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호 “솔직히 난 비전문가, 발품으로 투자처 찾아야 했다”
  • 부산경남취재본부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8 14:00
  • 호수 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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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3조원 굴리는 대한지방행정공제회 한경호 이사장
“수익률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다할 것”

한경호 대한지방행정공제회 이사장은 올해 ‘제6회 한국 기금·자산운용 대상’에서 공제회 부문 대상을 받았지만, 여전히 도전의 최전선에 있다. 안정적인 기금운용 체계를 갖추고 우수한 성과를 올렸음에도, 미·중 무역분쟁 등 글로벌 환경에 대처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선진공제회로 거듭 발전했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그는 계속 현장경영을 펼칠 기세였다.

ⓒ 시사저널 이상욱
ⓒ 시사저널 이상욱

한 이사장은 2017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경남지사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그 전에도 세종시 행정부시장, 행안부 지방분권국장 등을 지내며 지방행정에 대한 현장 경험을 쌓아 나갔다. 그런 발판 위에서 그는 지방공무원들의 복리증진을 위해 설립된 대한지방행정공제회(이하 행정공제회) 수장으로서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 이사장은 “수익률을 높이려고 혁신기업과 투자 기회를 꾸준히 찾고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업계 판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9월2일 서울 용산 행정공제회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을 화두로 던졌다.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이 분쟁하고 일본이 압박할 때 더 혁신적인 사업 아이템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과연 그는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까. 한경호 이사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단박에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는 지난 5월 미국을 방문해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 크리스토퍼 에일만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만났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언제 어떻게 좋아질지,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등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한 이사장은 미국 연기금 2위 규모인 CalSTRS와 국내 최초로 8800억원 규모의 글로벌 공동투자 MOU를 체결했다. 행정공제회와 CalSTRS가 공동투자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그는 이에 앞서 이미 투자하고 있는 미국 군인공제회(USAA) 오도넬 CEO, 시비알이글로벌인베스터스자산운용(CBRE GI) 매덕스 CEO 등을 만나 미국 내 부동산 전망을 분석하고 새로운 투자 기회를 엿보았다. 한 이사장은 “돈 잘 버는 사람들에게 한 수 배웠다. 해외 투자정보를 축적해 행정공제회가 직접 투자처를 발굴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고 했다.

ⓒ 시사저널 이상욱
한경호 대한지방행정공제회 이사장(왼쪽 세 번째)이 최근 경기도의 물류센터 2곳을 방문해 펀드 매니저로부터 투자 여건을 듣고 있다. ⓒ 시사저널 이상욱

직접 방미해 글로벌 투자 전문가와 정보 교류

한 이사장은 연기금 자산운용에서 해외 대체투자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행정공제회가 CalSTRS뿐만 아니라 미국 텍사스교직원연금, 캐나다 부동산투자회사 드림 글로벌(Dream Global)과 함께 8818억원 규모 해외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벨기에 브뤼셀, 독일 함부르크 오피스빌딩에도 투자를 진행하는 등 ‘알짜 투자처’ 찾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취임한 뒤 자산운용사 등 금융 분야 관계자를 25회 만났고, 행정공제회가 투자한 사업장 12곳을 찾았다”고 했다.

한 이사장이 자본시장의 글로벌 고수들을 자주 만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는 “공직 생활을 오래 한 나로선 대내외적인 금융환경 변화를 하루빨리 익히는 게 급선무였다”고 했다. “솔직히 어려웠지만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자금운용사를 찾아가 운용전략을 공유했다. 직원들의 만류가 심했지만 체계적으로 자산운용을 배우지 못한 나로선 한발이라도 더 뛰는 게 값진 일이었다. 사무실에 가만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회원들에게 더 미안했다. 그 덕분에 CEO들과 시장 동향을 교환하며 신뢰를 다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자산운용 초보 실력을 발품으로 극복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 이사장은 “수익률 제고는 회원에 대한 책무”라며 “행정공제회에 맡기면 안정적인 상태에서 매년 5%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투자 포트폴리오를 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시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올렸다. 행정공제회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12조2288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13조4027억원으로 1조1739억원 증가했다. 경영 수익은 연간 목표 5743억원 대비 68% 수준인 3687억원을 달성했고, 운용수익률은 4.7%를 기록했다. 업계는 행정공제회가 주식 비중을 적기에 축소하고 해외투자를 확대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행정공제회는 올해 속칭 ‘착한 펀드’라 불리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에 500억원을 집행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한 이사장의 소신이 투영된 것이다. 그는 “ESG 성과가 우수한 기업일수록 총자산 대비 이익률(ROA) 등 영업 성과와 주가 수익률이 더 좋게 나타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주주권 행사 지침) 도입을 계기로 ESG 관련 투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행정공제회도 자산운용기관이긴 하지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ESG 펀드에 투자했다”고 했다.

 

“‘인재 양성’과 ‘차세대 정보시스템 구축’에 미래 달려”

행정공제회는 해외 자산에 5조4924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대체투자도 3조8223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체계적인 대체자산 관리 및 통합 위험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한 이사장은 절박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인데 클라우드 및 빅데이터 기반의 전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존 회원 관리, 자산운용, 위험관리, 재무관리, 경영지원시스템 등에 대한 업무 고도화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행정공제회는 220억원을 들여 차세대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한 이사장은 “내년 1월이면 전체 시스템이 오픈된다. 이는 자산 20조원 시대를 뒷받침하는 비즈니스 밸류 센터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 이사장은 혁신을 위해선 본질적으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본다. 장기 목표에 맞춰 업의 본질과 인재 육성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 이사장은 “행정안전부를 설득해 올해 대체투자 전문가 등 13명을 신규 채용했다. 행정공제회가 지속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또 미국 등 2개 자산운용사에 4명의 핵심 인력을 보내 운용 노하우를 배워 오게 했다. 대체투자 실력이 확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 이사장은 여기에 직원 보수를 4.9% 인상하고, 행정공제회 건물 1층에 회의실을 마련해 ‘일하고 싶은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공직 사회와 업계 주변에서는 그가 너무 깐깐하다는 평이 많다. 한 이사장은 “공직 생활을 하면서 봉사정신과 원칙이 몸에 배었다. 기본적인 근무 자세가 부족한 직원들을 교육도 시키고 따끔하게 혼낸다. 비록 인기가 없더라도 리더는 소신과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퇴근 후엔 직원들과 소주 한잔 나누면서 의견을 수렴하는 등 특유의 친화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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