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분 늘리는 국민연금, 독립성 확보는 ‘제자리걸음’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mw@sisajournal-e.com)
  • 승인 2019.10.23 08:00
  • 호수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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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재계 존재감 커지지만… 정부 입김에서 100% 자유롭지 못해

국민연금이 최근 대기업에 대한 지분율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면서 기업들의 긴장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과 맞물려 국민연금의 입김이 더욱 세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재벌닷컴 조사에 따르면 자산 상위 10대 그룹 상장사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지난해 말 7.83%에서 올해 9월말 8.23%로 0.4%포인트 상승했다. 그룹별로 살펴보면 포스코그룹 지분이 2.86%에서 4.01%로 1.15%포인트 올라 상승폭이 가장 컸다. 뒤를 이어 현대차(7.72%→8.27%), 삼성(8.63%→9.11%), SK(7.74%→8.08%), LG(8.57%→8.85%), 농협(9.53%→9.77%), 롯데(4.28%→4.49%) 순이었다.

재계 및 증권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대기업 위주로 지분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현재 경제 상황 등을 감안하면 당연한 흐름이다. 경제 상황이 워낙 안 좋고 불확실성이 커지다 보니 대형 우량주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국민연금의 1차적 목표는 무엇보다도 수익성”이라며 “현재 상황에선 대기업 위주로 투자하는 것이 안전하고 수익성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가 지난 9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가운데, 국민연금이 국내 대기업의 지분을 높이고 있어 주목된다. 사진은 2015년 열린 제일모직·삼성물산 주주총회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금융위가 지난 9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가운데, 국민연금이 국내 대기업의 지분을 높이고 있어 주목된다. 사진은 2015년 열린 제일모직·삼성물산 주주총회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재계 “대기업 경영 적극적 관여 부담”

하나 재계에선 이 같은 흐름을 심상찮게 보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주요 주주로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안정적인 투자와 동시에 대기업 경영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재계는 국민연금의 대기업 지분율 상승이 현재 금융위원회에서 추진 중인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과 맞물려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하게 되면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커지게 된다”며 “(지분율 상승은) 국민연금이 시행령 개정에 발맞춰 내년 주총 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고 말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5% 이상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주식 보유 목적에 따라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누고, 보고를 하는 방식과 관련해 차등을 두고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 추진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은 회사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응하거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정관 변경을 추진하는 경우 등은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에서 제외시키도록 하고 있다. 시행령이 개정될 경우 이 같은 행위는 일반투자 관련 행위에 해당돼 보고 의무가 완화된다. 쉽게 말해 해당 행위를 함에 있어 국민연금의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난 9월 금융위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다만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최근 해당 사안은 시행령 개정이 아닌 국회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일이라며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기금운용위원회 독립성 확보해야”

재계 및 정치권에선 국민연금이 기업들을 제대로 견제하고 시장의 인정을 받기 위해선 정부로부터 독립성 확보부터 이뤄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는 기금운용위원회다.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위원 중 차관이 4명이다. 또 국민연금 이사장도 참석해 정부 측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국민연금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보통 기금운용본부장은 정권 실세와 가깝거나 정권 사람이 온다는 것은 상식과도 같은 것”이라며 “기금운용과 관련해선 이사장보다 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을 짚어보면 왜 이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을 지낸 홍완선 전 본부장은 최경환 의원과 대구고 동기동창이고, 강면욱 전 본부장은 안종범 전 수석의 고등학교 및 대학교 후배로 알려져 정권 실세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정책위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금운용위원회에 정부 측 위원들이 너무 많다”며 “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돼야 시장의 신뢰도 생기고 수익성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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