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공정인가?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30 18:00
  • 호수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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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2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서 단연 돋보였던 단어는 ‘공정(公正)’이었다. 28회 언급된 ‘경제’의 뒤를 이어 ‘공평하고 올바름’이란 뜻을 지닌 공정이 27회나 언급됐다고 한다. 물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파동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는 해석에 이견을 달 생각은 없다. 다만 공정에 내포된 다층적 의미를 보다 철저히 숙고할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이다.

공정한 사회, 공정한 법, 공정한 제도를 그 누가 마다하리요만, 공정의 의미부터 공정의 실현 방식까지 구성원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이 주요 과제라는 사실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사회통합이 무엇이고 사회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에 대한 견해는 10인 10색이듯이 말이다.

공정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례 두 가지가 생각난다. 홑벌이 부부와 맞벌이 부부를 대상으로 부부관계의 전반적 만족도를 평가해 보면 맞벌이 주부가 전업주부보다 낮게 나온다. 이유인즉, 워킹맘의 경우 출근해 일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일해야 하는 가사와 양육 부담의 불공정함 때문으로 밝혀졌다. 반면 전업주부 입장에서는 ‘남편이 돈 벌어 오는 대신 자신이 집안일을 전담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하기에 만족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전업주부가 느끼는 공평함과 워킹맘이 느끼는 불공정함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 2013)에는 당시 20대들이 생각했던 공정함의 의미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일례로 저자가 제시한 사례 중에는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주장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 20대 목소리가 등장한다. 자신들은 정규직으로 들어가기 위해 피땀 흘려 노력해 왔는데 그들은 ‘날로 먹겠다는 것 아니냐’는 분노 가득한 목소리가 가감 없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사회적 정의를 향한 기대나 요구 없이 개인적 차원의 공정성만을 외치는 20대에 실망했다는 후기를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들의 공정성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0월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교육시설재난공제회에서 열린 전국 시도 부교육감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마친 뒤 대입 정시 확대와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0월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교육시설재난공제회에서 열린 전국 시도 부교육감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마친 뒤 대입 정시 확대와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정성을 외친 대통령의 연설 직후 교육부가 대입 정시 모집 비율을 30% 이상 상향 조정하는 안을 검토하겠노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정시 모집을 확대한다고 해서 대학입시의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는 솔직히 의문이다. 현재 고등학생들은 입시전형 예고제로 인해 해당 사항이 없을 테지만, 중학생 및 초등학생 학부모들 머릿속은 매우 복잡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현행 입시제도 아래서 수시와 정시를 동시에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정서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현재 정시를 준비 중인 수험생은 내신이 다소 불리한 특목고·자사고 재학생들 아니면 재수생, 삼수생이란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재수나 삼수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상식이다. 그렇다면 정시 확대는 입시의 공정함을 확대하는 효율적 수단일까?

실상 많은 대학들이 정시 확대를 주저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일부 명문대를 제외하고는 정시 합격생의 경우 보다 상위권 대학을 가기 위해 ‘반수생’을 선택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반수생이 빠져나가는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등록금까지 동결된 상황에서 적지 않은 재정 부담을 지게 마련이다.

각설하고, 공정사회 실현을 외치기 이전에 공정에 대한 인식이 결코 균질적이지도 동질적이지도 않다는 사실, 공정이란 우산 아래 실상은 복잡다기한 현실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어쩌면 제도적 차원의 공정과 개인적 차원의 공정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사실 등등을 충분히 탐색하고 깊이 성찰해야 함을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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