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강국 코리아, 그런데 ‘남자 골프’는 왜?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9 13:00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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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인기, ‘여자 골프’ 절반 불과…세계적인 스타 탄생 시급

”남자선수가 결코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자선수들이 너무 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자선수들이 그늘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요.”

골프팬들이 한국 골프를 보면서 의아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 여자골프는 미국 LPGA 무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반면, 남자골프는 그 존재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LPGA와 PGA투어에서의 한국 선수들 활약상을 비교해 보면 금방 표시가 난다. 이런 차이는 국내 프로무대에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2019년 남자 프로대회는 17개지만, 여자 프로대회는 29개에 달한다. 물론 총상금 규모도 여자 대회가 더 많다.  

이렇듯 외형적으로 드러난 성적과 규모만 놓고 비교하면 여자골프가 절대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사실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속내를 잘 들여다보면 세계의 골프 환경을 감안할 때 국내 남자선수들의 경기력도 크게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대한골프협회 강형모 부회장은 “최근 한국 남자선수들이 PGA투어에서 이뤄내는 성적은 기대 이상의 ‘기적’ 같은 일”이라며 “여자선수들이 워낙 세계 최정상급이기 때문에 남자선수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 여자골프, 낮은 연령층과 탄탄한 기본기가 강점

한국에 골프가 들어온 지는 110년이 조금 넘는다. 남자가 먼저 프로골프계를 형성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국내 프로 1호 연덕춘(1916~2004)을 중심으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만들어진 것은 1968년이다. 연덕춘은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내셔널 타이틀인 일본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1980년대 들어 한국 남자선수들의 활약이 해외에서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열린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국가대표팀이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와 달리 1970년대 후반까지도 공식적인 여자 프로골퍼가 없었다. KPGA 내에 여자프로부가 설치되면서 비로소 테스트를 거친 4명의 여자 프로골퍼가 탄생했다. 현재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강춘자(63)가 여자 프로골퍼 1호다. 고인이 된 구옥희(1956~2013)가 1기 동기생이다. 50년이 넘은 KPGA와 30년을 갓 넘긴 KLPGA의 시간차는 20년. 그러나 후발주자인 여자 프로골프는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남자 프로골프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자골프계의 ‘살아 있는 전설’인 구옥희는 국내 대회 20승, 해외 대회 24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2004년 설립된 ‘KLPG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1호 선수로 입회하는 영예를 안았다. LPGA투어에서 첫 우승을 안겨준 선수도 구옥희다. 1988년 레지스터 핑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러다가 박세리(42)가 등장하면서 한국 여자 프로골프는 급변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박세리가 LPGA투어에서 25승을 올리며 2007년 최연소, 아시아인 최초로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이 때문에 한국 여자 프로골프는 ‘박세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세리가 세계무대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자란 세대들이 ‘세리키즈’를 형성하면서 한국 여자 프로골프는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한국 여자 프로골프가 강한 이유는 무엇보다 낮은 연령층이다. 대부분 20대 초반이다. 전인지는 22세에 LPGA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고진영도 23세인 지난해 LPGA 데뷔전 우승 진기록과 신인상을 수상했다. 여자 프로를 가장 강인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부모의 헌신이다. 여기에 맞물려 스파르타식 교육도 한몫한다. 일단 골프에 발을 들여놓으면 24시간, 365일 부모가 선수에게 매달린다. 골프선수로서의 성공이 부와 명예를 안겨주는 탓이다. 외국의 부모들과 차별화된 우리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L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은 40명 내외. 한국 선수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한다. 나름대로 ‘엘리트 서클’을 형성해 우승 트로피를 안으려고 오직 앞만 보고 달린다. 이처럼 한 곳만을 바라보며 골프에 올인하는 것은 결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한 탓이기도 하다. 스폰서가 붙고, 각종 후원사가 생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는 얘기다. 사실 한국 여자 프로들의 성적이 뛰어난 것은 무엇보다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이는 엄청난 연습량의 결과다. 부모의 각별한 관심 탓에 어릴 때부터 연습에 매진하기 때문이다.

반면 남자선수들은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우선 군대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하루만 클럽을 손에서 놓아도 금방 표시가 나는 게 골프다. 1960~70년대 대만 선수들이 아시아 무대를 휩쓴 적이 있는데, 대만은 프로골퍼가 되면 군면제를 해 줬다. ‘공백이 생기면 프로골퍼의 생명은 끝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토너먼트 선수보다 레슨으로 밥벌이…‘골프 올인’ 어려워

군을 제대하고 20대 후반이 되면 결혼적령기가 된다. 경제적인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부딪친다. 해외 진출의 경우, 생활 및 문화 적응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PGA투어를 노크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최경주는 특별한 케이스다.

최경주는 30대의 늦은 나이에 성공의 목표와 절박함을 안고 PGA 무대로 뛰어들어 꿈을 이뤘다. 이후 양용은·배상문·강성훈·김시우·이경훈·노승열·임성재·김민휘·이수민·김비오 등 많은 선수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도 힘들다는 PGA투어에 입성해 활약하고 있지만, 일부 선수들은 국내에 복귀했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이나 스폰서 후원으로 미국에서 버티는 선수도 있지만,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다.

특히 한국 선수 정도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은 세계적으로 즐비하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최경주가 일군 PGA 통산 8승의 성적과 양용은의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 우승, 김시우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그리고 임성재가 올해 아시아 최초로 PGA투어 신인상을 수상한 것 등은 분명 기대 이상의 성적이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약간 ‘기형적인 형태’를 보이는 국내 골프 환경도 남자선수들을 힘들게 하는 대목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KLPGA는 대회나 상금이 몰라보게 증가한 반면, KPGA는 여자 대회의 ‘반쪽짜리’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남자선수들은 골프에 ‘올인’하기가 쉽지 않은 게 한국 남자골프계가 처한 현실이다. 상금으로 생활하는 토너먼트 선수보다 레슨으로 ‘밥벌이’ 하는 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국내 남자골프계가 박세리 같은 대형 ‘월드스타’ 탄생을 학수고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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