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무당파층 “선택할 대안이 없다”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8 13: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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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시시비비] 민주당 떠난 민심 “한국당도 싫다”
바른미래 등 제3정당들도 지리멸렬

갈 곳 없어 헤매는 마음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국 사태’로 초래된 정치 현상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가 증가하고 있다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들이다. 조사에 따라 국민 열 명 가운데 서너 명은 무당파라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무당파 증가 현상은 이제까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던 층 가운데 일부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등을 돌린 결과인 것으로 파악된다. 국민의 압도적인 기대와 지지를 받으며 시작했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집권 후반기와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지형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현상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이탈한 층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으로 이동하는 것은 또 아니다. 조국 사태를 대하는 민주당의 모습에 실망하고 화도 났지만, 그렇다고 한국당을 지지할 생각은 없는 층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해도 제1야당의 지지율이 의미 있는 상승을 거두지 못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같은 다른 야당들이 이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상황도 매한가지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 9월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제3차 서울대인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 9월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제3차 서울대인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 무관심 아닌 “지지 정당 無” 적극적 의사 표현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무당파로 남은 층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사실 한국당에 대해서는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직전 집권여당으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이른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 한 번 하지 않은 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한국당이다. 그러니 아무리 민주당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의 통과의례조차 거치지 않은 한국당을 신뢰할 야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무당파층의 대체적인 정서인 것으로 읽힌다.

“윤석열 총장은 스스로 거취를 정해야 하는 불행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며 겁박하는가 하면, 조국 장관 수사 검사들을 검찰에 고발하는 초유의 압력을 가하는 여당에도 화가 나지만,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책임자를 당 대표로 내세운 채 “대한민국에 정신 나간 이들이 그리 많을 수 있겠는가”라는 막말을 해대는 제1야당도 그 이상 ‘정신 나가’ 보이는 것이 무당파의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무당파는 정치 무관심층이 아니라,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적극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고 있는 층이다.

문제는 나쁜 야당이 여당도 나쁘게 만들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야당이 형편없으면 여당은 그런 야당을 믿고 긴장을 해제하게 된다. 한국당이 환골탈태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일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으니 아무렇게나 해도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어서일까. 민주당은 민심과 청와대 사이의 가교 역할이라는 여당 본연의 역할은 포기한 채 청와대만 바라보는 무기력한 여당이 되고 말았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조국 사태였다. 민심이 조국 장관을 거부하고 나섰지만 민주당 안에서는 그 민심을 대변이라도 했다가는 이단자 취급을 받는 광경이 벌어졌다. 오죽하면 ‘민주당에는 민주가 없다’는 말이 나돌겠는가. 여당 안에서 민심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큰 뉴스거리가 되는 현실은 참담한 것이었다. 대신 여당에서 쏟아져 나온 조국 응원의 목소리들은 이 당이 과거 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그렇게도 비판했던 당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심과 담을 쌓은 것들이었다. 그러니 지지 정당을 고정시켜 놓지 않는 중도층들은 당장 갈 곳은 보이지 않지만, 일단 짐을 싸서 떠나버리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판 안철수’ 찾는 일, 쉽지 않을 것

그래서 박근혜 탄핵 정국과 19대 대선, 문재인 정부 출범을 거치면서 최소화되었던 무당파층이 지금 다시 늘어나는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에 실망했지만 한국당도 싫다며 떠돌고 있는 이들 무당층을 흡수할 정당은 과연 존재할까. 양당 이외의 다른 정당들은 지리멸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 퇴진 여부를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어왔고 분당설까지 나오고 있다. 한동안 지지율 3위를 유지해 고무되었던 정의당은 진보정당으로서의 독자적 의제를 제시하지 못한 채 민주당 지지층의 눈치만 보다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민주평화당이나 탈당한 대안정치연대는 앞길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정국의 변수조차 되지 못하는 위치로 전락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변수는 바른미래당의 안철수·유승민 전 대표 복귀 가능성이다. 바른미래당의 안철수계와 유승민계는 안 전 대표의 복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손학규 대표가 당권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안·유 두 사람이 주도하는 신당 창당이 불가피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만약 안 전 대표가 대선 직후 조급하게 나서지 않고 와신상담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면 지금의 상황은 재기를 위한 더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이도 저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 안철수에게 다시 한번 눈길을 줘볼까라는 정서도 제법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많은 이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의 무리한 통합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가 오늘날 보여주고 있는 바른미래당의 모습이다. 자신에게 남아 있을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소멸시켜 버리고 외국으로 떠났던 안 전 대표가 다시 돌아와 전면에 나선들 전과 같이 제3세력의 기수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2012년 안철수의 등장처럼 새로운 인물의 바람이 정치권에 불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무망해 보인다. ‘2020년판 안철수’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제3세력에 대한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취약한 현실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당파층의 향배는 내년 총선 결과를 좌우할 전망이다. 민주당도 한국당도 집토끼만 결집시켜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어야 선거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은 선거의 기본 법칙이다. 하지만 지금 두 당은 그와는 반대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합리적인 중도층이 떠나든 말든, 자기 지지층만 바라보고 한쪽으로 고정된 편가르기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 어느 정당도 굳이 통합의 정치를 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지금의 진영 대결 구도가 당장에는 나쁘지 않다는 손익계산서가 그들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듯하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믿고, 민주당은 한국당의 구태를 믿으며, 무성찰과 무변화의 정치를 함께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무당파가 늘어나도 결국에는 자신들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자신하고 있는 오만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점차 선거가 다가오면, 그래서 선거 승리를 위해 무당파층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표를 얻기 위한 한시적 변신은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선거가 끝나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갈 것이다. 

정치에서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차선도 없으면 차악을 택하라고 한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촛불 시민혁명까지 거쳤고 적폐까지 청산했다는 오늘에 이르러서도 다시 그런 슬픈 선택을 고민해야 하는 무당파층의 마음은 허망할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 그런 고민과 곤욕을 안겨다주는 정치는 결코 좋은 정치가 되지 못한다. 여야 불문이다. 수많은 무당파층은 우리 정치의 메시아를 갈구하고 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메시아는 없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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