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사이’ 여수시-의회 사사건건 충돌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박칠석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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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부-시의회 반목,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여수시
시정추진 잦은 엇박자 ‘주요 현안’ 삐걱…‘불통행정’ 민낯 드러내
국립해양기상과학관 부지·만흥지구 임대주택사업 ‘갈등’ 고조

전남 여수시와 시의회가 주요 시책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민선 7기 이후 권오봉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공약사업이 의회에서 번번이 제동이 걸리는 등 양측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권 시장과 서완석 시의장이 취임한 이후 진모지구 영화세트장 건립과 낭만포차 이전사업 등 두 기관이 주요 시정 추진에 있어 목소리를 달리 한 사안은 수두룩하다. 최근에는 여수시의 국립해양기상과학관 건립 부지 제공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여수시 만흥지구에 추진 중인 공공지원 임대주택 조성사업을 놓고 강하게 부딪치고 있다.

 

여수시-의회, 국립해양기상과학관 부지 제공 ‘이견’

권오봉 여수시장이 14일 여수시청에서 국립해양기상과학관 건립을 촉구하는 시민청원과 관련해 답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여수시
권오봉 여수시장이 14일 여수시청에서 국립해양기상과학관 건립을 촉구하는 시민청원과 관련해 답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여수시

우선 양 기관은 여수시의 국립해양기상과학관 건립 부지 제공을 두고 이견을 보이며 격돌하고 있다. 시가 박람회장 내에 국립해양기상과학관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하자 시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그럼에도 시가 굴하지 않고 추진 실행력을 높이면서 접점을 찾기는커녕 되레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양상이다.

여수시는 국립해양기상과학관 건립 부지를 여수박람회장 아쿠아리움 옆 5000㎡를 정하고 매입 예산 70억원을 편성해 시의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는 지난달 24일 “국가시설물인 기상과학관 건립을 위해 시가 부지를 제공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부결했다. 국립해양기상과학관은 지상 2층, 3000㎡ 규모로 태풍·집중호우·해일 등 자연재해의 해상관측과 체험, 교육시설이 들어선다. 사업비는 부지비를 제외하고 266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권 시장 “시가 부지 제공해야” vs 시의회 “국가시설에 부지 제공 부당” 

그러자 권오봉 여수시장이 여론을 등에 업고 의회 압박에 나섰다. 권 시장은 14일 여수시청에서 국립해양기상과학관 건립을 촉구하는 시민청원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여수박람회장 활성화를 위해 박람회장 내에 국립해양기상과학관을 반드시 건립해야 하고, 시가 부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시장은 “국비 확보를 위해 시의회가 부지 매입을 위한 공유재산 관리계획을 의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 시장은 또 “시의회가 공유재산관리계획을 부결하는 과정에서 뭔가 오해가 있었다”며 “박람회재단으로부터 부지를 무상으로 받아야 한다는 논리도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기존에 있는 기상과학관 5개 모두 해당 지자체가 부지를 제공한 점을 고려하면 시가 제공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해양기상과학관은 시민사회가 기다리던 대표적 공익사업인 만큼 국가 예산을 확보해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명제다”고 강조했다.

시의회가 여수시의 부지 매입에 제동을 걸자 여수시가 운영하는 ‘열린 시민청원’에는 “국립해양기상과학관을 건립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청원 성립 기준인 300명을 넘은 455명이 서명했다. 

양 측은 돌산읍 진모지구에 들어설 영화세트장 건립사업을 두고도 의견차를 보였다. 여수시는 4월 제1회 추경예산에 진모지구 영화세트장 기반 정비예산 18억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시의회는 “사전보고와 의견 수렴이 없었다”며 전액 삭감했다. 시의회의 반대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린 시는 7월 초 2회 추경예산에 다시 영화세트장 사업예산 18억원을 편성했다. 1회 추경에 삭감된 예산이 똑같이 2회 추경에 올라오자 서완석 의장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며 공개 반대했다. 결국 영화세트장 예산안은 상하수도 기반시설 3억원만 반영됐고, 진입도로 개설 예산 15억원은 영화사가 부담 의사를 밝혀 전액 삭감됐다.

 

여수시 강행 만흥지구 LH 임대주택사업 두고 갈등 ‘고조’

여수시의회 제195회 임시회 1차 본회의 장면 ⓒ여수시의회
여수시의회 제195회 임시회 1차 본회의 장면. 사진 가운데 서완석 시의장 ⓒ여수시의회

두 기관의 충돌은 이뿐만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남 여수시 만흥지구에 추진 중인 공공 지원 임대주택 조성사업을 두고도 두 기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시의회는 “주민이 반대한다”며 여수시와 LH가 맺은 조성사업 협약을 파기할 것을 주장하고, 여수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시의회는 16일 만흥지구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공급촉진지구 조성사업 협약 파기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강현태 의원이 발의한 결의안은 표결 끝에 찬성 17, 반대 6, 기권 3으로 채택됐다. 강 의원은 “만흥 검은모래해변 배후부지 개발사업 협약 해지 이후 여수시는 직접 공영개발을 통해 만흥지구를 관광단지로 개발하기로 했고, 시의회가 관련 예산까지 의결했지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LH와 협약을 체결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여수시는 국토부와 LH에 일부 사업구역 제척 요청을 두 번이나 했지만, 국토부는 해당 지역 주민과 시의회, 시장의 제척 요구 등 지역 민심을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며 “주민들은 본인들의 재산권과 관련된 사항을 협약 이후에야 알게 됐다. 여수시는 주민이 반대하는 이 사업의 협약을 즉각 파기하라”고 촉구했다. 

 

시의회, 협약파기 촉구결의안 채택…시 “법적 구속력 없어”

이에 여수시는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시 관계자는 “LH와 맺은 민간임대주택 조성사업 협약은 관련법에 따른 협약이 아니라 성공적인 사업 추진을 위한 협약으로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며 “LH와 협약 파기는 법적 다툼과 행정 신뢰 실추 등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돼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여수시는 사업에 반대하는 중촌마을 주민들에게 이미 공문으로 해당 지역을 사업지역에서 제외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만일 LH가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중촌마을을 포함해 사업을 추진한다면 여수시는 사업계획을 거부할 수 있다”고 했다. 

당초 여수시는 지난 2013년부터 만흥지구를 관광단지로 개발하려 했고, 타당성 용역조사 등을 거쳐 전남도로부터 사업 승인까지 받았다. 사업은 2016년 12월 여수시가 민간사업자와 만흥 검은모래해변 배후부지 개발사업 투자협약을 체결하며 본격화하는 듯 했으나, 민간사업자가 예치금을 미납하며 협약이 해지됐다.

이후 여수시는 직접 공영개발을 하겠다고 의회승인을 받은 후 돌연 5월 말 LH와 만흥지구 택지개발 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47만4000㎡ 부지에 3578세대가 들어서는 ‘공공 지원 민간임대주택 공급촉진지구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사업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 뜻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만흥지구 택지조성사업반대대책위원회가 꾸려졌으며 “임대 아파트보다는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관광 배후단지로 조성해야 한다”며 사업을 반대하고 나섰다.

앞서 일부 시의원들도 여수시가 검은 모래 해변으로 유명한 만흥지구 임대주택 조성사업 계획을 여수시로부터 뒤늦게 듣고 아파트 조성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6월 당시 만흥지구 임대주택 조성사업 반대 결의안이 제출됐으나 표결 결과 부결됐지만, 서완석 의장 등 의원 15명은 반대 의견서를 국토부 등에 보냈다. 지난해 9월에는 시가 쓰레기와 교통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는 낭만포차 이전 사업비 5억원을 책정했는데 이 역시 시의회가 전액 삭감했다가 추후 통과시켰다. 

 

시장-시의장, 불통 리더십…의원들, 계파별 다른 판단 안건마다 대립

이처럼 여수시와 시의회의 잦은 견해차로 중요 사업에 제동이 걸리는 등 행정 난맥이 드러나자 일부에서 책임론이 일고 있다. 1차적으로 소통 부재의 중심에 있는 집행부 수장인 권 시장에게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권 시장은 지난 4월 복당했으나 당정 정책협의회를 두 차례 열었을 뿐 시의원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시의원은 “민선 7기 이후 시장과 의장이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독대한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민의 대표기구인 시의회를 존중하고 중요한 정책은 사전에 협의해야 하지만 권 시장을 비롯한 현 집행부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만흥지구 임대주택 조성사업 같이 의회와 협의과정 없이 시장 독단에 의해 추진된 사례가 많다. 이 같은 사안을 제어하는 행위가 바로 의회 본연의 기능”이라고 덧붙였다. 

불편한 관계에는 수뇌부의 ‘태생적 차이’라는 장벽도 놓여 있다. 권 시장은 행정고시 합격으로 공직에 입문한 후 기획재정부 재정정책국장, 전남도경제부시장, 광양만권경제청장 등을 거쳐 정계에 투신했으며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반면에 서 의장은 전남에서 두 번째 최장수 기초의원이다. 지방의원만 25년째다. 현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 상무위원과 여수갑지역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는 등 지역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시의회가 집행부와 갈등을 빚는 이면에는 7선 의장이 초선 시장이 이끄는 집행부를 길들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은 의회 무시·소통 부재, 의장은 독단적인 의회 운영

권 시장과 서 의장 등 수뇌부의 ‘리더십’ 문제도 엮여 있다. 일부 의원은 서 의장의 독단적인 의회 운영을 비판하고 있고, 일부는 권 시장의 의회 무시와 소통 부재에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두 사람을 향해 공동책임론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 의원은 “7선 의원인 서 의장이 의회의 맏형으로서 초선이나 재선 의원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여수시의회는 의원 26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이 19명, 민주평화당 3명, 무소속 4명이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권 시장과 서 의장 편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이는 계파별로 각기 다른 판단을 해 안건마다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일부 의원들의 독선적인 행동으로 집행부에 심각한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사건건 시와 시의회가 충돌하면서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불편한 시선이 적지 않다. 여수시 한 주민은 “시정 운영과 견제를 책임진 양 기관이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 기싸움으로 비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자주 부딪치다보면 정작 중요한 현안사업 등의 효율적인 집행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뒤따르는 만큼 지역발전의 대의를 위해 입장 차이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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