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74년’ 해남 옥매광산 노무자 강제동원 사건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2 16: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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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항쟁기 국내 강제동원 중 최대 사건…‘정부 무관심’ 진상 규명 등 표류

“전남 해남 옥매광산 노무자의 강제동원은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 ‘국내 강제동원 중 최대 사건’이다.” 이는 정부가 수차례 조사 끝에 내린 평가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지원위원회)가 2012년 발간한 ‘전라남도 해남 옥매광산 노무자의 강제동원 피해실태 기초조사’ 보고서는 “옥매광산 노무자의 강제동원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은 국내 강제동원 피해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의미가 깊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 동원 역시 일본 법률에 의한 국가적 강제력 아래 이뤄졌고, 국내외 강제동원은 동원된 ‘지역’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언급하면서다. 

하지만 평가와 후속조처는 달랐다. 옥매광산 강제동원은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지원은커녕 여론의 주목조차 끌지 못했다. 해남 황산면 옥매산 광산은 비극의 역사인 ‘옥매산 광부 수몰 사건’이 시작된 지점이다. 이곳 바로 아래 옥동 선착장에서는 8월18일 ‘해남 황산 옥매광산 광부 수몰 사건’ 74주년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날씨와는 반대로 유족과 참석자들은 깊은 침통함에 빠졌다. 사건 발생 이후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아물지 않은 상처가 곳곳에 배어 있어서다. 이들의 표정에서는 옥매광산 사례로 대표되는 ‘국내 강제동원’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데 대한 섭섭함도 동시에 묻어났다.

해남 황산 옥매광산 명반석 저장창고 내부 모습 ⓒ 시사저널 정성환
해남 황산 옥매광산 명반석 저장창고 내부 모습 ⓒ 시사저널 정성환

징용 주민들, 제주에서 귀향하다 118명 사망

지원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옥매광산’이라고도 불리는 옥매산은 일제시대 일본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일본이 옥매산에 눈독이 들이고 개발한 것은 군수물자 생산에 필요한 알루미늄 제련의 원료로 쓰이는 명반석(백반석)이 많이 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사다화학공업주식회사(옛 시카마화학공업주식회사)는 1916년부터 1945년 종전까지 명반석 채취 등을 위해 마을 주민·광부 등 수백 명을 강제로 동원했다. 현재 옥동 선창 인근에는 당시 명반석을 저장하기 위해 세운 저장고가 있고, 선착장 밑 부분에는 명반석을 운반하는 데 사용한 레일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옥매광산 노무자 강제동원은 일제의 국책사업으로 행해졌다. 옥매광산에서 생산된 명반석은 1938년 ‘조선중요광산물증산령’이 공포되면서 중요 광물에 포함됐고, 알루미늄을 만들기 위한 원료로 공출품목이 됐다. 공출품목이 됐다는 것은 제국의 필요에 의해 국가관리하에 있는 주요 물자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옥매광산 노무자들의 노동 자체가 일본이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공출품목을 생산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보고서는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강제동원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1944년 4월25일 일본 군수회사법에 의해 아사다화학공업은 지정 군수회사가 되면서 모든 임직원과 기술자, 노무자 등 사업장이 통째로 현원 징용됐다. 

일제는 옥매산 개발을 위해 강제동원한 조선인들을 사전 예고도 없이 제주도로 끌고 갔다. 1945년 3월경 미군의 본토 공략이 임박하면서다. 이미 옥매광산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을 제주도로 ‘2차 동원’한 것이다. 일제 내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졌던 전환배치가 한반도 내에서도 행해진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이 일했던 곳은 지금의 제주 모슬포 부근인 삼방산이었으며, 주로 밤에 해안 동굴이나 방어진지를 파는 데 동원됐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발파기술이나 굴착 경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강제동원은 비극적인 집단 사망사고로 이어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모슬포 등지 진지 공사에 동원됐던 이들은 5개월 만에 해방을 맞자 어렵사리 배를 구해 고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225명을 태우고 해남으로 향하던 배는 완도군 청산도 앞바다에서 원인 모를 화재로 침몰하고 말았다. 탑승자 가운데 한국인 222명 중 118명이 수몰됐고, 일본인 3명 중 2명도 숨졌다. 사망자의 나이는 16세부터 40대 중반까지였다. 정작 유족들을 분노하게 한 것은 사고 이후 현장을 지나던 일본 군함의 대처다. 현재 유일한 생존자인 김백운옹(92·목포 거주)의 증언이다. “일본 배가 지나가는데, 일본 사람들하고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만 구하고 그냥 가버리더라고.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데.” 

이 사건 이후 황산면과 문내면은 초상집이 된다. 지금도 음력 7월16일이면 옥매산 부근 마을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한날에 같은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다. 타지로 나가거나 사망 등으로 예전처럼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때의 아픈 상처가 아직도 이들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 ‘해남 옥매광산 광부 수몰 사건’이 국내 강제동원의 아픔과 비극 그 자체인 이유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정부의 무관심으로 수십 년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박철희 유족회장이 전체 222명의 탑승자 중 수몰 사망자 94명의 명단이 담긴 전라남도 발간 명부록을 보여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 시사저널 정성환
박철희 유족회장이 전체 222명의 탑승자 중 수몰 사망자 94명의 명단이 담긴 전라남도 발간 명부록을 보여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 시사저널 정성환

해남 옥선창에서 74주년 합동추모제 열려

옥매광산 광부 강제동원 진상규명에 대한 정부의 의지도 부족했다. 정부는 1957년, 2005년, 2012년 세 차례 진상을 조사했지만 별다른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공출품목이었던 명반석의 생산량과 반출량은 물론 노무자의 동원 규모와 강제동원자 명단 등 기초적인 자료조차 파악하지 못해 유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옥매광산 희생자 유족회 박철희 회장(65)의 말이다. “일제강점기 국내 강제동원 중에서 (해남 옥매산이) 제일 큰 사건이었다는데, 국가가 나서서 해 주는 게 없어. 몇 년 전에 옥매산 광부들을 강제동원한 일본 아사다화학 회사에 직접 찾아가서 ‘배상 안 해도 좋으니 당시 착출한 조선인 명단이라도 달라’고 했는데, 안 줘. 그게 국가가 전혀 관심이 없고, 나서주지 않으니까 그런 거지.” 보고서는 옥매광산 기록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며 아사다화학공업이 지금도 기업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만큼 방안을 마련해 자료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피해 지원도 허술했다. 옥매광산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국가의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지만 국내에 동원됐다며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로 분류된 탓이다. 정부는 ‘대일항쟁기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에게 1명당 20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생존자에게는 연간 80만원의 의료지원금을 주고 있다. 그러나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법적으로 보상받을 근거가 없다. 이는 우리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내막은 이렇다. 일본 정부는 1947년 대장성 자료에서 국내 동원 피해자를 인정했지만 우리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징용자 범위에 조선 내 징용자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반면에 1975년 한국 정부의 대일민간청구권 보상 시에는 국내외 동원을 구별하지 않았고, 32명의 국내 동원 지급 사례도 확인됐다. 그럼에도 2007년 제정된 법안에는 국내 동원이 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모순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지원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동원된 지역이 국내냐 국외냐 차이만 있을 뿐 국내 강제동원 역시 국외 동원과 마찬가지로 강제동원 피해임에는 틀림없다”며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문제의 모순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적절한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5년 말로 해체된 지원위원회의 재개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는 지원위원회 업무를 행정안전부가 ‘과거사관련업무 지원단’을 설치해 이어가고 있으나 2개 과에 불과한 소규모 TF조직으로 사실상 잔무 처리에 그치고 있다. 지원위원회 설치를 위한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2기 지원위원회가 언제쯤 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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