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 1번지’에서 발생한 경찰관 사망 미스터리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2 08:00
  • 호수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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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2002년 전주 금암파출소 백선기 경사 피살 사건

2002년 9월20일, 추석 명절 연휴가 시작됐다. 경찰은 ‘명절 치안종합대책’을 수립하고 특별 치안 활동을 전개했다. ‘치안 1번지’인 일선 파출소의 긴장감도 더욱 고조됐다. 전주북부경찰서 금암2파출소 직원들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파출소는 전날부터 순찰을 한층 강화했다.

오전 0시50분쯤 관내 순찰을 마친 이창희 경사(53) 등 2명은 파출소 앞에 다다랐다. 그런데 어딘가 좀 이상했다. 파출소 안이 너무 조용했고, 근무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 경사는 의아해하며 출입문을 열었다. 그의 눈앞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혼자 근무를 서던 부소장 백선기 경사(54)가 흉기에 찔린 채 책상 옆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백 경사는 이미 많은 피를 흘린 채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가슴과 목 등 6군데나 흉기에 찔려 있었다. 백 경사가 허리에 차고 있던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착된 38구경 권총 1정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참혹하게 살해된 경찰관

경찰은 범인이 파출소에 침입해 백 경사를 살해하고 권총을 탈취한 것으로 판단했다. 추가 범행이 우려되자 일대에 비상을 발동했다. 전북경찰청은 대규모 인력을 배치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백 경사의 시신은 전북대병원에서 부검이 실시됐다.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과다출혈과 간 관통상으로 나왔다. 근무지에서 비명에 세상을 떠난 백 경사의 장례는 전주북부경찰서장으로 치러졌다. 경찰은 동료의 참담한 죽음 앞에 망연자실해하면서도 범인 검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사건 발생 직후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현장과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와 옷가지 등이 버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파출소 주변 도로, 인근 하수구, 건물 옥상, 공터 등지에서도 수색작업을 벌였다. 일부는 통신회사의 도움을 받아 백 경사 개인 휴대전화와 집, 파출소 신고전화 등에 대한 역발신 추적을 통해 용의자의 흔적을 찾았다. 또한 백 경사 살해범에게는 현상금 1000만원을 내걸고 제보를 받았다.

경찰 수사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다. 단속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자의 소행, 다른 범행을 위한 총기 탈취, 원한관계 등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따라 경찰은 사건 현장과 주변 인물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당일 알리바이 등을 확인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우선 사건 당일 파출소 안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가 작동되지 않아 사건 경위나 용의자 인상착의 등 결정적인 증거 확보에 실패했다. 당시 경찰서나 파출소에 설치된 CCTV는 대부분 비디오 캠코더여서 먹통일 때가 많았고 화질도 떨어졌다.

현장 정밀감식에서도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지문이나 유전자(DNA)를 찾아내지 못했다. 파출소 안에서 채취한 30여 개 지문과 족적은 직원들의 것으로 나왔다. 이 외에도 10여 건의 제보가 있었지만 용의자 특정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경찰은 수사 범위를 점점 넓혀갔다. 원한관계가 아니라 의외의 인물에 의한 우발적 범행일 수도 있다고 보고 인근 불량자와 정신병자, 전과자 등 300여 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탐문수사를 벌였다.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대규모 수사본부까지 꾸렸지만 수사 결과물은 초라했다. 이제 남은 희망은 시민의 제보였다. 이를 위해 현상금을 2000만원으로 두 배나 올렸다.

잔뜩 체면을 구긴 경찰은 우연찮게 사건 해결의 단서를 잡았다. 2003년 1월15일 전주 시내 한 음식점에서 음식물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20대 3명이 차례로 붙잡혔다. 경찰은 중학교 동창인 조아무개씨(21)와 박아무개씨(20), 김아무개씨(20·군복무)의 여죄를 추궁하다 백 경사 피살 사건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한다. 이 부분을 집중 파고들어 “우리가 죽였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2002년 9월20일 파출소 안에서 근무하다 피살된 전북 전주시 금암2파출소 백선기 경사의 영결식에서 동료경찰관들이 백 경사의 영전에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2년 9월20일 파출소 안에서 근무하다 피살된 전북 전주시 금암2파출소 백선기 경사의 영결식에서 동료경찰관들이 백 경사의 영전에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계 드러낸 경찰 수사

경찰에 따르면 조씨 등은 2002년 5월22일 전주 시내에서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몰다 백 경사의 단속에 걸려 압수당했다. 약 4개월이 지난 9월19일 오후 11시30분쯤, 이들은 오토바이를 찾으러 파출소로 찾아갔다. 이때 백 경사 혼자 근무 중이었고, “오토바이를 돌려 달라”며 승강이를 벌였다. 그러다 용의자 중 한 명이 소지했던 흉기로 백 경사를 살해하고 권총을 탈취해 달아났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내용을 토대로 용의자를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사건 발생 약 123일 만에 극적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와 탈취된 권총 등 직접적인 증거물을 찾지 못했다. 용의자들이 지목한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씨 등이 범인이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이들의 자백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검증 후 반전이 일어났다. 용의자들이 “고문과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자백을 했다”며 기존 진술을 뒤집고 말았다.

이들은 변호인을 통해 전주덕진경찰서 4층 체력단련실에서 주먹과 걸레자루로 뺨과 발바닥을 얻어맞았으며, 속칭 다리 벌리기 등 기합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수차례 구타를 당하고 20시간 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허위자백을 강요해 어쩔 수 없이 거짓 자백을 했다는 것이다.

2003년 2월 시민단체인 전북평화와인권연대는 수사본부장 등 10명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했다. 국가인권위는 수사기록, 변호사 접견기록, 덕진경찰서 소속 전·의경들의 진술, 용의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조사했다.

그 결과 “경찰이 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가혹행위에 의한 수사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범인 검거에 급급한 나머지 증거물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용의자들을 범인으로 몰아가려 했다고 본 것이다. 물론 경찰은 용의자들이 자백하는 과정에서 고문이나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결국 용의자 3명 중 조씨와 박씨만 절도 혐의로 2개월 정도 수감돼 있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당시 경찰은 용의자 3명을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합리적인 의심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먼저 이들이 파출소에 찾아간 경위부터 의아하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 등은 2002년 5월22일 무면허 상태에서 오토바이(88cc)를 타고 전주시 우아동 해금장 네거리 앞길을 지나다 백선기 경사에게 단속됐다. 백 경사는 무면허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탈 수 없다며 압류해 파출소에 보관했다.

용의자들은 파출소에 보관된 오토바이를 훔치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짰다. 한 명은 파출소 정문이 아니라 뒷담을 넘어 침입하고 다른 한 명은 정문으로 들어가 백 경사의 시선을 끌었다. 또 한 명은 길 건너편에서 망을 봤다. 하지만 오토바이에 자물쇠가 걸려 있어 끌고 나오지 못하자 파출소 안에 들어가 백 경사와 말다툼을 벌였고 이 와중에 흉기로 살해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본인 소유의 오토바이가 압류될 경우 정당한 절차를 거쳐 찾아가면 된다. 그런데 용의자들이 4개월이 지난 후에야 오토바이를 찾겠다고 한 것도 납득되지 않지만 오토바이 한 대를 훔쳐오기 위해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을 짰다는 것도 의아하다. 만약 오토바이를 훔치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가장 먼저 의심받는 것은 용의자 본인들이다. 더욱이 한 명은 파출소 안에 들어가 백 경사에게 신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증거는 없고 자백만 있는 용의자들

또 범행이 우발적으로 일어났다면 일단 도망가는 게 급선무다. 순찰을 나갔던 경찰관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용의자들은 시간을 들여 백 경사의 허리춤에 있던 권총까지 챙겨갔다. 권총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해서는 “권총을 가져올 생각이 없었는데 다른 친구가 가져왔다” “다른 친구가 가져오래서 가져왔다”며 진술이 서로 엇갈렸다.

범행 후에는 평소 숙식을 해결하던 가건물(폐업한 포장마차)에서 은신해 왔다. 이곳은 사건 현장에서 불과 80여m 정도 떨어져 있는 말 그대로 ‘코앞’이나 마찬가지다. 경찰관을 살해한 후 태연하게 범행 현장 인근에서 지냈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용의자들 중 조씨의 경우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IQ 54로 지능이 낮았다. 

이렇듯 조씨 등 용의자들을 이 사건의 범인으로 보기에는 모순점이 상당하다. 이들이 무혐의로 풀려나면서 경찰은 스스로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아울러 수사 동력이 크게 상실되면서 지금까지 18년째 장기 미제로 남았다.

한편, 1996년 8월 서울 송파구 잠실파출소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파출소에 흉기를 들고 침입한 괴한이 근무 중이던 부소장 조성호 경사(46)를 살해하고 실탄이 장착된 38구경 리벌버 권총을 탈취해 달아났으나 범인을 검거하지 못해 영구 미제사건이 됐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범인은 한 명이다 

일단 사건 현장에 복수의 범인이 침입한 흔적이 없다. 범인과 백 경사가 심하게 몸싸움을 한 정황도 없었다. 이것은 백 경사가 범인을 경계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더구나 파출소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민원인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만약 범인이 민원인을 가장해 파출소로 들어간 다음 백 경사가 빈틈을 보이자 순식간에 흉기로 찔렀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사건 직전 파출소 앞을 지나던 택시기사와 마을 주민 2명이 “파출소 안에 경찰관과 한 민간인이 있었다”고 진술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2. 철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범인은 용의주도하게 움직였다. 외부에서 파출소 동태를 살펴 백 경사 혼자 근무 중일 때를 노렸다. 파출소에 들어와서는 백 경사를 순식간에 6번이나 찔러 저항을 무력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지문이나 족적 하나 남기지 않았다. 도주할 때는 정문이 아닌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범인이 파출소 사정에 밝거나 사전 답사를 통해 도주로를 정했다고 볼 수 있다. 여러 정황을 보면 범인은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3. 범행의 목적은 권총 탈취다

범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파출소 안에 있는 경찰관을 노렸다. 만약 원한에 의한 살인이었다면 너무 무모한 행동이다. 파출소가 아니더라도 비무장 상태인 백 경사를 노릴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도 범행 장소를 상대가 무장 상태인 파출소 안을 선택했다. 여기에서 범인의 ‘목적’이 드러난다. 보통 경찰관이 순찰을 돌 때는 ‘2인1조’로 움직인다. 이 때문에 순찰 중인 경찰관의 권총을 탈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 권총을 탈취하기 위해서는 파출소 안이 더 수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날 당시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를 감안하면 돈이 필요한 범인이 추가 범행을 위해 권총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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