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사회] 연예인 2세, ‘그들만의 꽃길’이 주는 ‘상대적 박탈감’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4 13:00
  • 호수 156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족 예능’ ‘인맥 예능’ 비판 속 ‘연예계 금수저’ 논란 확산

최근 몇 년간 연예인 2세들의 방송활동이 부쩍 늘었다. ‘특혜 논란’도 만만찮다. 무엇이 카메라 앞에 연예인 2세들을 세우게 했을까. 그리고 논란은 왜 점점 거세질까.

연예인 2세들이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건 2014년이다. MBC 《아빠 어디가》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이 막 들어오던 시기부터다. 당시 《아빠 어디가》에 출연했던 윤민수의 아들 윤후나 성동일의 아들 성준, 이종혁의 아들 준수, 송종국의 딸 지아, 김성주의 아들 민국은 모두 연예인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2세들이 모두 방송에 진출한 건 아니다. 하지만 훌쩍 자란 윤후가 최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2》 《나의 외사친》 《우리 집에 해피가 왔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조금씩 얼굴을 보이고 있는 건 향후 행보를 가늠하게 한다. 이후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연예인 2세들의 방송 출연 배턴을 이어받아 송일국의 삼둥이는 큰 인기를 얻었다. SBS도 연예인 2세 예능에 뛰어들었다. 2015년 방영된 《아빠를 부탁해》에 이경규의 딸 이예림, 조재현의 딸 조혜정, 고 조민기의 딸 조윤경, 강석우의 딸 강다은이 출연했다. 50대 아버지와 20대 딸의 소통과 공감 과정을 담는다는 콘셉트로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당시 꽤 인기가 있었다.

《아빠 어디가》 같은 관찰 예능이 본격화되면서 연예인 2세들의 방송 출연이 늘어나게 된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누군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관찰 예능이라는 형식의 불편함을 일정 부분 상쇄시키기 위해 가족 코드를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등장시킨다고 해도 보통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또 그들이 나오는 걸 보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또 보통 사람들은 화제성도 작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연예인 가족이라는 대안이다. 연예인 2세는 연예인과 보통 사람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연예인 2세들의 방송 진출 코스가 보통 신인들에게는 결코 허락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를 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 SBS
연예인 2세들의 방송 진출 코스가 보통 신인들에게는 결코 허락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를 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 SBS
연예인 2세들의 방송 진출 코스가 보통 신인들에게는 결코 허락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를 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 SBS
SBS 《아빠를 부탁해》는 많은 연예인과 그 2세들이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 SBS

연예인 2세 출연이 많아지며 생겨난 불편함들

사실 연예인 2세들이 대를 이어 연예계로 진출하는 사례는 오래전부터 흔했다. 이를테면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딸 정재은도 일찍부터 가수로 활동했고, 배우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나 악역 전문배우로 이름 높았던 허장강의 아들 허준호도 배우로 활동해 지금은 어엿한 중견이 돼 있다. 이들의 대를 이은 연예활동은 부모의 아우라가 작용했다기보다는 그 영향을 받은 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가까이서 부모의 활동을 보며 자란 2세가 자연스럽게 그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경우 말이다. 그래서 이들의 대를 이은 연예계 활동은 대중의 비판을 받기보다는 화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최근 연예인 2세의 연예계 진출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 물론 김용건의 아들 하정우나 정을영 감독의 아들 정경호처럼 아버지의 후광을 오히려 가리고 자신만의 노력으로 그 영역에서 입지를 넓힌 연예인의 경우는 비판보다는 박수가 더 크다. 하지만 갑자기 가족 예능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별다른 노력 없이 얼굴을 알리고 연예계 활동을 하게 된 경우 비판을 넘어 논란이 생겨나기도 한다.

《아빠를 부탁해》로 얼굴을 알린 조재현의 딸 조혜정은 그 후 《처음이라서》 《연금술사》를 거쳐 《상상고양이》에서는 주연으로 연기를 했고, 그 후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역도 요정 김복주》 《고백부부》 등에 연달아 출연했다. 그 코스가 보통의 신인배우들에게는 결코 허락될 수 없다는 점에서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이경규의 딸 이예림도 마찬가지다. 이경규와 함께 《예림이네 만물트럭》 같은 예능을 했고 그 후에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신입사관 구해령》 등 드라마에 출연해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아직 단역이나 조연에 머물고 있어 논란이 크지 않을 뿐 이들 연예인 2세의 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불편함이 만들어지는 건 일종의 세습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들만의 꽃길’이 주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현실은 훨씬 더 경쟁적이고 어렵지만 저들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부모의 후광으로 잘나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박탈감이다.

연예인 2세들의 연예계 활동에 대한 불편한 정서들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그 빌미를 제공하는 연예인 가족 관찰 예능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빠 어디가》를 만들었던 김유곤 PD는 tvN으로 이적한 후 연예인 2세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둥지탈출》을 내놨지만 혹평을 받았다. 김구라의 아들 김동현은 《스타 골든벨》로 얼굴을 알리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더니 2014년 브랜뉴뮤직과 전속계약을 맺고 MC그리로 래퍼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화제가 됐지만 《아빠본색》 같은 가족 관찰 예능에 김구라와 함께 출연하면서 이른바 ‘연예계 금수저’ 비판이 솔솔 나오고 있다.

연예계에서 도드라지는 ‘수저계급론’

흥미로운 점은 최근 이런 특혜 논란이 연예인 2세만이 아니라 연예인 가족(이를테면 부부나 부모 같은)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연예인 2세의 방송 출연이 출발선 자체가 다른 보통 사람들의 박탈감을 만들어낸다면, 연예인 가족 또한 별 특별한 노력 없이 혈연으로 너무 쉽게 방송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미운 우리 새끼》 《동상이몽2》 《아내의 맛》 같은 프로그램 등이 연예인 가족 방송 출연의 불편함으로 논란이 생겨나는 단적인 사례다. 게다가 이제는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도 특별한 목적이나 메시지 등이 등장하지 않을 경우 저들만의 ‘홍보’에 불과할 수 있다는 인식까지 생겨나고 있다. 어디서 봤던 연예인 조합이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반복되는 경우가 그렇다. 이는 혈연은 아니지만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인맥 예능’으로 불리며 지탄을 받는다.

연예계는 대중의 정서가 그 어떤 분야보다 극명하게 투영되는 지대다. 최근 들어 연예인 2세, 연예인 가족, 나아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내는 연예인 조합의 프로그램에 대중이 불편한 시선을 던지는 건 현재 우리네 사회가 가진 태생적 세습 구조에 대한 대중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이른바 ‘수저계급론’은 그래서 연예계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 현실에서야 이 세습이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연예계에서는 모든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중문화만큼 한마디씩 쉽게 보탤 수 있는 지대도 없다. 그러니 논란은 의외로 커져 심지어 연예인 프리미엄이 아니라 ‘역효과’를 토로하는 이들까지 등장한다. 우리네 아픈 세습사회가 가져온 또 하나의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