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 재취업자 상대 ‘전직 금지’ 줄소송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9.09.30 11:00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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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내부에서도 “사측이 소송 피하기 위해 영어 이름까지 사용” 비판

삼성전자 퇴직자의 SK하이닉스 재취업을 둘러싸고 ‘전직(轉職) 금지’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법원은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또한 SK하이닉스 내부에서도 “사측이 전직 금지 규정 위반을 알면서도 삼성전자 퇴직자를 무분별하게 끌어모으고 있다”면서 “소송을 피하기 위해 삼성전자 퇴직자의 이름을 영어로 표기하고, 적발됐을 경우에도 꼼수를 사용해 사실상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각 기업들은 기술 유출, 영업비밀 누설 등을 막기 위해 직원들과 전직 금지 약정을 맺고 있다. 반도체 등 첨단 과학기술을 다루는 삼성전자 역시 마찬가지다. 약정서에는 ‘본인은 퇴사 후 2년간 회사의 영업비밀 등이 누설되거나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경쟁업체 창업, 취업 등을 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주주·파트너·이사·감사·대리인·자문역·고문역·임직원 등 경쟁업체의 경영과 업무수행에 어떠한 형태로든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 일러스트 정찬동
ⓒ 일러스트 정찬동

“전직 금지 위반 따른 손실·이득, 천문학적”

최근 삼성전자는 적극적으로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D램 설계 담당 임원의 중국 기업 이직에 대한 소송이다. 이 소송은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에 따른 국부 유출 차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삼성전자에서 SK하이닉스로 이직하면서 전직 금지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1. 1994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LSI사업부(비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사업) 상품기획팀장을 지낸 A씨는 2018년 3월 퇴사했다. A씨는 상품기획팀장으로 있으면서 차세대 상품 전략, 향후 5년간 개발될 제품의 사양, 개발 일정, 구체적인 스펙 등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 최고경영진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A씨가 SK하이닉스로 이직할 움직임을 보이자 삼성전자는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승소했다.

#2. B씨는 1998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메모리 반도체 설비 담당 임원을 지냈다. B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2017년 9월 퇴사했다. 그러나 B씨는 3개월여 뒤인 2018년 1월 SK하이닉스로 재취업했다. 이에 대한 소송에서도 삼성전자가 승소했다.

법원은 이와 같은 전직 금지 위반으로 엄청난 경제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봤다. 법원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매출액은 수백조원에 이르고 영업비밀이 유출될 경우 삼성전자가 입을 손해액이나 SK하이닉스가 얻을 이득액은 천문학적 금액에 이른다”면서 “전직 금지 약정상 2년의 전직 금지 기간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이라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SK하이닉스 측은 동종 업종 퇴직자들의 자연스러운 재취업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 출신들을 데려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나타난다. 법원은 A씨에 대한 판결문에서 “A씨는 삼성전자 퇴직 전부터 경쟁회사인 SK하이닉스와 입사를 위한 교섭을 진행해 왔다”면서 “A씨가 퇴직 의사를 밝혔을 때 삼성전자는 퇴직을 만류하면서 연봉 인상과 함께 새로운 TF 조직의 팀장직을 맡도록 권유하기도 했지만 A씨가 이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퇴직자들은 SK하이닉스로 재취업하면서 연봉이 대폭 인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B씨의 경우, SK하이닉스 임원으로 가면서 연봉이 30% 올랐다. 법원은 B씨가 삼성전자 퇴직 사유로 밝힌 건강상의 문제도 믿을 수 없다고 봤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가 밝힌 눈 건강 이상은 2017년 종합검진 결과에 의하더라도 ‘대개 진행하지 않으므로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정도”라며 “B씨가 퇴직 후 단기간 내에 SK하이닉스에 입사한 점에 비춰보면 B씨가 눈 건강의 이상으로 퇴직을 결심했다고 선뜻 믿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SK하이닉스 “직업선택의 자유 존중돼야”

SK하이닉스 내부에서도 사측의 이런 행태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내부 관계자는 “삼성전자 퇴직자들은 SK하이닉스 입사 후 멀쩡한 한국 이름을 놔두고 영어 이름을 쓰고 있다. A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삼성전자에 적발되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면서 “이 외에도 영어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간부들이 4~5명가량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SK하이닉스 측은 “수평적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면서 “삼성전자 출신들만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영어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SK하이닉스가 전직 금지 위반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A씨의 경우, 법원은 “전직 금지 의무를 위반한 경우(SK하이닉스에서 근무할 경우), 삼성전자에 1일당 2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 측이 편법을 사용해 A씨에 대한 고용관계를 사실상 유지했다는 것이다. 회사 내부 관계자는 “A씨는 법원의 판결이 있은 후에도 팀장들과 미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면서 “경영진이 A씨를 위해 가짜 회사ID를 발행한 정황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SK하이닉스 측은 “전직 금지 소송은 삼성전자와 퇴직자 간의 법적 다툼일 뿐 SK하이닉스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또한 전직 금지 소송에서 승소하는 경우와 패소하는 경우가 모두 존재한다. 이는 전직 금지만큼이나 직업선택의 자유도 중요하기 때문”이라면서 “A씨의 경우 법원의 판결로 갑작스럽게 퇴사하다 보니, 판결 직후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돼 이를 위해 회사에 머물렀던 것일 뿐, 법원의 판결을 어긴 적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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