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중국인이 이해 못 하는 지하철 중국어 안내방송
  •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원종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3 13:00
  • 호수 156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수상 수상작] 중국어 번역 없는 엉터리 역명 발음…노선 3곳은 안내방송조차 없어

한국 유학 8개월 차 중국인 친신유씨(陈馨语·23). 친씨는 다음 역 ‘이태원’을 알리는 방송이 울리기도 전에 당연하다는 듯 중국어 서울지하철 앱(App)을 켠다. 앱에는 지하철역 이름이 중국 한자로 빼곡하다. 친씨는 곧이어 나온 ‘이태원’ 안내방송을 듣자 이상한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중국어로 방송은 나오지만, 역 이름은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나와 이상해요.” 친씨는 “방송만 믿다가 내릴 역을 놓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서울 송파구 종합운동장역 승강장이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종합운동장역 승강장이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노선별 서울시 지하철 중국어 안내방송 체계 부실

ⓒ원종환

지하철 중국어 안내방송 체계가 미흡해 중국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재팀이 서울시 내 총 376개 역의 지하철 중국어 안내방송을 조사한 결과, 20.7%인 78곳에서만 안내방송이 제공되고 있었다. 비율은 노선별로 차이가 컸다. 공항철도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역에서 안내를 제공하는 2호선은 15곳(29.4%)에 불과했다. 중국어 안내방송이 절반 이상 제공되는 노선은 공항철도가 유일했다. 중국어 안내방송을 아예 제공하지 않는 노선도 3곳에 달했다.

같은 역이어도 노선에 따라 중국어 안내방송이 다르게 제공되는 곳도 있었다. 용산역은 1호선과 경의중앙역이 교차하는 환승역이다. 용산역은 경의중앙선에서는 중국어 안내방송이 제공되지만, 1호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림역 또한 2호선과 7호선이 같이 다니는 곳이지만, 7호선에서만 중국어 안내방송이 이뤄지고 있었다. 선정릉역은 9호선에서만 안내방송이 제공됐다. 분당선에선 안내 서비스가 없었다.

지하철의 방향에 따라 안내방송에 차이가 있는 역도 존재했다. 2호선 이대역은 외선순환인 지하철에서만 중국어 안내방송이 제공된다. 2호선 신촌역은 반대로 내선순환에서만 안내 서비스가 이뤄졌다. 3호선 종로3가역은 하행에서만 중국어 안내방송이 시행되고 있었다. 종착역일 경우에만 중국어 안내방송이 제공되는 곳도 있었다. 2호선 순환노선은 막차 시간을 제외하면 별다른 종착역이 없다. 따라서 순환노선은 평상시엔 사실상 중국어 안내방송이 이뤄지지 않다는 셈이다. 안내방송을 끝까지 틀어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2호선 신설동 종착역 방송은 중국어 안내가 제공되는 곳임에도, 취재 동안 안내방송이 끝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언어별로 제각각인 지하철 안내방송

중국인을 위한 중국어 안내방송이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중국어 안내임에도 한국어로 역 이름을 발음되는 게 대표적이다. 2호선홍대입구역에 지하철이 진입할 때, 중국어 안내는 ‘치엔빵따오짠스(前方到站是) 홍대입구 짠(站)’ 이라고 나왔다. ‘홍따루커우(弘大入口)’라는 원래 발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9호선 ‘여의도’역도 ‘루이따오(汝矣岛)’라는 중국어 발음이 아닌 한국어로 역 이름이 발음됐다. 경의중앙선 ‘청량리’역 또한 ‘칭량리(清凉里)’라는 중국어 원음으로 안내방송이 이뤄지지 않았다. 2호선 강남역과 3호선 양재역, 공항철도 김포공항역, 디지털미디어단지역, 마곡나루역, 서울역, 우이신설선 신설동역, 보문역, 성신여대입구역, 정릉역, 4·19민주묘지역만이 중국어로 역 이름이 발음되고 있었다. 이외의 중국어 안내는 해당하는 역만 바뀐 채 한국어로 역 이름이 제공됐다.

같은 외국어 안내 서비스라도 영어 안내방송과는 차이가 있었다. 영어 안내는 ‘디스 스테이션 이스 홍익 유니버시티(This station is Hongik University)’라고 역 이름이 영어로 제공됐다. 1, 2호선 시청역은 영어 표현에 따라 ‘시티 홀(City Hall)’이라고 역 이름이 발음됐다.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은 ‘가산 디지털 콤플렉스(Gasan Digital Complex)’라고 안내가 이뤄졌다.

지하철 안내방송의 문제를 보완할 외국어 안내도 미흡했다. 지하철 안에 붙여진 전체 서울시 지하철 노선도는 역 이름을 한국어와 영어로만 소개한다. 각각의 노선도는 한자로 역 이름을 제공하고 있으나, 글씨가 작아 지하철에서 제대로 확인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또 다른 중국어 안내 서비스인 전광 안내판도 한계가 있었다. 약 3초를 주기로 한국어, 영어, 중국어 표기가 바뀌다 보니 사람이 붐비면 전광판을 보긴 더욱 어려웠다. 서울교통공사가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외국어 안내 서비스 앱도 현재로서는 없다. 홈페이지를 통해 지하철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여타의 지하철 안내 앱이나 사이트와 큰 차이가 없었다.

취재 내내 중국인 승객들은 지하철 중국어 안내방송이 지금보다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중국인 관광객 류리리씨(刘莉莉·51)는“중국어 안내방송이 도움이 안 돼 듣지 않는다”며“안내방송도 앱처럼 한자로 제대로 된 역 이름을 알려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유학생 왕정신씨(王正昕·21)는 “정확한 중국어 발음으로 더 많은 역에서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관광객 호원디씨(胡文迪·22)는 “핸드폰 앱으로 한자표기를 보는 게 더 유용한 것 같다”라며 “한국은 외국인 서비스가 영어에만 맞춰져 있는 것 같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외국인 안내방송 메뉴얼  

중국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지하철 중국어 안내방송의 보편화는 2010년부터 시작됐다. 2010년 2월 서울시는‘지하철 외국어 안내체계 개선계획’에 따라 중국어와 일본어 안내방송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추진했다. 자문위원회는 논의를 거쳐 한국어 원음으로 발음 및 표기할 것을 권고하기로 했다. 지하철역 이름이 주로 사용되는 ‘지명’이 고유명사라는 점이 근거였다. 중구난방 외국어 안내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취지 또한 있었다. 실제로 당시 1~4호선은 역 이름을 한국어 원음으로, 5~8호선은 중국어로 발음해 승객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그 후 모든 서울 지하철 노선에서 외국어 안내방송은 ‘한국어 원음’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2010년 이후 추가적인 지하철 안내방송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2010년 당시‘한국어 원음’을 시행하는 대신, 9호선을 포함해 중국어(31곳)와 일본어(19곳) 안내방송을 50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웅택 서울교통공사 승무시스템처 주무관은 이후 중국어 안내방송 정책추진에 관해 “강남, 양재 2개 역사에서 우선으로 안내방송을 중국어 표기 발음대로 시범실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재 최초로 시범구역이 지정된 2010년 이후로 추가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가 직접 관리하는 1~8호선에서 중국어로 역 이름을 발음하는 곳의 변화가 없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한 주무관은 “서울교통공사와 서울메트로 통합 과정에서 자료가 소실되어 마지막 논의 시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4년 서울시 주도로 만들어진‘국가표준 표기 실무협의체’는 외국어 표기만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했다는 한계가 있다. 이외에는 2013년과 2016년 지하철 중국어 표기 검수만 이루어졌을 뿐이다.

서울시 내에 외국어 안내방송 담당자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뢰 서울시 관광산업과 주무관은 “중국어 표기 표준화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지만, 외국어 발음을 따로 담당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 주무관은 “외국어 표기 자문위원회를 통해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반영해 안내방송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2010년 첫 논의를 제외하면, 중국어 안내방송 자문은 실상 ‘표기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고려하고 있다.

노선별로 지하철 운영 기관도 차이가 있어 체계적인 법 적용이 어려울 수 있는 모습도 나타났다. 현재 서울교통공사에서는 1~8호선을 직접 운영, 9호선을 자회사를 두어 운영하고 있다. 이때 1호선도 서울역~청량리 구간은 서울교통공사, 이외의 구간은 코레일이 운영을 맡는다. 반면 경의중앙선과 경춘선, 분당선은 코레일에서 운영을 담당한다. 공항철도나 신분당선, 우이신설선은 각각의 노선 기업이 따로 존재한다. 따라서 각각의 노선별로 담당자가 달라 일괄적인 중국어 안내방송 가이드라인 제작에 어려움이 따른다. 관계자들은 외국인 안내방송 문제를 물을 때마다 꺼리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홍대입구역 종합안내센터 관계자는 “정부에서 중국어 안내방송을 위한 메뉴얼을 별도로 공문으로 보내지 않고 있다”며 “담당 역할이 아니므로 관계자에게 이야기하라”라고 말을 아꼈다.

 

“중국어 안내방송의 취지 생각해야”

중국어 안내방송은 중국인에게 최적화되어야 한다는 전문가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광진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현재 중국어 안내방송의 실태에 대해 “원어민 주의의 역발상”이라며 “중국어 방송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이어 “같은 한자표기라도 읽는 방식에 따라 한·중·일이 나뉠 수 있다”라며 “외국어 안내방송은 의식과 이데올로기에 좌우되지 않고 의사 전달을 효과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미령 동국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역 이름을 한국어와 중국어로 번갈아 가며 안내는 방식으로 절충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 지하철 외국어 안내방송 개선 논의는 활발하다. 중국은 전국적으로 외국인과 소수 민족을 고려해 각각 원음에 맞는 안내방송을 제공한다. 일본 철도그룹 JR은 6개 국어가 지원되는 방송 안내 서비스 앱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이 외국어 지하철 안내방송이 활성화되지 않은 만큼, 맞춤화 앱으로 문제를 보완한다는 취지다.

해마다 많은 중국인이 한국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주 중국 대한민국 대사관의 ‘2018 한중 경제 및 인적교류 동향’에 따르면, 근 5년 동안 400만명 이상의 중국인이 꾸준히 한국을 찾는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14.9% 이상의 중국인이 한국에 오고 있다. 외국어 지하철 안내방송 첫 지침을 정한지도 10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중국인을 위한 안내방송을 두고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현실이다.

9월26일 시사저널 강당에서 열린 '2019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원영민 학생(대리수상)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9월26일 시사저널 강당에서 열린 '2019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원종환씨(군입대)를 대신해 그의 동생 원영민씨가 대리수상하며 소감을 전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