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공화국] “‘장난이었는데…’ 악플 심각성 못 깨달아”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4 10:00
  • 호수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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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2년째 ‘악플 추방’ 외치는 민병철 선플운동본부 대표
“학교·직장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악플 방지 의무 교육해야”

1980년대부터 ‘민병철 생활영어’로 영어 회화 교육 선풍을 일으킨 ‘교육자’ 민병철. 그는 12년 전인 2007년 악플 방지를 위한 시민단체 ‘선플운동본부’를 출범한 후 ‘선플 전도사’로서 전보다 훨씬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악플로 인한 유명 연예인들의 피해 사례를 접한 그는 제자들에게 선플 10개 달기 과제를 내주는 것을 시작으로 선플 운동을 퍼뜨려 나갔다. 좋은 언어를 사용한 국회의원들을 선정해 시상하고, 지난해엔 70여 개 시민단체와 손잡고 ‘악플·혐오 표현 추방 시민연대’를 발족하는 등 점차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최근 가수 설리의 사망으로 인해 악플 근절에 대한 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선플 운동에 관한 민 대표의 계획은 더욱 분주해졌다. 10월22일 시사저널과 만난 민 대표는 “늘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악플 없애자며 끓어오르다 이내 잊히길 반복했다. 이번만큼은 (악플 근절 분위기가) 그냥 증발해 버리도록 결코 내버려둘 수 없다”며 의지를 다졌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가수 설리를 비롯해 연예계에 악플로 인한 심각한 피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사건이 터지면 곧장 슬퍼하고 관심을 쏟으며 재발 방지를 촉구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유명인이 아닌 이들이 악플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땐 그나마의 관심도 적다. 이번에도 금방 잊고 나중에 다시 후회하게 될 일이 두렵다. 이번에야말로 좀 더 지속적인 ‘선플 인성교육’ 시행 등 악플 방지 대책을 제도적으로 정착시켜 악순환을 막을 수 있도록 국가와 개인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억에 남는 악플 피해 사례가 있다면.

“평생 식당을 하며 고생해 번 돈을 대학에 기부한 할머니의 기사에 ‘부자에게 왜 주나’ ‘정신 차리세요’ 등의 악플들이 달려 놀란 적이 있다. '기부 천사'로 알려진 가수 션과 배우 정혜영 부부의 기사엔 늘 '조용히 기부해라' '기부 이미지로 돈 버느냐' 등의 댓글이 달린다. 추석 연휴에 한 고속버스 기사가 위독한 할머니를 만나러 급히 고향에 가려던 군인을 '안내인 좌석'에 무료로 태운 사연을 공개했다가 악플에 시달려 사과문을 인터넷에 올린 사례도 있었다.”

 

“‘댓글 실명제’ 근본 해결책 될 수 없어”

선플운동본부에선 이러한 악플 사례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우선 악플 피해자들을 위해 100명의 변호인들이 무료 법률상담을 해 주는 ‘SNS인권위원회’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법무부의 의뢰로, 악플러 중 경찰 조사 후 재판에 기소되기 직전인 기소유예자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선플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선플 교육에 참석한 악플러들은 ‘가벼운 장난이었는데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많이 억울해한다. 악플의 심각성을 이렇게나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그 심각성을 더 알려야겠다는 걸 느낀다. 시민들에게 누구든 악플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선플 인성교육의 의무시행이 절실하다.”

포털사이트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포털과 SNS 사업자들은 많은 사람이 방문해 논쟁을 통해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을 당사 서비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인식하고 있으며, 그게 곧 수익과도 직결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정 숫자 이상의 악플 신고가 들어온 게시물에 대해서는 즉각 블라인드 처리하고, 심사를 통해 게시 여부를 확정하는 제도가 더욱 갖춰져야 한다. 확산될 때까지 늑장을 부린 후 일 처리를 하면 그 피해는 결코 복구되기 어렵다. 나아가 게시글을 작성할 때 부정적인 내용이 담겼을 경우 다시 숙고하고 제출할 수 있도록 경고 팝업을 띄우는 기술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 악플과 혐오 표현들을 걸러내는 기술이 현재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댓글 실명제를 도입하거나 댓글 기능을 없애는 등 방안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둘 다 손쉬운 방법이지만 악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인터넷 실명제는 우선 실효성이 적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해 또 다른 논쟁을 낳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외국계 인터넷 서비스에는 적용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개인정보 해킹의 위험도 있다. 댓글 기능을 없애면 뭘 하나. 수많은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SNS의 글쓰기 기능까지 막을 순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 결국 근본적 인식 개선이 답이다.”

 

“선플 운동 수출해 또 하나의 한류 만들 것”

외국의 경우 악플로 인한 피해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대표적인 예로 독일은 SNS에 올라온 악플을 신고한 후 24시간 안에 삭제하지 않으면 SNS 사업자에게 5000만 유로(약 657억원)의 벌금까지 매길 수 있는 법이 있다. 상당히 처벌 강도가 엄격하다.”

관련 법안들도 수년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 어떤 내용의 통과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나.

“현행 ‘허위사실에 의한 사이버명예훼손죄(최대 징역 7년)’와 ‘모욕죄(내용에 따라 최대 징역 5년)’ 형량은 결코 가벼운 수준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형량에도 불구하고 실제 판결에서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나오는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실제’ 양형을 강화해야 하며, 인터넷상 차별을 금지하는 별도 법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향후 악플 추방을 위해 어떤 구체적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학교나 기업,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업해 선플 캠페인을 활발히 진행할 예정이다. 최근 지자체 최초로 강남구청에서 선플 운동을 함께 하기로 약속을 했다. 나아가 ‘선플 인터넷 평화 운동으로 행복한 지구촌 만들기’라는 미션을 갖고, ‘선플 달기 1억 개’ ‘선플 전도사 1만 명’ 등 타이틀로 글로벌 선플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한 달여 전 필리핀 하원의원들을 만나 국회에서 좋은 언어를 사용하겠다는 서명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로 선플 운동을 ‘수출’할 예정이다. 선플 정신을 바탕으로 한 또 하나의 한류를 만들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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