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이 무슨 차별?”이라고 말하는 이에게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6 12:00
  • 호수 156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과 영화로 들여다본 《82년생 김지영》

김훈의 《칼의 노래》(2007),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9) 이후 9년 만에 나온 밀리언셀러 소설. 고(故)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김수민 의원이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을 따 ‘김지영법’(남녀 임금 차별을 방지하고 남성의 육아휴직은 증진하는 법률)을 발의하고, 남성 버전으로 패러디한 ‘92년생 김지훈’이 여혐 논란을 일으키는 등 페미니즘 열풍을 견인하며 하나의 사회적 상징이 돼 버린 책.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다. 논란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많은 말이 쏟아졌다.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포털사이트 해당 영화 페이지에는 평점 테러와 악플이 쏟아졌다. 83년생 배우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을 연기한다는 이유로 공격의 대상이 됐다. 영화화를 막아 달라는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이 뜨거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가장 보편적인 이름 김지영

지영. 살면서 한번쯤 만나봤음 직한 이름이다. 실제로 82년에 태어난 여성 중 가장 많이 이름 지어진 게 지영이란다. ‘서울 변두리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 중’인 82년생 주부 김지영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의 의도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보통의 소설에선 인물이 특수하거나 특별한 상황에 놓여야 주인공이 되는데, 김지영씨는 너무 흔해 주인공이 됐다. 김지영씨 안엔 미정씨도 있고 경아씨도 있고 은정씨도 있고 주연씨도 있다. 여성을 대표한다.

소설은 김지영씨의 삶을 연대기적이고, 르포적으로 그려낸다. 신문과 통계 자료까지 활용해 지영씨로 대변되는 여성의 삶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콕 짚어낸다. 그래서 누군가는 더 공감했고, 누군가는 얼굴을 붉혔고, 누군가는 문학적이지 못하다 비판했다.

같은 이유로 인해 영화화가 쉽지 않은 소설이다. 기승전결도, 극적이거나 인위적인 사건도 딱히 없는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데는 적지 않은 공력이 필요하다. 배우 출신 김도영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는 원작의 큰 틀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영화만의 재미와 의미를 획득해 낸다. 건조하게 기술된 언어가 철수한 자리에 배우의 다채로운 표정이 들어서고, 문장들 사이에 숨어 있던 이미지가 적재적소에 배치되면서 영화적인 리듬을 탄다. 우려했던 감정 호소도, 질퍽이는 교훈 설파도 없어 반갑다. 담백하지만 호소력이 있어 종국엔 마음을 흔든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지영 역을 맡은 정유미와 남편 대현역 을 맡은 공유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지영 역을 맡은 정유미와 남편 대현역 을 맡은 공유 ⓒ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설과 어떻게 다른가

“김지영씨는 한 번씩 다른 사람이 됐다. 살아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죽은 사람이기도 했는데 모두 김지영씨 주변의 여자였다.”(소설 《82년생 김지영》 중)

‘빙의’라는 소설 속 설정은 영화에서 더 극적으로 살아났다. 웬만한 일에서 자기 소리를 내지 않는 지영(정유미)은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자기 안의 진짜 이야기를 한다. 눈여겨볼 부분은, 목소리를 내는 주체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오빠와 동생 뒷바라지하느라 자기 꿈을 포기한 엄마, 애를 낳다가 죽은 동아리 선배, 딸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준 게 미안했던 할머니. ‘빙의’라는 설정을 통해 소설과 영화는 여성의 삶을 확장시키고, 마주하게 한다.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지영의 남편 대현(공유)이다. 소설 안에선 배경에 그쳤던 대현은 스크린에서 다양한 감정의 결을 입고 전면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대현은 지영의 상황을 방관하지 않는다. 아내의 외로움을 이해하려 애쓰는 동시에, 이상 증세를 보이는 아내의 모습이 두려워 바르르 떨기도 하고, 말 못 할 고민을 숨죽여 견디다 눈물도 쏟는다. 여성에 너무 편중됐다는 반응이 있었던 소설을 떠올렸을 때, 논란의 여지를 일견 덜어내는 설정이다. 공감의 폭을 넓히는 설정이기도 하다.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과 우울증은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남성에게도 적지 않은 고민이자 삶의 무게다.

작중 화자인 정신과 의사의 인지 부조화를 보여주는 결말로 씁쓸한 뒷맛을 안겼던 소설 속 엔딩과 달리 영화는 희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김지영에게 ‘괜찮아 더 좋아질 거야’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대로, 소설에는 없는 지영의 앞날을 그려 넣기도 한다. 다만 주인공의 서사에 나름의 결말을 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지 후반 에피소드가 다소 작위적으로 다가오는 건 아쉬움이다. 담백하면서도 정신을 확 깨게 만드는 소설의 결말을 좋아했을 관객들에겐 호불호의 여지가 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질투할 가장 큰 지점은 김지영을 연기한 정유미라는 배우다. 우리 주변에 실제 살아가는 인물처럼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든 정유미는 여러 인물에 빙의하느라 난이도가 꽤 높은 김지영을 유연하게 그려낸다. 《도가니》 《부산행》에 이어 다시 만난 공유와도 호흡이 좋지만, 더 인상적인 건 ‘김지영의 엄마 오미숙’으로 분한 김미경과의 연대다. 50년생 오미숙씨는 자신의 삶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딸의 모습이 안타까워 울고, 82년생 김지영씨는 희생만 해 온 엄마의 삶이 서글퍼 운다.

 

82년생 설정이 지니는 의미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이 작품에 쏟아지는 비판의 목소리 중 하나가 “62년생, 72년생 김지영이었으면 이해하겠는데, 82년생이 무슨 차별?”이라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소설은 이 부분을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소설 《82년생 김지영》 P.132)

이는 소설이 62년생이나 72년생이 아닌, 82년생을 극 안으로 끌어들인 이유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이기도 하다. 80년대는 임신중절수술 합법화로 성비 불균형이 정점을 찍은 시기다. 82년생이 커나가는 시기엔 남녀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고, 호주법도 폐지됐다. 여성이란 이유로 대학을 못 가는 상황도 거의 사라졌다.

분명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김지영으로 대변되는 무수히 많은 여성은 초등학교 시절 (당연하다는 듯) 남자들 뒤로 번호를 부여받았고, 대학 졸업 시기엔 고용시장에서 성차별을 겪었고, 아이를 낳은 후엔 일과 육아의 기로에 섰다. 2012년부터 실시된 무상보육 제도는 집에서 아이를 보는 주부들에게 ‘맘충’이라는 요상한 수식어를 부여하기도 했다.

분명 제도적으로 많은 것들이 나아졌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불합리한 것들을 겪은 세대. 그럼에도 “82년생이 무슨 차별?”이라는 일부의 시선 안에서 차별을 차별이라 언급하는 게 철 지난 돌림노래처럼 인식된 세대, 인식의 변화가 제도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적잖은 혼란을 겪은 세대가 바로 김지영씨의 세대다. 《82년생 김지영》과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위의 사실을 새삼 환기시킨다. 어쩌면 이것은 이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성취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