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촉진한다”…현금 1226억원 뿌리는 창원시
  • 부산경남취재본부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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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소비, 또 마이너스…창원시 내수대책 발표에 회의론 동시 등장
"쪼그라든 시민 지갑 열 수 있을지 의문"

올해 초만 해도 "창원 경제 부흥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던 경남 창원시가 불과 8개월 만에 "생산과 소비활동 저하로 내수시장은 출구 없는 부진의 터널로 내몰리고 있다"며 고백했다. 기계 등 주력 업종의 경쟁력이 약화되자 실물경기 흐름이 갈수록 심상치 않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창원시는 9월3일 민생경제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창원지역의 소비 촉진을 위한 맞춤 대책이라는 게 창원시 설명이지만, 세금만 축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내수시장 조성, 저소득층 에너지 복지사업, 관광 인프라 콘텐츠 강화 등 주요 대책을 실행하는 데 드는 세금은 1226억원이 넘는다. 경기 침체로 취약 계층의 일자리와 소득, 소비가 줄어들었으니 혈세를 퍼부어 이를 만회하겠다는 것이 이번 대책의 골자다. 

9월3일 허성무 창원시장이 민생경제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창원시 제공
9월3일 허성무 창원시장이 민생경제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창원시 제공

창원시, 저소득자·소상공인에 현금 푼다

내수시장 조성 대책의 핵심은 창원사랑상품권 확대 발행과 전통시장 활성화 지원이다. 소상공인 사회보험료도 지원한다. 저소득 근로자나 소상공인에게 현금을 풀어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취지다.

창원시는 내년에 사용자에게 10% 할인이 가능한 창원사랑상품권을 500억원으로 확대 발행키로 했다. 올해 발행액의 5배로 늘어난다. 창원시는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해 내년 5월부터 창원사랑상품권 사용자 1만명에게 가맹점 2곳 이상에서 월 10만원 이상 결제하면 상품권 1만원, 20만원 이상 결제하면 상품권 2만원을 지급한다.

내년에 진해중앙시장 르네상스 사업과 어시장 밤도깨비야시장도 개장한다. 도계부부시장 등 4곳에 공영주차장도 설치한다. 또 창원시는 내년 1월부터 종업원 10인 미만 사업장의 업주에게 90억원의 4대 보험료를 지원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이다.

하지만 내수 상권 경쟁력 강화를 위한 15개 실행방안 중 11개의 시행 시기가 내년으로 잡혔다.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내수시장 조성 대책 예산 740억원 중 550억원은 작년 또는 그 이전에 편성된 예산을 확대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창원의 한 대학교수는 "전혀 새로운 사업이 아닌데 창원시가 마치 새로운 대책처럼 발표했다"고 했다.

소비 여력 확보를 위해선 가계 지출 부담을 완화하기로 했다. 대학생 생활안정지원 사업은 창원시가 타 지역에서 1년 이상 거주 후 창원지역 대학으로 전입한 청년가구에 창원사랑상품권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세대 당 연 36만원을 지급한다. 당장 올해 하반기엔 노후 경유차 3000대 폐차 비용과 LPG 화물차 신차 72대 구입비로 현금 42억원을 지원한다.

창원시는 또 내년에는 청년내일통장 대상자 모집 횟수를 2회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2월에 한번 모집하던 것을 내년 2월과 8월에 2회로 늘려 모집하기로 했다. 창원시 관계자는 "창원시에 사는 만 19~34세 저소득 근로청년 500명이 대상"이라며 "모집 횟수를 늘려 청년들에게 인센티브를 더 지원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어시장이 추석을 앞두고 제수·선물용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어시장이 추석을 앞두고 제수·선물용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와 거꾸로 간 대책, 효과 의문

최근 생산과 투자, 소비 등 경기가 복합 불황인 상태에서 창원시의 이번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 의문을 표시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8월21일 한국은행 경남본부가 발표한 경남지역 실물경제 동향을 보면 내수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대형소매점 판매가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비 강도를 보여주는 대형소매점 판매가 전년 동월 대비 4.3% 감소했다. 2017년 이후 전월비 증가율이 계속 마이너스 상태다.

전문가들은 대형소매점 판매 지표가 계속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한 배경을 소비심리 악화에서 찾고 있다. 9월3일 한국은행 경남본부가 발표한 경남지역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SI)는 올해 들어 가장 낮은 90.9를 기록했다. 특히 경남지역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이후 기준치 100 아래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중이다. 향후 경기와 생활 형편, 소비지출 전망이 좋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는 소비자가 다수인 상태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제조업 부진에서 시작된 불황이 소비 위축으로 확산됐다는 분석이다. 창원의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생산·투자 부진을 소비 등 내수경기로 떠받쳤던 흐름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면서 "창원시의 이번 대책이 꽁꽁 닫힌 시민들의 지갑을 열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밝혔다.

국민들의 실질 소득이 줄어든 것도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세금·공적연금·가구간 이전지출·이자 비용 등 '비(非)소비 지출'이 소득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비소비 지출이 늘면 쓸 수 있는 돈이 줄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전국 가계의 비소비 지출은 103만7000원으로 2017년(60만3000원)에 비해 71.9% 증가했다. 반면 올해 2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70만4000원으로 지난해 2분기(453만1000원)와 비교해 3.8% 늘어나는 데 불과했다. 

가계의 소비 여력이 쪼그라드는데 소비가 진작되긴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대책이 경기 부진 구멍을 재정으로 메워간다는 혹평이다. 창원의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경기 부진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세금을 쏟아 부어 백화점식 대책을 내놨다"며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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