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 국감 증인 뒷거래 의혹 ‘진실게임’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1 17: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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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논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국정감사 증인 채택 돌연 철회 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8년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신 회장은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롯데그룹은 최대 위기에 빠졌다. 신 회장의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지만 우려가 적지 않았다. 형제간 분쟁으로 불거진 ‘일본 기업 논란’을 풀기 위해 신 회장이 발표한 호텔롯데의 상장 일정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15년 9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15년 9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그해 10월 2심에서 신 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이 나왔던 롯데그룹이나 신 회장도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신 회장은 출소 후 국내외 전 사업부문에 걸쳐 50조원을 투자하고, 7만 명을 새로 고용하는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했다. ‘뉴롯데’를 위한 공격 경영에 고삐를 죄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이 있고 정확히 1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신 회장이 국정감사의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협력업체인 후로즌델리의 갑질 문제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신 회장에게 증인 출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이 또 한 번 술렁였다. 무엇보다 신 회장은 10월17일 대법원 선고를 앞둔 상황이어서 부담이 컸다.

 

과연 누가 갑질을 했을까

이번에도 신 회장은 위기에서 잘 빠져나갔다. 국정감사를 사흘 앞둔 10월3일 국회 보건복지위는 돌연 증인 채택을 철회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정감사 증인 소환을 무기로 지인에게 3억원을 주라고 롯데그룹을 압박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이다. 국감 증인은 신동빈 회장에서 조경수 롯데푸드 대표로 교체됐다.

이와 관련해 이명수 의원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특정 금액을 보상하라고 롯데에 요구하고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협박이나 압력의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며 “의정활동을 하며 롯데그룹의 갑질 사례를 적지 않게 접했다. 신 회장에게 이 문제를 주지시키기 위해 증인으로 부르려고 한 것인데, 본말이 전도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 ⓒ 시사저널 임준선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 ⓒ 시사저널 임준선

실제로 롯데푸드의 갑질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국정감사나 청문회의 이슈를 장식했다.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가 열렸던 2016년 12월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상생협력 차원에서 후로즌델리와 작성한 합의서 내용을 롯데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당시 증인으로 나온 신동빈 회장은 “중소기업과 합의한 약속이니만큼 꼭 지키겠다”고 답했다. 2018년에는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상대로 직권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롯데푸드의 갑질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가 한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한국당이 선점한 이슈를 국정감사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또다시 문제로 제기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10월7일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조경수 롯데푸드 대표도 “이 의원이 롯데 측에 협력사와의 합의를 종용한 사실이 없다”고 일축했다. 신동빈 회장을 둘러싼 국감 증인 뒷거래 의혹 역시 조용히 세인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의문이 있다. 롯데그룹 측이 후로즌델리 전은배 대표에게 7억원을 지급한 이유다. 시곗바늘을 지난 2010년으로 되돌려보자. 롯데푸드는 2004년 충남 아산에 위치한 후로즌델리와 빙과류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롯데푸드의 공장이 서울 영등포에서 충남 천안으로 이전하면서 물류비 절감 효과가 있는 후로즌델리에 물량을 몰아주는 조건으로 단독 거래를 요청한 것이다. 후로즌델리는 기존 거래업체와의 계약을 끊었다. 거액의 은행대출을 받아 ‘맞춤형’ 생산설비도 갖췄다. 하지만 롯데푸드가 약속을 어기고 기존의 물량마저 줄이면서 거액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롯데푸드 갑질 논란의 핵심이다. 실제로 이 회사가 부도나기 직전인 2008년 한국감정원이 평가한 담보물 감정평가 금액만 61억원대에 이른다. 실제 피해액은 100억원이 넘는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당시 롯데푸드의 임원 회의록과 내부 관계자의 진술 등으로 볼 때 갑질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후로즌델리를 찍어내리기 위해 내부적으로 논의한 정황이 여러 자료나 증언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 직원은 “윗선 지시로 후로즌델리를 정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거래 중단 이후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후로즌델리는 거액을 투자해 제작한 생산장비라도 되사줄 것을 롯데푸드 측에 요청했다. 하지만 성능 테스트 결과 회사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회사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시 롯데푸드는 ‘테스트 제품의 59%가 불량이라는 이유로 기계설비 매입을 거절했다. 하지만 테스트 과정에서 생산된 불량 제품 상당수를 몰래 시중에 판매했다”고 지적했다.

 

“롯데 측에서 먼저 합의 제안”

이에 대한 잡음이 계속 일자 롯데푸드는 2014년 8월 후로즌델리 전은배 대표와 합의서를 작성했다. 보상 차원에서 합의금 7억원을 우선 지급하고, 이후 후로즌델리 또는 전은배 대표가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채택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합의서 내용은 5년 넘게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전은배 대표는 신용불량자 신분으로 공사판을 전전해야 했다. 여와 야를 막론하고 국회에서 롯데푸드의 갑질을 지적하며 파상공세를 펼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조경수 롯데푸드 대표는 10월7일 국감에서 “후로즌델리는 합의서 작성 당시 실체가 없고 부도난 회사였다. 적절한 피해 보상을 했음에도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해 왔다”며 “합의서의 ‘품질과 적절한 가격이 합당하면 롯데푸드가 도와주겠다’는 조항을 악용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후로즌델리 전은배 대표 측의 입장은 달랐다. 합의에 적극적인 곳은 오히려 롯데였다고 주변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회사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합의서 작성이나 초기 협상은 당시 롯데푸드 대표였던 이영호 롯데그룹 식품 BU장(사장) 주도로 진행됐다”며 “합의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해 줄 것처럼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말을 바꾼 것으로 안다”고 꼬집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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