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유승민, ‘다시’ 손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8 10: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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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의 ‘세’와 劉의 ‘정체성’…서로에게서 취할 점 분명해

안철수 혹은 유승민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바른미래당 뉴스는 얼마나 될까. 또 여기에 사람들은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일선에서, 또 전면에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당이 두 창업주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9월30일 이들이 오랜만에 동시 행동에 나섰다. 오전 9시, 유승민 의원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 맞서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이하 변혁)’ 출범을 발표했다. 불과 몇 시간 후, 안철수 전 대표는 독일에서 자신의 신간 소식을 알리며 1년여 만에 SNS 활동을 재개했다. 이들의 ‘따로 또 같이’ 움직임에 정치권은 ‘안철수-유승민 공동체제 시즌2’ 향방을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유승민계 의원 8명과 안철수계 의원 7명이 꾸린 변혁 조직은 지난 4·3 재보선 직후부터 시도한 손학규 대표 퇴진이 결국 실패하면서 탄생했다. 당규상 대표를 쫓아낼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당 안의 당, 별개의 지도부를 만들고 손 대표 사퇴를 더욱 강하게 압박하려는 것이다. 변혁 의원들의 바른미래당 탈당 및 신당 창당 가능성도 꾸준히 나오지만 당장 변혁 측은 강하게 손사래를 친다. 김철근 변혁 대변인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우리가 탈당이나 신당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는 손 대표와 당권파 쪽에서 일부러 흘리는 것 같다”며 “애초에 우리 당이었는데 우리가 왜 나갈 논의를 하나.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일러스트 신춘성
ⓒ 일러스트 신춘성

安의 ‘세’와 劉의 ‘정체성’이 서로에게 필요

사실 유승민계 의원들 사이에서 ‘탈당’ 얘기는 계속돼 왔다. 그럼에도 그간 감행하지 못해 온 데에는 당비와 당명에 대한 미련도 있지만, 안철수계 의원들의 출당 문제가 컸다. 변혁에 소속된 안철수계 의원 7명 중 권은희 의원을 뺀 6명이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게 되는 비례대표이기 때문이다. 손 대표가 이들에 대한 출당 조치를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철수계와 세를 함께해야 하는 유승민계 역시 탈당 대신 변혁 출범이란 대안을 택하게 된 것이다. 유승민계 내에서도 ‘우리라도 탈당해야 한다’ ‘안철수계와 함께 나가야 한다’ 등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왜 이토록 다시 손잡으려 애쓰는 걸까. 선거 결과나 지지율 면에서나 안철수-유승민 공동체제는 그간 눈에 띄는 성공보단 실패가 더 많았다. 바른미래당 창당 이래 이들이 화학적 결합을 했다고 평가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난 6·13 지방선거 땐 공천 문제와 유 의원의 출마 여부를 두고 둘 사이 갈등이 밖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안철수계가 박주선 의원을 비롯한 호남파와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둘 사이 골은 더욱 깊어졌다. 안 전 대표가 지방선거 참패 후 독일로 떠나며 손학규 대표에게 당을 맡겼을 때도 유승민계에선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아직 양 계파엔 서로에 대해 내심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이 다시 뭉치는 이유는 그만큼 서로에게서 취할 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는 당장 수적인 측면이 크다. 현재 당권파로 분류되는 당내 의원은 9명. 손 대표 퇴진이란 목표가 완벽히 일치한 상황에서 유승민계(8명)와 안철수계(7명)가 뭉치면 우세, 흩어지면 열세다. 게다가 조국 사태를 거치며 중도층이 그 어느 때보다 비대해진 지금, 지지율과 세력 면에서 완벽한 홀로서기가 어려운 양측 사이에 힘을 합쳐야겠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레 통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후 누가 당권을 주도할 것인지에 대한 계산은 다음 단계다.

내년 4월 총선을 치르는 데 있어 유승민계는 안철수계가 가진 ‘세(勢)’가 필요한 상황이다. 안철수와 유승민 두 인물의 지지층만 봐도 대부분 안 전 대표 쪽의 결속력이 훨씬 더 강하다고 평가받는다. 당내 지역 당협위원장들 중에서도 현재 ‘안철수 사람’이 많다. 그 때문에 당내에선 지역으로 갈수록 유승민보단 안철수 존재감이 더 커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출신 정당·지역 등 유 의원이 가진 배경 탓에, 중도층에선 여전히 유승민계가 언제라도 한국당에 흡수될 수 있을 거란 의심을 갖고 있다. 이 부분 역시 안철수계가 일부 완충해 줄 거란 기대도 있다.

안철수계 입장에선 ‘중도보수’ 정체성을 굳히기 위해 유승민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총선에서 안 전 대표에게 기적을 안겨준 호남의 지지는 이제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그간 진보와 중도보수 사이를 오가던 이들의 애매한 정체성이 유승민계와 함께 당을 운영하며 비교적 뚜렷해진 경향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항해 향후 자유한국당과의 총선 연대까지 노려야 하는 상황에서, 유승민계는 한국당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역할도 해 줄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안철수계 의원들은 주로 총선에서 수도권 출마를 노리고 있다. 수도권에선 바른정당에서부터 이어진 유승민계의 개혁보수 기치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또한 안철수계 입장에선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安 복귀 시점? 총선 그냥 건너뛰지 않을 것

‘변화와혁신을위한비상행동’을 꾸린 의원들은 독일에 있는 안철수 전 대표의 귀국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도 내심 기대감을 비치고 있다. 안 전 대표의 복귀로 변혁의 존재감은 물론, 보수연대 등 총선 준비에도 동력이 생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간을 내고 SNS를 시작했다고 해서 그의 복귀가 수일 내 이뤄질 거라 보긴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현재로선 복귀와 동시에 당권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에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 한 관계자는 “안 전 대표 측은 손학규 대표가 물러나는 타이밍을 정계 복귀 시점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추석 전후를 예상했던 건데 손 대표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복귀 시기도 미뤄지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또한 안철수계 비례대표 의원들의 발이 당에 묶여 있기 때문에 당장 들어와도 그의 활동 범위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안철수계에선 현재 손 대표 체제를 끝내고 당 내홍이 정리된 후 안 전 대표가 들어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김철근 변혁 대변인 역시 “지방선거 실패하고 1년 떠나 있다 돌아왔는데 국민을 향한 메시지를 내야지, 당의 어지러운 상황부터 정리하느라 바빠선 안 되지 않겠나”라며 당장 복귀할 가능성이 없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좀체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당 상황을 안 전 대표가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선 안 된다는 요구도 있다. 안 전 대표 역시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당을 재편하고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을 언제까지 관전만 하고 있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유 의원과의 당 주도권 대결을 위해서라도 오래 자리를 비워둬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선 변혁에 자신을 대신할 공동대표를 세우지 않고 유승민 의원 단독대표 체제를 인정한 것도, 자신의 자리를 오래 비워두진 않을 거란 암시라고 해석한다. 그 때문에 늦어도 정계개편이 본격화할 연말 전후로는 그가 복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편 안 전 대표와 함께 독일로 떠났던 아내 김미경 서울대 교수는 지난 8월, 먼저 한국에 들어와 현재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이틀간 두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김 교수는 틈틈이 안 전 대표의 자문그룹인 ‘10인회’, 정책조직인 ‘마포팀’ 구성원들과 만나 안 전 대표를 대신해 격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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