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과 섹스머신, 그리고 영화 《A.I.》의 주드 로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14 16:00
  • 호수 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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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인간은 피조물인 인형을 사랑할 수 있을까

리얼돌을 둘러싼 공방이 거세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여성 닮은 성기구는 여성 성적 대상화인가 아닌가라는 미시적 문제와 섹스와 인간다움은 분리될 수 있는가라는 거시적 문제다. 현실적으로 실제 인물은커녕 사람처럼만 느껴지는 성기구 인형을 만들어내거나 판매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말 그대로의 리얼돌은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와 별개로 리얼돌이 환기시키는 성적 환상은 이미 여성들의 존엄을 침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점을 문제시하는 사람들과 감도 못 잡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이 리얼돌 논란에서도 고스란히 보인다.

이런 와중에 문득 오래전 본 영화 《A.I.》의 주드 로가 기억났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매우 인상적인 로봇이다. 리얼돌은 언젠가는 섹스로봇으로 대체될 거라고들 말하는데, 이 섹스로봇의 상상적 미러링 같은 존재가 바로 이 영화의 주드 로가 아닐까 싶다. 무려 여성을 위한 섹스머신이다.

스필버그는 질문한다. 인간은 그의 피조물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주로 인간을 순진무구하게 사랑하도록 프로그램된 어린이로봇과 관련해 질문이 제기되지만, 섹스머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실제 현실에서, 리얼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돌(인형)’은 그 소유주에게 어떤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물건으로서가 아니라 인격으로서의 대접을 받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리얼돌 옹호자들은 단지 성기구의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영화 《A.I.》에 등장하는 섹스로봇 ⓒ 위너브라더스
영화 《A.I.》에 등장하는 섹스로봇 ⓒ 위너브라더스

사랑할 수 없다면 섹스가 무슨 소용일까

소유물이 인간을 닮을수록 실제 인간과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을까. 사람과 닮았다는 것이 주는 위험은, 그 대상과의 관계를 진짜 사람과의 관계로 착각하게 함으로써 사용자·소유주의 인간관계를 궁극적으로 파괴할 위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그것은 대부분 여성의 형상을 하고 있다. 리얼돌로 자위하는 사람이 진짜 여성과 제대로 섹스할 수 있을까. 괴랄하게도 피그말리온 서사를 필두로 인류의, 아니 남성의 오랜 상상력은 언제나 리얼돌을 꿈꾸어왔다. 주인님을 사랑하되 주인은 그에게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서.

기술의 발전이 실제로 섹스머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와는 별개로, 스필버그가 창조한 것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리얼돌과는 사뭇 다른 존재다. 여성을 위한 남성 형상이란 것뿐 아니라,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인간이다”라고 느끼게 한다. 주드 로는 아니 섹스머신에게는 어린 소년을 보살피는 어른남성으로서의 능력이 있다. 이는 섹스머신의 기능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감정을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마음은 분할할 수가 없다.

사랑과 감정은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데이빗을 본 군중들이 데이빗을 로봇파괴 게임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인간에게 돌을 던진 연유다. 《터미네이터》에서 인간의 아버지 노릇을 한 로봇만큼이나 인간남성사회에 위협적인 존재가 《A.I.》의 섹스머신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기존의 남성성이 가리키는 방향이 지금과 같다면 남성을 섹스머신으로 대체하는 사회가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러나 《A.I.》는 묻는다. 인간은 피조물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도 묻는다. 사랑할 수 없다면 섹스는 다 무슨 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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