리카 등 어느 권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나온 적이 없는 수치다.

일본 불매운동 이후 대마도 지역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8월9일 대마도에 여행 온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쇼핑몰인 티아라몰에 한국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일본 불매운동 이후 대마도 지역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8월9일 대마도에 여행 온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쇼핑몰인 티아라몰에 한국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관광산업은 심리적 요인이 핵심 변수

일본 여행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역시 크게 증가했다. “일본 여행에 관심이 적어졌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36%에서 81%로 올랐다. 무려 2.2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이 수치도 조사를 실시한 이후 가장 높다. 역시 어느 권역에서도 조사된 적이 없는 숫자다. 한·일 간에 발생한 초유의 사태가 일본 여행에서도 글자 그대로 ‘초유의 사태’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확실히 지금 한국인들은 일본 여행을 ‘거부’하고 있다. 문제는 추세다. 이런 추세는 지속될까? 전문가들은 ‘사드 사태’가 일본 여행 보이콧의 ‘오래된 미래’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사드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7년 20%대에 머물던 중국 여행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도는 사드 갈등 이후 10%대 초반으로 하락했다. 그리고 이런 수치는 지금까지도 반전 없이 유지되고 있다. 즉 한 번 돌아선 마음을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관광산업은 반도체 등 제조업과 달리 심리적 요인이 핵심 변수다. 거부감이 한번 들면 급격하게 냉각된다. 그리고 그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두세 달 전에 계획을 세우는 해외여행 특성상 일본 관광 불매운동은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금까지는 위약금 등 불이익으로 어쩔 수 없이 가는 경우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관광업계는 일본 여행에 대한 예약 자체가 크게 줄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더해 일본으로 가는 노선 자체도 축소되고 있다. 김민화 컨슈머 인사이트 연구위원(박사)은 “한번 꺾인 여행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며 “현 추세를 보면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일본 여행 관심도가 이전과) 더 극단적인 차이로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일본 여행 보이콧으로 파생된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인들의 한국 여행 취소 비율이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산업은 복합적이다.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관광)뿐만 아니라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관광)도 중요하다. 우리가 안 가면 상대도 그만큼 적게 올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제주도, 부산 등의 관광업계는 타격을 볼 수 있다. 관련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일본 여행의 대체재로 국내 여행지가 아닌 동남아, 중국, 홍콩 등 여전히 해외 여행지가 선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여행에 대한 ‘보이콧’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성수기를 맞이한 국내 관광업계가 별다른 호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국내 여행지는 왜 대체지로 선택 못 받나

일본 여행의 대체지로 국내 여행지가 선택받지 못하는 대표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바가지요금’이다. 바가지 숙박요금에 피서지 음식값 등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인식은 국민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제주도 갈 바에는 동남아’라는 말 역시 상식처럼 여겨진다.

언론도 매년 ‘바가지요금’을 지적하는 기사들을 쏟아낸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중앙·지역 언론을 가리지 않고 관련 기사들이 쏟아진다. 휴가철에 많이 찾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지역 언론인 강원일보는 8월12일 ‘국민관광지 강원도, 바가지요금 사라져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쓰기도 했다. 사실 이런 기사는 수십 년간 반복돼 왔다. 10년 전은 물론 20세기에도 그랬다. 포털사이트에서 ‘바가지요금’으로 뉴스를 검색해 보면 1990년에도 이런 기사는 수없이쏟아졌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한국은 30년이 다 되어 가는 기간 동안 휴가철 피서지 ‘바가지요금’ 하나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걸까. 이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까?

ⓒ시사저널
ⓒ시사저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조사한 결과가 있다.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와 컨슈머 인사이트는 2017년 1월부터 9월까지 3박4일 일정으로 국내여행 비용과 해외여행(아시아) 비용을 비교 조사했다. 결과는 통념을 뒤집는다. 3박4일간 해외여행의 1인당 총 비용은 평균 93만1000원, 국내여행은 28만9000원으로 조사됐다. 해외여행이 3.2배나 비싼 셈이다.

제주와 일본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 조사에 따르면 일본은 개별여행일 때 1인당 하루 평균 20만5000원이 든다. 제주는 10만6000원이다. 역시 두 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 김민화 연구위원은 “국내여행이 해외여행보다 비싸 해외로 간다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며 “해외여행을 가려면 제주도 비용의 두 배는 지출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했다. 업체 측은 올해도 역시 비슷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휴가철 바가지요금의 진원지로 지목받고 있는 곳 중 하나인 강원도 강릉시는 최근 바가지 횡포 논란을 전면 부인했다. 이기영 강릉시 보건소장은 8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8월8일부터 82개 숙박업소를 점검해 본 결과 위반사항을 적발한 게 없다”며 “숙박시설 공실 정보 안내 시스템의 가격과 비슷했고, 가격을 표시한 대로 받았다”고 말했다. 외지인이 현지 숙박업소를 빌려 한철 장사를 하면서 숙박요금이 뛰는 전대 행위와 관련해서도 “지금은 전대 행위가 없다. 전대한다면 숙박업자들이 터미널 등에서 호객행위를 했을 것인데 지금은 호객행위가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시민들은 국내여행을 하면서 ‘바가지 횡포’를 느끼고 있는 걸까. 전문가에게 물었다. 차기 한국관광학회장으로 선출된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먼저 서울과 지방의 차이다. 이 교수는 “유통 구조상 지방의 좋은 특산물은 서울로 제일 먼저 온다”며 “‘가장 신선한 해산물이 노량진수산시장으로 온다’는 말처럼 질 좋은 상품을 값싸게 누리던 서울·수도권 시민들에겐 여행지 음식 등이 질에 비해 비싸게 느껴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광지 상인연합회 등이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 질을 높이겠다는 선언과 그에 맞는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시기의 차이다. 한국인들이 휴가철을 맞아 대거 해외여행을 갈 때 정작 해외는 극성수기가 아닌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해외와 국내여행의 가격을 비교한다는 설명이다. 극성수기 때 국내여행 가격과 그렇지 않은 해외여행 가격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상당수 해외여행에서는 돈을 쓸 준비가 돼 있는 반면 국내여행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감각적·체험적으로 1~2번이라도 ‘바가지 횡포’를 겪게 되면 그걸 유독 크게 기억할 가능성도 높다.

ⓒ시사저널
ⓒ시사저널

비수기 관광 활성화 방안 찾아야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 관광산업의 체질에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한국은 성수기와 비수기의 가격 차이가 극명하다. 주중과 주말 가격 차이도 마찬가지”라면서 “관광산업 종사자분들께서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비수기 때 손해를 보지 않을 정도로 운영할 수 있다면 성수기 때 무리하게 가격을 인상할 필요가 없는데, 대부분의 지자체 관광지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지속적으로 관광객이 와야 하는데 현재는 계절성의 차이, 주말과 주중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상인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대안은 없을까. 이 교수는 결국 비수기 관광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는 “휴가 기간이 아닐 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관광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그래서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들이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조건을 정부와 각 지자체가 만들어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액티브 시니어는 재정상 여유가 있어 은퇴 후에도 여가생활에 적극 참여하는 노년·장년층이다.

이 교수는 “이분들이 비수기 때 보다 많은 여행에 나설 수 있게 비용을 낮춰줘야 한다”며 “기차·버스는 물론 지역 숙박과 관광지를 연계해 비용을 낮춘 ‘통합 패스’를 제공해 여행할 수 있게 만든다면 비수기의 위기를 극복해 궁극적으로 성수기 때의 ‘바가지 횡포’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