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 안전 위협하는 ‘취한 조종사들’과 ‘취한 시스템’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10.30 08:00
  • 호수 156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끊이지 않는 ‘음주 비행’ 적발…제각각 운영되는 측정 시스템은 무용지물

항공 안전에 또 빨간불이 들어왔다. 최근 이스타항공 조종사의 ‘음주 비행’이 논란이 된 가운데, 타 항공사에서도 조종사들의 음주 적발 사례가 나왔다는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밝혀졌다. 국토교통부가 음주 비행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항공종사자에 대한 사내 음주 측정을 시행하고 있지만 음주 적발 사례는 계속 나오고 있다. 오히려 음주 측정에 적발되더라도 비행을 나갈 수 있는 부실한 시스템 때문에 항공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음주 측정과 적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국토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진에어 부기장이 비행 직전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 기준치인 0.02%를 넘는 수치가 적발돼 90일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제주공항에서 음주 숙취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업무를 하던 제주항공 소속 정비사가 자격정지 60일 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항공 안전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자 국토부는 올해 9월부터 모든 조종사와 정비사 등 항공종사자가 매 비행·근무 시작 전에 의무적으로 음주 여부를 측정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종사자의 15%에 대해 무작위로 불시 측정을 했지만, 전체 종사자로 그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음주 비행의 단속을 강화하고, 항공 안전을 증진한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 일러스트 김세중
ⓒ 일러스트 김세중

티웨이·에어서울에서도 음주 적발

그러나 각 항공사의 음주 비행 사례는 계속 적발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티웨이항공과 에어서울에서 정부 당국의 음주 측정 강화 방침이 시행된 9월 이후 음주 적발 사례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티웨이항공 부기장은 비행 전 음주 측정에서 ‘FAIL(실패)’ 판정이 나와 징계 조치를 받았다. 에어서울에서도 적발 사례가 나왔다. 1차 음주 측정에서 비행 불가 판정이 나왔고, 음주 관리자를 통해 2차 측정을 한 결과 0.038%의 수치가 나왔다. 에어서울은 현재 해당 건으로 인사위원회가 진행 중이다. 티웨이 관계자는 “음주를 하고 운항한 사실은 현재까지 없었으며, 문의 내용에 대해서는 내부 사항이라 전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티웨이와 에어서울의 경우 ‘음주 비행’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불가 판정이 나오고도 비행을 간 사례도 있다. 이스타항공 기장이 음주 측정 결과 ‘FAIL’ 판정이 나왔는데도 정밀 측정을 하지 않고 승객 180여 명을 태운 제주행 비행기를 운항한 것이다. 운항 불가 판정을 받고도 비행을 할 수 있었다는 데서 시스템의 구멍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이 기장은 비행 후에 회사로 돌아와 측정 기록 조작을 시도하기도 했다.

음주 비행이라는 위험한 행동에 대해 현직 종사자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실제로 2008년 술을 마신 기장이 운항하던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 여객기가 공항에 착륙하려다 추락해 탑승자 88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한 항공사 기장은 “비행 전에 술을 마신다는 것은 조종사들의 승객에 대한 책임감 문제다. 음주 전수 측정이 시행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적발자가 생겨나는 것을 보면, 예전에 일부 조사를 했을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음주 상태에서 비행에 임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음주 비행을 할 경우 피해자는 승객들이 된다. 특히 음주 측정에서 적발되고도 비행을 나간 것은 승객 안전을 전혀 담보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모니터링 시스템 문제가 핵심적으로 지적된다. 국토부가 음주 측정 시스템을 통해 각 항공사가 운항종사자들의 음주 측정을 하게끔 시행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운영되는 시스템 자체가 허술하다는 것이 항공종사자들의 전언이다. 한 항공사의 기장은 “어느 회사는 음주 측정 동영상을 촬영하고, 어떤 회사는 하지 않는다. 자체 측정이다 보니 운영이 제각각”이라며 “옆 사람이 대신 측정하고, 해당자는 부는 시늉만 해도 ‘PASS(통과)’가 뜨는 경우가 있다. 측정 시스템에 허술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항공사에서는 음주 측정을 해서 ‘FAIL’이 뜰 경우, 해당 적발자는 그날 출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주 측정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측정 시기도 정해진 바 없다. 음주 측정을 마친 조종사가 비행 전 음주를 하는 것을 승객이 목격한 사례도 있었다.

 

“항공사 자체 측정, 제재 규정 필요”

항공 소송을 전문적으로 대리하는 법무법인 덕수의 김지혜 변호사는 “국토부의 상시 적발이 어렵기 때문에 항공사의 자체 점검을 통해 음주 운항을 막으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그 시스템이 목적에 맞게 운영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과 제재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스템의 운영 기준이나 방법을 설정해야 한다. 대리 측정이나 기록 조작을 막기 위해 측정 시 동영상 촬영을 필수로 하는 등의 규정이 필요하다”며 “기록 조작, 기록 은폐, 음주 측정에 걸리는 경우 휴업 처리해 위반자를 누락시키는 방식 등 음주 측정 시스템 운영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한 규정이 부재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일부 항공사에서는 출근 시에 음주 측정을 하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는데, 출근을 한 뒤 운항하기 전 음주를 하는 사례들이 최근에도 있었다”며 “이러한 시스템의 공백이 생기지 않게 음주 측정을 하는 장소와 시기를 설정하는 등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토부의 불시 점검을 통해 음주 상태가 적발됐을 경우에는 항공안전법에 의해 자격정지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사내 측정을 통해 음주가 적발된 경우 처벌에 대한 규정은 없다. 항공안전법과 시행령은 사내 음주 측정 및 적발자의 제재와 관련한 내용을 규율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항기술기준에서 ‘운항승무원과 객실승무원은 국내에서 출발하는 국내·국제 운항을 위한 브리핑 시작 전에 음주 여부를 검사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을 뿐이다.

사내 측정을 통해 음주가 적발되면 항공사 규정에 따른 징계만 받게 된다. 이조차도 회사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부의 불시 단속에 적발된 경우에는 자격정지 등 처분을 내리지만, 항공사의 자체적인 적발 결과와 관련해서는 처벌 규정이 없다. 사내 음주 측정에서 적발될 경우, 회사 규정에 따라 징계가 진행된다. 내부 직원 관리 차원”이라고 했다. 다만 “사내 음주 측정을 하지 않았거나 기록이 누락된 경우에 대해 제재하는 규정을 만들어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고, 미비한 부분에 대해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객기를 이용하는 승객과 항공 안전을 위해 허술한 음주 측정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연합뉴스
여객기를 이용하는 승객과 항공 안전을 위해 허술한 음주 측정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연합뉴스

日, 항공사 재량 음주 검사 ‘법으로 의무화’

그러나 사내 음주 측정 적발 건에 대한 국토부의 대응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음주 관행의 개선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일본 정부는 국적항공사인 일본항공(JAL)에 사업개선 명령을 내렸다. 올해 운항 전 음주 검사에 걸린 조종사가 국제선 기장을 포함해 3명이나 나왔기 때문이다. 사업개선 명령은 사업허가 취소, 사업정지 명령에 이어 세 번째로 무거운 행정처분이다.

JAL은 지난해에도 음주 검사를 시행하지 않고 운항에 나선 사례들이 수차례 확인돼 사업개선 명령의 중징계를 받았다. JAL은 음주 조종사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고 사내에 ‘알코올 대책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대책을 내놓았다. 일본 정부는 올해 1월부터 항공사의 재량에 맡겼던 조종사들에 대한 음주 검사를 법으로 의무화하고, 조금이라도 알코올이 검출되면 승무를 금지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전문가들과 현직 종사자들은 이와 같은 개선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심종수 중부대 항공서비스학과 교수는 “국토부가 불시 점검에 나서고 있지만 단속 인원은 전체 비행 편수에 비해 극히 적다. 각 항공사에서 음주 측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만 재량에 맡겨 엄격하게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이어 “음주 측정 시 본인을 인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측정 데이터가 바로 국토부와 공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법 개정을 통해 음주 측정을 강화하고, 비행 직전 음주 측정을 다시 함으로써 법적인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승객이 전원 사망한 사례가 있는 것처럼 음주 운항은 굉장히 위험하다. 승객과 항공 안전을 위해 음주 비행을 법적으로 철저하게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