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에 세금 물리기, 담대한 결단인가 어리석은 시도인가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9 08:00
  • 호수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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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디지털세’ 승인에 아마존·구글 등 “비이성적 조치” 반발

지난 7월11일 프랑스 상원은 유럽 최초로 ‘디지털세’ 법안을 승인했다. ‘가파(GAFA)세’라고도 불리는 이번 법안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IT그룹들이 적용 대상이다. ‘GAFA’란 명칭부터 IT업계의 대표주자들인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연간 전 세계 매출 7억5000만 유로(9570억8200만원) 이상, 프랑스 매출 2500만 유로 이상을 기록하는 IT기업에 영업매출의 3%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디지털세’에 대한 국제적 대응을 촉구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란 시각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를 단순한 세금 징수로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본이 한국에 대해 경제보복을 한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엠마뉘엘 마크롱(사진) 정부가 디지털세 도입을 결정해 미국 정부와 글로벌 IT기업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 PTA 연합
엠마뉘엘 마크롱(사진) 정부가 디지털세 도입을 결정해 미국 정부와 글로벌 IT기업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 PTA 연합

서두르다 반격 맞은 프랑스 정부

8월24일부터 사흘간 프랑스 남서부 대표적인 휴양도시 비아리츠에서는 G7 회담이 진행된다. 어느 때보다 관심을 끄는 주요 사안이 바로 ‘디지털세’에 대한 국제적 합의 여부다. 국제무역을 두고 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가 디지털세 도입을 결정하면서 무역분쟁에 가세하게 됐다.

GAFA에 해당하는 네 개의 IT업체는 공교롭게도 모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한 미국발(發) 기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분쟁으로 분주한 와중에도 이번 프랑스의 과세 조치에 불편한 기색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는 디지털세에 대한 반격으로 “프랑스산 포도주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겨냥해 ‘바보 같은 짓’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올해 초 베아트리스 레이욜 프랑스 하원의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세 부과 대상 기업은 전 세계 약 150개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미국 기업이 50%에 이른다. 유럽 기업이 30%, 나머지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기업들이다. 절반이 미국 기업인 동시에, 이미 법안 이름부터 ‘GAFA세’로 회자되고 있어 미국을 정조준한 세금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흥미로운 건 ‘디지털세’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기에 앞서 프랑스가 왜 이리 빠르게 치고 나갔는가 하는 대목이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G7에 해당하는 국가들은 이번 비아리츠 회담에서 이 사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지난 7월18일 파리 근교 샹티이에서 7개국 재무부 장관들이 모여 사전 조율을 마치고 국제적 합의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가 이보다 한발 앞서 디지털세를 통과시키면서 불필요한 국가 간 갈등을 촉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세계적 회계법인인 PWC 소속 기욤 글론 국제회계 전문변호사는 “글로벌 IT기업을 때리면서 국내에서 장기화되고 있는 노란 조끼 시위대의 불만을 잠재우고, 유럽연합 내 ‘디지털세’ 논의를 가속화하기 위한 ‘이중적인 정치적 노림수’”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부자세 감소’와 ‘유류세 인상’을 두고 폭발한 반정부 여론을 달래고, 노란 조끼의 요구로 만든 여러 정책들로 인한 세수 공백을 메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게다가 IT기업을 겨냥한 디지털세에 대해 프랑스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지난 3월 프랑스 경제지 ‘라 트리뷴’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84%가 디지털세에 찬성했다. 정부 입장에선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충분히 확인한 후 디지털세 도입을 자신 있게 밀어붙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소기업 피해 우려…“프랑스에 페널티 될 것”

그러나 이러한 국내 여론만으로 프랑스 정부의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전망하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정부는 디지털세 부과를 통해 약 5억 유로의 세수가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마크롱이 노란 조끼 시위대에 약속한 경제적 지원 규모인 100억 유로의 5%선에 그친다. 더구나 정부가 전망한 세수 5억 유로조차도 정부의 희망이 과하게 들어간 추정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의 인터넷 업체 연대 ‘ASIC(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협회)’는 “해당 IT업체에 3%의 세율을 적용할 경우 거둬지는 세수는 1억8000유로 선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디지털세 부과 대상 업체들에 일률적으로 과세가 이뤄질 경우, 몇몇 공룡 기업들은 충격이 덜하지만 다수의 중소기업의 경우 향후 재투자와 기술 개발이 상당히 어려워질 거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입장이다. 자칫 업계 전체를 침체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사르코지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난 뤽 페리 전 장관은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 기고에서 “가파(GAFA)세는 머지않아 프랑스에 ‘페널티’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디지털세 법안이 통과된 지 채 3주도 지나지 않은 8월2일,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은 홈페이지에 “프랑스 판매업자들을 대상으로 수수료를 3% 인상하겠다”고 공고했다. 프랑스 상원이 통과시킨 세율 인상 선인 3%와 정확히 일치하는 수치로, 정부가 부과한 세금을 고스란히 프랑스 생산자들의 몫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아마존의 반격에 이어 구글·페이스북·애플 등 다른 IT기업의 반발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8월20일 GAFA의 주요 책임자들은 미국 재무부 공청회 참석차 워싱턴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이번 프랑스의 디지털세 조치에 대해 ‘정당화될 수 없는’ ‘비이성적’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등의 원색적인 수식어를 사용해 비판을 쏟아냈다. 프랑스 라디오 채널 ‘유럽1’ 역시 “GAFA가 거대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트럼프가 언급한 ‘와인세’는 프랑스 와인 수출에 직격탄이 될 것이며 당장 8월26일부터 과세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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