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문화를 넘어 산업으로 연결되다
  • 태국=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5 12: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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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르포] ‘KCON 2019 THAILAND’ 통해 본 K팝과 한국 문화의 현주소

‘한류’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늘 따라오는 궁금증이 있다. 그것이 한국에 어느 정도의 경제효과를 가져왔는지, 향후 얼마나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지 하는 점이다. 9월28~29일 양일간 태국 논타부리 임팩트 아레나에서 열린 ‘KCON 2019 THAILAND(이하 KCON)’는 궁금증을 일정 부분 해소하는 자리였다. 이른바 ‘한류’로 통칭되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대표 상품’이 된 것이다. 그 뜨거웠던 현장을 다녀왔다.<편집자주>

태국에서 열린 올해 ‘KCON’ 행사는 콘서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들이 열렸다. ⓒ CJ엔터테인먼트
태국에서 열린 올해 ‘KCON’ 행사는 콘서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들이 열렸다. ⓒ CJ엔터테인먼트

“K팝 좋아요!” 어눌한 한국어지만 그렇게 말하는 태국 K팝 소녀팬들의 얼굴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CJ ENM 주최로 9월29일 성황리에 막을 내린 태국 KCON에서 만난 소녀팬들은 흘러나오는 K팝을 흥얼거리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그들에게서는 이른바 ‘입덕’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일산 킨텍스 정도에 해당하는 전시장에서 열린 KCON. 두 개 홀을 빌려 열린 행사장 입구는 몰려든 K팝 팬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입장할 때 받은 가방 하나씩을 들고 K팝을 콘셉트로 꾸며진 무대와 이벤트 그리고 무엇보다 이 행사와 같이 소개되고 있는 대·중소기업의 제품 홍보 부스로 몰려들었다. 이틀간 컨벤션과 콘서트를 즐기기 위해 모인 태국인들은 4만5000여 명에 달했다.

행사장에서 가장 눈에 띈 곳은 간이 콘서트 무대였다. 시간별로 K팝 아이돌 그룹들이 올라와 노래와 퍼포먼스 그리고 이벤트를 선보이는 무대 앞에는 이틀간 빈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아이돌 그룹이 무대에 올라오면 그들을 찍기 위해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인파들의 풍경이 장관을 연출했다.

‘KCON 2019 THAILAND’는 한류가 어떻게 산업과 연결되는지를 잘 보여줬다.
‘KCON 2019 THAILAND’는 한류가 어떻게 산업과 연결되는지를 잘 보여줬다.

태국인들의 일상 가까이 들어간 한국 문화

이번 KCON이 신경 쓴 부분은 현지 팬들과의 ‘좀 더 가까운’ 소통이었다. 그래서 쇼룸처럼 생긴 무대가 중심이 되긴 했지만 ‘COVER STAR K’ 같은 댄스곡 커버 이벤트장이나 ‘STAR LIVE TALK’ 같은 곳에서 김재환, 더 보이즈, 스트레이 키즈, AB6IX 같은 아티스트와 인플루언서의 토크쇼들이 진행됐다. 댄스곡 커버 이벤트장은 무작위로 K팝을 틀어주는데 노래가 나오는 대로 춤동작을 따라 하는 현지 팬들이 적지 않았다. 태국 현지에는 K팝 댄스 커버 동아리가 많다고 한다. 한편에는 팬들이 직접 꾸민 부스에 알록달록 붙어 있는 응원의 메시지들이나 또 마치 낙서처럼 글로 가득 채워진 칠판이 있었는데 그중 적지 않은 한글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보면 이 행사장은 마치 K팝 가수들의 합동 팬미팅 공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일부에 불과했다. K팝 현지 팬들을 잡아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품 홍보 부스들이 자사 제품들을 갖가지 이벤트를 통해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 팬들은 한국 소주부터 라면은 물론이고 나아가 K뷰티를 타고 주목받고 있는 화장품까지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번 행사에서는 K뷰티와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이벤트가 화제가 됐다. ‘KCON GIRLS’라는 코너에서는 네이처, 밴디트, 에버글로우, ITZY 등 K팝 대표 여성 아티스트의 토크쇼와 뷰티쇼가 동시에 진행됐다. K팝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K컬처로 또 산업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KCON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콘서트는 태국 현지에 K팝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가를 잘 보여줬다. 닉쿤의 사회로 진행된 콘서트에는 모두 18개 팀이 참여했다. 아직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밴디트나 베리베리 같은 아이돌 그룹에게조차 함성은 쏟아졌다. GOT7 같은 경우 태국 출신 뱀뱀의 등장에 반응은 더 뜨거워졌다. K팝 아이돌 그룹이 다국적 멤버로 구성되는 이유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현지 팬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은 건 청하의 무대였다. ‘벌써 12시’에서 시그니처 댄스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KCON 행사장이나 콘서트 분위기를 보면 K팝에서 비롯된 한국 문화에 대한 태국인들의 관심은 이제 일상화 단계로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실제 방콕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시암 같은 곳에 가면 한글로 되어 있는 간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치킨 브랜드나 카페, 화장품 브랜드가 성업 중이다. 행사장 라면 부스에서 매운 라면 도전 이벤트가 펼쳐졌던 풍경과 방콕의 중심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한식 레스토랑이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K팝에 대한 관심은 태국인들에게 일상화된 것처럼 보였다.
K팝에 대한 관심은 태국인들에게 일상화된 것처럼 보였다.

KCON이 보여준 한류와 산업의 시너지

한식 레스토랑에는 한국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서인 듯, 한글로 써진 글자들이 벽에 디자인돼 있고 때때로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도 눈에 띄었다. 행사장 팬 부스에 삐뚤빼뚤하지만 한글로 써진 응원의 메시지들이 그토록 많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한국어는 외국인들에게 ‘힙’한 언어로 자리해 가고 있다. 2016년 태국 대학입시에서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채택되면서 태국인들의 한국어 배우기는 불이 붙기 시작했고 지금껏 133개 중등학교에서 4만 명이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한국어를 배우려는 태국인들이 부쩍 늘어난 계기 역시 K팝이라는 점이다. 한국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 리사, 2PM 멤버 닉쿤, 갓세븐 멤버 뱀뱀처럼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태국인들이 아이돌 그룹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늘면서 제2의 K팝 스타를 꿈꾸며 한국어를 공부하는 현지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KCON 콘서트에서 스페셜 MC로 무대에 선 닉쿤이 태국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진행하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사실 한류가 우리네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건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류의 흐름이 그간 어떤 계획적인 틀 안에서 움직인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떤 한류 콘텐츠가 해외에서 화제가 되면 그에 따르는 산업적, 경제적 효과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KCON 같은 행사는 보다 계획적인 한류와 산업의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데 주목할 만하다.

2012년부터 미주, 중남미, 유럽, 중동, 아시아, 동남아, 오세아니아까지 개최지를 확대해 온 KCON은 한류의 저변을 전 세계로 넓히면서 동시에 우리네 산업들을 문화와 함께 알리는 역할을 해 왔다. 물론 2012년 초창기 미국에서 열린 KCON에 참여한 관객 수는 겨우 1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매해 기하급수적으로 관객 수가 늘어나 올해 24만여 명을 동원하며 누적 관객 수가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특히 이 행사는 단지 K팝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한국 문화와 우리네 산업을 연계해 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다.

한류는 이미 막대한 경제효과를 가져다주는 차세대 성장동력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글로벌 사회로 접어들면서 국경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고 전 세계 대중들은 기능이 아닌 문화를 구매하고 싶어 한다. K팝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한국 문화의 저변을 글로벌하게 넓혀나갈 수 있는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문화를 타고 산업의 저변 또한 넓혀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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