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미래] ‘통합 리더십’ 꿈꾸는 이낙연의 TPO는?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9 10:00
  • 호수 156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영 대립 격화될수록 그의 온건·중도 성향 돋보여
‘강력한 팬덤 구축’ 숙제도 남겨둬

최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만나러 오는 외부 인사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정대철·권노갑 등 정치원로뿐만 아니라 대학교수 등 분야별 전문가들의 방문도 잦아졌다. 총리실 주변에선 이 총리가 주말마다 대학교수들로부터 경제 과외를 받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각계각층 인사를 만나 의견을 듣고 이를 국정에 반영하는 것은 총리 본연의 업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총리의 행보가 여론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왜일까. 

10월은 ‘정치인 이낙연’에겐 운명의 시간이다. 당장 10월28일이 지나면 이 총리는 1987년 10월 직선제 개헌 이후 최장수 총리에 오른다. 직전 기록은 김황식 전 총리(2010년 10월1일~2013년 2월26일, 880일)가 갖고 있었다. 기록 경신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총리는 대법관·감사원장 출신인 김황식 전 총리와는 결이 다른 삶을 살아왔다. 사회생활은 언론계에서 시작했지만, 그보다 오랜 시간을 정치인으로 보내왔기에 ‘최장수 총리’라는 타이틀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미래의 영광을 만들 중요한 요소다.

10월24일 일본의 아베 총리와 만나 약 21분간 회담을 가진 것도 주목받을 만한 일이다. 국교 수립 이후 최악의 상황에 놓인 한·일 관계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이 총리가 나선 것이다. 만약 보다 진전된 방향으로 한·일 관계의 개선이 이뤄진다면 이 총리의 지지도는 한층 더 올라갈 수 있다. 안정적인 차기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87년 개헌 이후 ‘최장수 총리’로 기록

‘경우에 맞게 옷을 입는다’는 차원에서 패션업계에서 마케팅 전략으로 자주 쓰는 말 중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의 줄임말인 ‘티피오(TPO)’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비단 패션업종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정치, 더 나아가 정치인 이낙연에게도 TPO는 굉장히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간(Time)’과 관련해 이 총리에겐 두 가지 궁금증이 뒤따른다. 내년 4월 21대 총선에 출마할지, 또 언제부터 대선 도전을 본격화할지 여부다. 굳이 한 가지를 더 꼽는다면 대중은 그가 최장수 총리라는 ‘명예’이자 ‘멍에’를 내려놓고 언제 정치권으로 복귀할지도 궁금해한다.

가장 큰 관심사인 대권 도전부터 살펴보자. 이 총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대권 도전과 관련해 이 총리는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올여름 시사 주·월간지 정치담당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총리는 ‘대권 도전에 나설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NCND(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음)”라고 대답했다. 최근 청와대 만찬에 초청돼 총리공관을 찾은 한 동교동계 인사는 “‘대통령 한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권유에 큰 소리로 웃으며 ‘아이고, 형님 그만 좀 하십시오’라고 대답하는 걸 보면서 ‘대권에 아주 뜻이 없는 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이 총리를 만나온 한 지인도 “이 총리는 자기 뜻을 드러내 놓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면서도 “총리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종종 마음속에 큰 꿈을 갖고 있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당초 여권에서는 7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9월 비서관·행정관, 11월 정치인 출신 장관의 당 복귀가 유력하게 검토됐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선 논란으로 국정이 두 달간 마비되면서 여권의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현재로선 이 총리가 11~12월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당으로 복귀할 때 함께 돌아가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이 총리가 이미 여러 차례 문 대통령에게 자신을 포함한 내각 개편을 건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총선에 출마할 장관들을 내보내고 임기 중반 국정을 쇄신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문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말씀드렸고, 이에 대해 대통령이 특별한 말씀이 없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이 총리의 희망과 함께 여권의 고민이 함께 담겨 있다. 이 총리 본인은 다음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복귀하고 싶겠지만, 문제는 대타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무총리 자리는 인사청문회 등 국회 인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인선에 따른 부담감이 적지 않다.

 

총리 주변 “비례대표로 나서 전국 선거 책임져야”

두 번째, 장소(Place)도 여권을 고민스럽게 만든다. 당으로 복귀할 경우 이 총리에게 어떤 역할을 주어야 하는지, 또 차기 총선에서 이 총리의 출마지로 어디가 적당할지가 관심거리다.

그동안 언론에선 이 총리의 총선 출마 후보지로 서울 종로와 세종시를 유력하게 점쳐왔다. 두 곳 모두 관가를 끼고 있는 정치·행정의 중심지라는 상징성이 있다. 서울 종로의 경우 현 지역구 의원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거취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총리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다. 하지만 최근 이 총리 주변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총선에 나온다고 해도 지역구 출마는 안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민주당의 전신인 새천년민주당에서 대표를 지낸 정대철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오랫동안 당을 떠나 있던 이 총리로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그동안 ‘자기희생이 적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면서 “당과 문재인 정부에 헌신한다는 이미지를 쌓기 위해서도 지역구에 출마해선 안 된다. 비례대표는 물론 선대위원장도 맡아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 총리의 한 측근도 “서울 종로나 세종이라는 특정 지역에 출마하면 선거 기간 동안 다른 지역 선거를 도울 수 없다”면서 “비례대표로 출마하되 선대위원장을 맡아 총선판 전체를 진두지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수는 야당 대권주자들의 행보다. 차기 대선에서 자웅을 겨뤄야 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 종로에 출마할 경우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셋째, 상황(Occasion)에 대한 궁금증은 이 총리가 추구하는 시대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현재 여권의 대권 레이스에서 이 총리는 ‘나홀로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갤럽이 10월1~2일 전국 성인 1004명에게 차기 정치 지도자로 누가 가장 좋은지를 물었는데, 가장 많은 응답자인 22%가 이 총리를 꼽았다. 

이 총리는 정권 초기부터 차세대 주자로 거론된 케이스가 아니다. 초기만 해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 김경수 경남지사가 선두권에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법원 판결로 대권 가도에 치명상을 입으면서 선두자리를 이 총리에게 내준 모습이다. 친문계의 적극적 지지를 받던 조국 전 장관도 지난 두 달간 계속된 여론 검증으로 심한 정치적 내상을 입었다. 그렇기에 정치권에선 현재 이 총리의 지지율에는 뚜렷한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여권 지지자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고 본다.

종합하면, 이 총리의 지지도가 대세론으로 확대되기 위해선 강력한 팬심(Fan心), 팬덤(Fandom)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만 지금의 지지율이 답답한 박스권을 뚫고 대세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택환 경기대 특임교수는 “역대 대통령 중 국민들이 좋아하는 지도자상으로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꼽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자신만의 정치철학을 구현했다는 점”이라면서 “박근혜, 문재인 두 전·현직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박정희,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만을 입고 당선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선거전략가인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총리 자리에서 내려와 대중의 시야에서 벗어난 이낙연을 떠올렸을 때 무엇이 떠오를지 고민해야 한다. 리더십이란 게 논리정연함만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역대 대통령 중 이 총리처럼 정치, 행정, 지방자치를 두루 경험한 인물을 찾기란 힘들다. 이력상 안정감을 주는 것은 여권 대권주자 중 단연 ‘톱’이다. 더군다나 이 총리는 원내에선 다섯 번의 대변인과 사무총장, 대표비서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정치 성향은 중도에 가깝다. 이러한 성향은 양날의 검이다. 친정인 동아일보를 비롯해, 중앙일보 등 유력 신문들은 최근 이 총리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현 정부의 이념이 지나치게 왼쪽(진보)으로 치우쳐 있으며 그런 면에서 이낙연이 가장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쓴 중도 표심 공략의 ‘재등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전부터 이 총리를 국무총리감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청와대 소식에 정통한 한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비상사태가 아닌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됐다고 해도 섀도캐비닛에 ‘국무총리 이낙연’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0월21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10월21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력한 호남 기반으로 TK·PK 공략 나서는 전략 취할 듯

이 총리는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광주제일고) 때까지 호남에서 학교를 다녔다. 네 번의 국회의원(16~19대)도 모두 고향에서 당선됐다. 더군다나 국무총리 직전까진 전남지사를 지냈다. 그랬기에 이 총리에게 ‘호남’은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다. 동교동계와 박지원 의원을 중심으로 한 ‘대안신당’(가칭), 정동영 대표의 민주평화당, 여기에 손학규 대표가 이끌고 있는 바른미래당까지 이 총리를 중심으로 정치적 연대를 모색할 수 있는데, 그 한가운데 ‘호남’이라는 정치적 연결고리가 있다.

이 총리는 2010년 손학규 민주당 대표 체제에서 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바른미래당 내 호남계를 이끌고 있는 박주선 의원(국회부의장)과는 광주제일고, 서울대 법대 동문이다. 서울법대는 같은 해에 들어갔다. 그렇기에 벌써부터 민주당 내 호남계를 중심으로 “김대중 정부 이후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로 넘어간 정권을 호남이 다시 되찾아올 때가 됐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게 세상 이치다. ‘이낙연=호남’이라는 구도는 표심의 확장성이 떨어진다. 현실적으로 호남 단독으로만 정권을 가져오긴 어렵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 “이 총리가 내년 총선에서 여권엔 ‘험지’로 불리는 동쪽(TK·PK·강원) 선거를 책임지려 한다”는 소문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성공 가능성은 낮지만, 한번 해볼 만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미 있는 의석수를 얻어낼 경우, 이 총리의 위상은 단숨에 호남이 아닌 전국적 스타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1953년생)보다 법적으로 한 살, 실제로는 두 살 많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연륜이라는 보너스가 뒤따르지만,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다. 2030세대와 호흡하는 모습이 언론에 잘 비춰지지 않은 것은 이 총리 스스로 잘 생각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에 알려진 이 총리의 좌우명은 두 가지다. 우선 ‘가까이서 듣고 멀리 본다’는 의미의 근청원견(近聽遠見)이 있다.

그와 함께 ‘뜻은 높게 몸은 낮게’라는 말도 그의 오랜 좌우명이다. 지금 이 총리는 몸을 최대한 낮추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낮출 수만은 없다. 우린 그동안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그쳤던 고건·이수성·이회창·정운찬 등 역대 총리들의 대권 도전 실패를 수없이 봤다. 타이밍을 재다 낮은 몸이 더 낮아져 ‘새 인물’이라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이 총리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 특집 ‘이낙연의 미래’ 연관기사 

[이낙연의 미래] 유머 넘치지만, 지나친 엄격함에 점수 잃기도

[이낙연의 미래] “균형감·정의감·유능함·소통능력 갖춘 인물”  

[이낙연의 미래] “대선후보 되려면 신사 아닌 투사 돼야”

[이낙연의 미래] 진영대결 속 돋보이는 ‘스펙트럼 인맥’

[이낙연의 미래] ‘역동성의 파도’는 잠룡 선두를 내버려 둘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