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대학언론상] “당신의 약도 안전하지 않다”…만연한 약국 무자격자 조제
  •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심유빈·언론정보학과 이정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3 13:00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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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수상작] 모호한 법의 허점 노리고 '조제 알바'까지 채용…"관련법 바로세워야"

“출근하면 청소부터 하고 손님 오면 응대해 드리고, 또 저를 도와서 조제 보조해주면 됩니다.”

관광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김아무개씨(24)가 약국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들은 이야기다. 약사 면허는 물론 조제 교육을 받아본 적 없지만, 김씨는 1년 5개월 동안 조제실에서 일했다. 김씨의 업무는 처방전대로 약의 용량을 계산한 뒤 복용 일 수에 따라 나누어 조제하는 것이었다. “알약은 개수를 맞춰 나눠 넣어요. 물약은 통에 짜두기만 하면 돼요. 그런데 가루약 용량은 소수점 단위로 계산하거든요. 알약 하나를 몇 등분으로 쪼개 갈아 넣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김씨는 이외에도 조제하기 곤란한 약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신계 약은 재고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벌받거든요. ‘이렇게 중요한 약까지 조제를 시키냐’고 불평하기도 했죠.”

한 시민이 약사와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시민이 약사와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약사증’ 없는 무자격자의 불법조제

약사 자격증이 없는 무자격자가 처방약을 조제하는 대리 조제가 성행하고 있다. 취재팀이 서울시 주요 대학병원 근방에서 영업 중인 59개 약국을 조사한 결과, 17개(28%) 약국에서 무자격자 조제가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했다. 해당 약국에서는 약사 가운과 약사증을 착용하지 않은 직원이 조제실을 출입하거나 폐쇄형 조제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4곳(6%)은 무자격자 조제가 강력하게 의심되는 수준이었다.

약사가운과 약사증 없는 직원이 조제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또한 55곳(93%)의 조제실은 환자들이 볼 수 없게 꾸며져 있었다. 절반 이상(67%)의 조제실이 가림막 혹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약국 안쪽 공간을 문으로 막아 운영하는 ‘방문형 조제실’이 13%, 약국 2층 혹은 지하 건물에 별도로 조제실을 갖춘 ‘폐쇄형 조제실’이 11%에 달했다.

특히 폐쇄형 조제실은 무자격자 조제가 강력히 의심되는 곳이다. 검게 가려진 창문, 찾아볼 수 없는 간판, 약국 2층의 출입 금지구역, 바로 폐쇄형 조제실이다. 약국 옆 좁은 계단을 올라가 보니 약사가운이 아닌 앞치마를 입은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폐쇄형 조제실에서 만들어진 약은 덤웨이터(소하물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카운터에 있는 약사에게 전달된다. 환자들은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 약을 받아 갈 뿐이었다.

무자격자의 조제 실수는 환자의 피해로 이어졌다.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는 송아무개씨는 “작년 여름에 6개월 된 아기가 약을 먹고 구토와 설사를 했다. 숨을 헐떡이더니 얼굴까지 파래졌다. 무자격자가 잘못 조제한 약 때문이었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송씨는 어렵게 폐쇄회로 TV(CCTV)를 확인했다. 직원끼리 조제를 하고 약사는 검수만 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알약만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잘못 조제된 ‘항히스타민 알러지제’는 우리 아기가 먹으면 안 되는 약이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아무개씨(23)도 약국에서 6개월간 조제 보조 직원으로 근무하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물약은 색깔이 비슷해 헷갈릴 때가 있다. 환자에게 잘못된 물약이 나간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경희대학교 약학대학에 재학 중인 이아무개씨(26)는 무자격자 조제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조제가 단순해 보여도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한다. 제형에 따라 분할하면 안 되는 약들이 있다. 약물 간 부작용 체크도 해야한다.” 전문성 없는 조제 행위는 환자뿐만 아니라 근무자의 건강까지 위협한다. 조제 보조 아르바이트생 김아무개씨(24)는 조제실 안이 늘 약 가루와 먼지투성이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약 가루 흡입의 위험성을 설명해주거나 마스크 착용을 권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무자격자 조제 단속 어려워…모호한 법률이 문제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한 약국의 조제실 ⓒ이정인, 심유빈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한 약국의 조제실 ⓒ이정인, 심유빈

문제는 무자격자 대리 조제 고발이 처벌까지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 한 보건소 관계자는 무자격자 조제 고발을 위해서는 민원인이 사진이나 영상 같은 명확한 증거물을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이 아닌 보건소가 현장에서 불법행위를 포착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제실 내부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모으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피해자 송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체적인 증거물이 없었다. 누가 무엇을 조제했는지 기록하거나 조제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약국의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CCTV가 있어도 피해자가 강제로 열람할 수는 없다. 송씨 역시 경찰 측으로 약국 CCTV 열람을 요청했으나 약국 스스로 보여주는 방법뿐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CCTV는 약국 개인 소유물이라서 보건소의 고발이 없으면 경찰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보건소가 고발하더라도 피해자는 확인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제실수를 한 사람이 약사인지 무자격자인지 밝히는 것조차 어렵다.

송씨는 보건소의 안일한 대처도 문제라고 말했다. 송씨는 보건소에 조제 실수를 고발했지만 보건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보건소 관계자는 “신고를 해도 대부분 무죄 판결 나니까 합의를 보는 편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자격자 조제 사실을 확인하고 해당 약국에 행정 처분 및 형사 고발을 하는 것은 지역 보건소의 관할이다. 뒤이어 도움을 요청한 보건복지부에서는 관할 보건소의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조제 보조 범위를 정의하는 법률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무자격자의 조제가 사실로 확인되어도 단순 보조 행위인지 조제 행위인지 판단할 근거가 불분명하다. 약사법은 조제를 '처방에 따라 의약품을 배합하거나 일정한 분량으로 나누어 질병을 치료, 예방하는 약제를 만드는 것'으로 정의한다. 어디까지가 조제 행위이고 조제 보조 행위인지 구분하는 조항은 없다. 조제 보조 자격자에 대한 정의도 마찬가지다.

법률의 모호함은 판례에서도 나타난다. 판례에 의하면 시럽을 병에 담거나 알약을 분쇄하는 일은 조제 행위가 아니다. 단순 조제 준비 작업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2007년 유사 판례로 무자격자 조제 허용 범위가 넓어지기도 했다. 약사가 복약지도를 제대로 했고 약사의 지휘 감독 아래서 조제가 이루어졌다면 무자격자의 조제를 약사의 직접 조제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사법 전문 변호사 A씨는 “‘조제 준비 행위’, ‘약사의 지휘·감독’이라는 구멍 때문에 무자격자 조제 관행이 실제 처벌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약사만 고용하여 약국을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지적한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최아무개씨는 약사들이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특히 대형 병원 앞 약국은 하루 처방 건수만 300~400건에 달한다고 했다. “보통 약사 한 명을 고용하는 비용이면 조제 보조 인원 3명을 고용 한다”고 최씨는 덧붙였다.

 

관련 법 규정부터 바로 세워야

국민권익위원회는 올해 2월 보건복지부에 ‘약국 조제실 설치·운영의 투명성 제고 방안’을 권고했다. 조제실이 가려져있어 무자격자 조제가 일어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미 조제실 투명화를 도입했다. 약사법 및 관련 규정에 조제실 유리의 투명화를 명시한 것이다. 약사 최씨는 “우리 약국에서는 손님들이 일부 조제 기기를 볼 수 있다. 반응은 긍정적”이라며 찬성했다

조제실 투명화 방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약사회는 권익위의 해당 권고가 국내 약국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규모가 작은 약국은 투명창 설치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에 재학 중인 이아무개씨(26) 역시 “환자와 약사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거나 조제실에 있는 전문의약품이 도난 및 남용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약국 보조원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은 테크니션, 독일은 약제 조수와 관리자를 두고 있다. 영국에는 약제 기사, 조제 조수, 약국 조수가 있다. 역할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법적으로 인정받는 약사 보조 인력이다.

업계는 약국 보조 인력을 두는 것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막을 수 없다면 법의 테두리 안에 두자는 것이다. 덕성여대 약대생 이씨는 “약사는 처방 조제뿐만 아니라 약품 관리, 복약지도, 처방전 검수 등 많은 일을 한다. 약사의 에너지가 환자의 보건에 더 집중되면 좋겠다”며 조제보조 합법화에 찬성했다. 세계약학연맹(FIP)이 발표한 ‘세계 약국 인력 조사(2009)’는 “환자 중심 서비스를 위해서는 약국 인력을 늘려야 한다. 약국 보조원의 교육 정책이 약국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는 일의 핵심이다”라고 밝혔다.

다만 약국 보조원을 허용하기엔 이르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제와 조제 보조의 범위를 법적으로 규정하고 전문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약사 성아무개씨(51)는 ”반드시 약사 지시 하에 업무가 이루어지도록 법적 안정 장치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환자들은 여전히 무자격자 조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무자격자 조제 관행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당장은 무자격자의 대리 보조를 단절하기도 허용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조제보조에 대한 법의 모호함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9월26일 시사저널 강당에서 열린 '2019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시상식'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경희대 이정인 학생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9월26일 시사저널 강당에서 열린 '2019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시상식'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경희대 이정인 학생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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