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진실, 그리고 설리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9 17:00
  • 호수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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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최진실도 최진리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 여성

이 글이 지면에 나갈 때쯤이면 최진리, 예명 설리의 장례식이 끝난 뒤일 것이다. 며칠 동안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분이 멍했다. 슬프기는 하지만 슬퍼만 해서 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슬픔의 결과 같진 않겠지만, 나는 이번 일에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설리의 실명이 최진리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나에게 이 죽음은 필연처럼 오래전의 이름 하나를 소환한다. 최진실, 그가 약물과용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 나는 평소 들어본 적 없던 최진실과 관련된 갖가지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도대체 당신들은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듣는 거예요? 그 이야기들을 증명할 근거나 증거가 과연 있나요? ‘척 하면 아는’ 그런 이야기 말고 진실을 알고 싶어요, 라고 저항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진실이고 뭐고 듣고 싶지 않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죽음을 앞에 놓고 가십을 입에 담는다는 현실 자체가 두려웠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어쨌거나 사람인데, 사람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말들이어서다. 그리하여 드라마 속의 상큼발랄하던 여배우가 아닌 인간 최진실의 삶을 찾아다니며 내가 만난 것은 한 용기 있고 기품 있으며 자기 운명에 당당하고자 애쓰던 진실한 영혼이었다. 캐릭터가 아닌 진짜의 영혼. 왜 최진실을 존경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그가 죽은 다음 비로소 나는 최진실을 제대로 알았고, 무관심했던 것이 미안했고 미약하나마 그의 삶이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도울 힘이 없었음에 안타까웠다.

ⓒ 시사저널 박정훈
ⓒ 시사저널 박정훈

최진실도 최진리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 여성

설리, 최진리. 이 죽음 앞에서도 나는 비슷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최진실에 대해서보다는 설리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것이 많다. 아이돌 스타임에도 TV에서 보면 그가 설리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그의 옷차림에 대해 가해지는 다양한 공격과 조롱을 알고 있었으며, 그의 당당한 대응에 즐거워했다. 그가 용기 있게 다양한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며 이제 연예계에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생겨난 것에 기쁜 마음을 지니기만 했지, 고통과 절망이 그 뒤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해 보았다. 페미니스타로서 그가 성취하고 있는 것만을 기꺼워했지 한류니 스타니 하는 이름에 가려 한없이 취약한 그 개개인의 인권에 내가, 아니 나도 관심을 지녔어야 한다는 당연한 일을 잊고 있었다. 최진실도 최진리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 여성들인데, 나는 그들을 하나의 대중적 기호로서 소비하고만 있었던 것이 아닌가. 악플과 질 나쁜 연예기사들을 개탄하면서도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처럼 영웅적으로 이겨낼 것이라고만 상상했지 무너져내리는 내면을 보지 못한 게 아닌가, 나는 감당 못 했을 상황을 너는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아닌가. 한 세대를 먼저 살아온 여성 선배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최진실을 놓쳐본 경험자로서. 종현(샤이니 소속 가수)을 놓치고 수많은 외침을 흘려들었던 것이다. 연대할 방법이 정말로 없었을까.

진실이 있고 진리가 있다. 이 이름들이 지닌 환기하는 힘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리인가를 숙고하게 한다. 진실은,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주체적이고자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잔인한 자들의 도시에 우리가 산다는 것이고, 진리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더 많이 관심을 기울이고 지켜보고 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길을 찾고 싶다. 또 놓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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