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금 우리는 ‘키치’의 세계에 살고 있다
  • 김정헌 (화가․4.16재단 이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4 17: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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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kitsch)란 용어는 오랫동안 미술에서 ‘이발소 그림’을 의미했다. 복제된 싸구려 그림이란 뜻이다. 이 용어는 1860년대 독일어권 즉 독일에서 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진품이 아닌 것을 만들어 파는, 윤리적으로 부정함을 품고 있는 용어다. 쉽게 요즘 말로 하면 ‘짝퉁’이다.

이 용어는 산업혁명 이후에 자본주의 발달로 시장에 대량 생산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사용된 일종의 복제(문화) 현상을 가리킨다. 소모품들이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소비 성향을 자극하는 시장 논리가 횡행할 때 생긴 개념이기도 하다. 소모품들이 총집결해 소비되기를 기다리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시장이나 백화점 아닌가. 어떤 전문가는 키치가 많이 모인 백화점을 키치의 기차역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키치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한다.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를 보라. 거기 동굴에는 그들이 사냥으로 곧 식량화(소비)해야 할 동물들이 가득 그려져 있다. 일종의 ‘주술적 키치’인 것이다. 또 그리스 시대에는 올림포스의 여러 신들을 사람의 형상으로 모조해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그들의 신에 포함시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격이 떨어지는 ‘짝퉁 신상’도 포함됐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자기를 본뜬 ‘인간’을 모조(창조)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에서는 모조품을 만들어 어떤 ‘편안함’ 또는 ‘행복’을 누리려는 일들이 거의 욕망의 표현에 가깝도록 대를 이어왔다.

이런 ‘가짜’ 혹은 ‘모조품’은 미술에서 특히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다. 한동안 이발소에서는 손님 앞에 주로 밀레의 《만종》 같은 유명한 그림의 복사물을 걸어놓곤 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명화의 복제물을 손님들의 눈요깃감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키치를 ‘이발소 그림’이라 부르게 된 동기다. 소위 한국적 키치의 유래다.

우리나라에서는 밀레 같은 외국의 유명한 화가의 복제물과 더불어 직접 유화나 아크릴 물감으로 상업 화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좀 더 고급스러운(?) 키치가 같이 유행해 왔다. 멀리 알프스 같은 설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난데없는 폭포가 떨어지고 호수에는 백조와 한국식 정자까지 보인다. 이런 경치의 조합은 그야말로 키치의 모범이다. 우리가 어느 유명 계곡에서 만난 황홀한 경치 앞에서 무어라 그러는가. 다들 이구동성으로 ‘와~ 그림 같다’ 그러지 않는가. 키치와 그림에서 만들려는 이상적인 ‘가상’의 세계가 같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창조적인 그림은 어떤 풍경, 즉 이상적 가상의 세계를 다만 ‘은유적’ 방법으로 드러낼 뿐이다.

우리의 사회는 다양한 층으로 구성되어 어느 계층이 좀 더 나은(때로는 고급스러운) 문화를 향유하면 곧 그것이 퍼져 유행이 되곤 한다. 그래서 지금도 유행하고 있지만 여성용 가방 같은 명품 브랜드는 진짜와 더불어 짝퉁 모조품들이 우리 주위에 넘쳐난다. 고급 사치품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낳은 결과다.

이러한 ‘모조’와 ‘가짜’의 세계는 정치권에서 더욱 판을 친다. 보수를 표방한 어떤 정당이 창조적 정치 행위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꼴통 우파의 짝퉁에 지나지 않게 된다. 박근혜가 자기 아버지의 유신독재를 따라 하다가 태극기부대로 남은 경우가 그렇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아베 정권이 전쟁의 기억에 매달려 지금의 평화헌법을 파괴한다면 그들은 단지 ‘군국주의의 모조품’을 만들어 세계로부터 고립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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