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와의 신뢰 형성이 이춘재 입 열게 했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5 09: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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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화성 연쇄살인의 진범으로 지목된 이춘재가 입을 열고 있다. 화성 살인뿐만 아니라 수원과 청주에서도 각 2건씩 살인을 저질렀고, 총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노라고 자백한 상태다. 경찰 프로파일러와 라포(상호신뢰관계)가 형성돼 자백했다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신빙성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시사저널은 10월8일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이 교수는 “이춘재가 오랜 수감기간에서 온 외로움을 겪는 과정에서 프로파일러를 만났고, 여기서 형성된 신뢰관계가 입을 열게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며 이춘재 자백의 신뢰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분석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이춘재가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신빙성에 의문이 드는데.

“이춘재는 사이코패스로 추정된다. 아무래도 상황을 자기주도적으로 이끌려는 욕망이 굉장히 강렬하다. 결국은 프로파일러들에게 함정을 파듯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사건도 저질렀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런 방식의 허위진술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수사 단계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재는 수사 단계가 아니라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옛날에도 은폐했었기 때문에 털어놓기 싫다면 면담을 거부하면 될 일이다. 굳이 프로파일러를 만날 이유가 없다.”

프로파일러 면담을 수락했다는 것은 뭔가 심경 변화가 있었다고 봐야 하나.

“단순히 프로파일러에게 성적인 호기심을 느껴서 참여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람에게 세월만큼 영향을 주는 요소는 없다. 자신이 죽어버리면 화성 살인의 비밀이 묻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DNA까지 드러난 상황에서 다 털어놓자고 생각했다고 본다.”

심경 변화가 생겼다면 환경이 영향을 끼쳤을까.

“이춘재는 그동안 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독방에 오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독방 신세를 면키는 힘들 것이다. 어차피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삶의 단계를 고려하고, 가족들의 의사도 물어봤다면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지금에야 자신이 정리하는 상황에서 털어놓겠다고 마음먹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뢰관계(라포)가 형성돼 입을 열게 된 것인가.

“수사관과의 신뢰관계가 중요하게 작동했을 것이다. 오랜 수감기간 동안 사람과 관계를 맺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춘재 동료 재소자들의 진술을 들어보면, 교도소 내에서 피해를 당한 경험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교도소에서도 비밀을 나눌 만한 친구는 사귀기 힘들었을 텐데, 수사관들이 인간 대접을 해 주고 믿음을 주다 보니 결국 털어놨다. 어차피 털어놓는다면 일부를 빼고 털어놓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형성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내 비밀을 너와 공유하겠다’는 심정으로 털어놓게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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