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檢, 코오롱 인보사 수사자료 유출 수사관 감찰 무마 논란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3 10:00
  • 호수 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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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입맛 따라 쥐고 흔드는 ‘피의사실공표죄’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검찰 수사관이 대기업 수사자료를 유출한 정황이 포착돼 파장이 예상된다. 검찰은 최근 분위기를 의식한 듯 발 빠르게 자체 감찰에 착수했으나, 결국 기소를 하지 않아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해 감찰을 진행한 대검찰청 측은 "아직 감찰 종결이 아닌 진행 중에 있다"고 답했다.

지난 7월말, 대검찰청은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와 관련한 검찰의 수사자료를 외부에 전달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소속 박아무개 수사관에 대한 감찰을 실시했다. 박 수사관에 대한 감찰 결과, 그가 수 주일에 걸쳐 모 대기업 대관 담당 A씨와 인보사 수사 상황을 긴밀히 주고받은 정황이 파악됐다. 그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휴대전화에서 둘 사이에 주고받은 관련 카카오톡 메시지 60여 건이 확인된 것이다. A씨는 검찰 수사관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형법 126조, ‘사건이 재판에 넘어가기 전 검찰이나 경찰이 범죄와 관련된 내용을 외부에 알려선 안 된다’는 피의사실공표죄 위반 소지가 다분한 지점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박 수사관에게 타 부서로 전보 발령 조치를 내렸다.

9월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향해 질의를 쏟아내고 있다. ⓒ 연합뉴스
9월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향해 질의를 쏟아내고 있다. ⓒ 연합뉴스

‘인권 침해 vs 알 권리’ 수년간 정파적 악용

이에 대해 대검찰청 대변인실은 9월19일 시사저널에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5호’에 근거하여 공개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다. 그러나 조국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피의사실공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검찰이 또다시 ‘셀프 면책’ 했다는 비난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검찰이 최근 10여 년간 기소 사례가 없던 피의사실공표죄 제1호 기소 대상으로 경찰을 노리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실제 올해 초 울산지검은 약사면허증 위조 사건 관련 보도자료를 낸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 2명을 피의사실공표죄로 입건해 수사했다. 일반적인 관행과 같던 경찰의 보도자료 배포를 두고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이 때문에 경찰에선 검찰의 ‘명백한 이중잣대’라는 볼멘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울산경찰청 관계자는 9월17일 통화에서 “반년이 넘도록 수사 종결도 안 하고 소환조사도 안 하고 계속 끌고 있다. 어떻게 할 건지 검찰에 확인해 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국회에서 겪어보니 (검찰의) 피의사실 누설이 가장 심각하더라. 수사 상황이 일일드라마 방영하듯 매일 알려진다. 압수수색도 남용되고 있다.” 조국 장관 청문회 사태를 거친 정부·여당 측 얘기 같지만, 이는 2010년 자유한국당의 전신 한나라당에서 나온 문제 제기다. 당시 한나라당 내 사법제도개혁특위는 검찰의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피의사실공표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오랜 기간 정파적으로 악용돼 왔다. 여야 모두 검찰이 자신들을 수사할 땐 ‘인권 침해’를 내세우며 피의사실공표 금지를 강조했고, 검찰의 칼날이 상대방을 향할 땐 반대로 수사 상황의 ‘알 권리’를 외쳐왔다.

피의사실공표를 둘러싼 여야 간 충돌의 대표적 사례로는 2012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의 이른바 ‘뭉칫돈’ 해프닝을 꼽을 수 있다. 검찰이 노씨와 관련된 계좌에서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발견됐다는 발언을 했다가 파장이 커지자 이내 이를 번복한 사건이다. 당시 민주당은 “검찰이 기초적인 수사도 안 된 상황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해 또다시 ‘노무현 죽이기’에 나섰다”며 강하게 따졌다. 이들은 2009년 검찰 수사 중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의 트라우마 탓에 피의사실공표를 ‘정치적 살인행위’에 비유하며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로부터 4년여 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들어선 여야 간 공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국정농단 관계자들의 수사내용이 사실상 매일 생중계되는 데 대해 한국당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항의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수사 때도 마찬가지로 ‘검찰의 여론몰이’라며 거세게 지적했다.

한국당은 올해 초 김성태 의원 딸의 KT 취업 특혜 의혹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검찰이 피의사실을 악질적으로 생중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해 여당인 민주당이 검찰의 피의사실공표 행위를 지적하면서 여야 간 입장이 뒤죽박죽돼 버린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국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여야의 입장은 지금 비교적 명확해졌지만, 이 역시 언제 또 뒤집힐지 모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사이, 사문화된 피의사실공표 조항을 실효성 있게 개정하자며 국회에 발의된 9개의 관련 법안은 대부분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기간만료로 폐기됐다.

 

준칙 개정 일단 미뤘지만 난관은 여전

이러한 상황이 10여 년째 반복되자, 여야 모두 이번에야말로 피의사실공표법을 손봐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시기와 내용에 상당한 이견을 보이고 있어, 이번에도 논의가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조 장관이 임명 후 곧장 추진하려던 피의사실공표 금지 강화 준칙 개정은 타이밍이 부적절하단 비판이 쏟아져 일단 연기됐다. 조 장관 가족 수사가 한창인 지금, 준칙 개정의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다.

이와 별개로 이미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한 관계 기관과 전문가들의 논의는 불씨가 댕겨질 대로 댕겨졌다. 곳곳에서 피의자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면서도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의 보도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수렴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싸고 검경은 물론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의견수렴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변호사협회 등 관련 단체들도 이와 관련해 아직 공식 입장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9월18일 대한변호사협회 주최로 국회에서 진행된 피의사실공표 관련 토론회 자리에서도 실효성 있는 준칙을 마련하자는 참석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그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해답은 도출하지 못했다.

한편 검찰은 조 장관의 가족과 관련한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구성원들에게 수사 정보를 유출하지 않겠다는 보안각서를 받는 등 내부 단속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향후 법무부가 시행할 준칙 개정에 단단히 대비해, 불필요한 논란과 비판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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