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진보꼰대는 수구보다 더 나쁘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6 07:00
  • 호수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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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총선 불출마 선언한 이철희 민주당 의원 “386세대, 이제 정리돼야”

‘조국 정국’의 여파가 여전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각종 의혹 속에 10월14일 결국 사퇴했지만, 올해 국회 국정감사는 여전히 ‘조국 감사’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국정감사 역시 조국으로 시작해 조국으로 끝났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전략통’으로 통하며 향후 당을 이끌어나갈 차기 주자로 기대를 모았던 이철희 의원(비례대표)이 전격적으로 내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10월15일 불출마 선언문을 발표한 이 의원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어느새 무기력에 길들여지고, 절망에 익숙해졌다”며 “처음 품었던 열정도 이미 소진됐다. 더 젊고 새로운 사람들이 새롭게 나서서 하는 게 옳은 길이라 판단한다”고 밝혔다. 대중적 인지도가 매우 높아 재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이 의원이었던 탓에 그의 불출마 선언이 정치권 안팎에 일으킨 파장은 컸다. 

시사저널은 10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 의원을 만나 인터뷰했다. 올해 국감을 “최악”으로 평가한 그는 “정치가 전혀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조국 국면에서 사실상 손을 놓다시피 한 당내 상황에도 실망했다”며 “(공천에 얽매일 일이 없으니) 이제 (당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조국 사태’ 과정에서 당에 실망 컸다”

올해 법사위 국정감사를 평가하자면.

“최악이다. 경상도 말로 하자면 덧정없다(정떨어진다). 정책에 대한 논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오로지 정쟁만 난무했다. 툭하면 나오는 얘기가 왜 삿대질하냐, 반말하냐는 말이었다. 하루가 조국으로 시작해서 조국으로 끝났다. 답답한 상황이었다.”

여당에서는 검찰의 조국 수사 착수에 대해 문제를 많이 제기했다.

“검찰의 행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이다. 대통령이 지명하고 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는 인사권 행사 과정에서 검찰이 개입한 경우는 없었다. 검찰이 정치행위에 개입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표현했다. 그동안 검찰에 대해서는 정치검찰이라는 용어를 썼다. 검찰이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치권에 끌려갔기 때문에 쓴 용어인데, 이번에는 검찰정치로 불러야 할 것 같다. 검찰이 알아서 정치하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검찰이 정치행위를 하면 안 된다.”

조 전 장관이 사퇴하기까지 청와대나 여당의 결단이 늦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조 전 장관을 비판하는 데 온 언론이 나서지 않았나. 거의 1면에서부터 논설면까지 조 전 장관을 속된 말로 조지는 내용으로 채웠다. 조국이 져야 할 허물에 비춰봤을 때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생각했다. 민주당은 마지막 국면에 가서는 사실상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듯한, 사실상 손을 놓아버렸다. 당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당에 대한 불만이 불출마 결심으로 이어졌나.

“조국 국면 마지막에는 당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민심 체감도가 가장 높다는 정당이 이 문제에 대해 나 몰라라 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것이 가장 나를 힘들게 했다. 정면돌파할 것이었으면 그 기조에 맞게 국민을 설득했어야 했다. 또 일부에서 주장하듯 빨리 정리해야 했다면 적극 나서서 빨리 정리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스탠스였다. 여당은 책임정당이다. 과연 책임을 지는 자세였냐는 점에서 회의적이었다. 이 모든 게 불출마 선언에 이르게 된 배경이다.”

‘내로남불’이란 표현도 썼다.

“우리가 야당 때 주장했던 논리가 있는데 여당 입장이 되니 반대의 자세를 취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웃기지 않나.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니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사법부의 수치란 표현을 썼다. 조 전 장관의 동생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니 야당도 사법부의 치욕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보니 창피했다. 윤석열 총장이 과도한 정치행위를 한 것에는 비판적이지만, 윤 총장 청문회 당시 ‘최적의 인사’라고 치켜세운 것은 민주당이었다. 국민 보기에 웃기지 않겠나.”

 

“진보는 유능해야…‘진보꼰대’는 역사 걸림돌”

총선에만 불출마하는 것이고, 임명직 등 다른 위치에서 뭔가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향후 계획은 없다. 만약 쓰임새가 있다면 쓰여지겠지. 하지만 우리 당이 조 전 장관 사퇴 이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서 본격적으로 쓴소리를 할까 싶다. 주변에서도 ‘공천 부담이 없으니 할 얘기 좀 하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당에서 어떤 자리를 받아서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을 각오하고 쓴소리를 하고 싶다.”

조국 사태가 소위 ‘86세대’의 몰락을 의미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때 진보의 상징이었던 386세대가 오히려 기득권이 됐다는 비판인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386세대가 정치적으로 2000년대부터 20여 년간 정치권에 몸담았다. 현재 당 수뇌부나 부처 장관으로 386세대가 진출하지 않았나. 이쯤 되면 그들에게 충분히 기회가 있었고, 냉정하게 공과를 평가받아야 한다. 과잉대표되는 부분이 있다면 정리하는 것이 맞다.”

386의 과잉이 낳은 부작용은 무엇일까.

“20~30대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없다. 386세대가 정치적으로 과잉대표되면서 현재의 20~30대는 과소대표된 것이다. 20~30대가 지금 얼마나 어렵나. 하지만 정치적 의사결정에 이들의 의사는 반영되지 못한다. 386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으니 그런 것이다. 386의 비중을 과감하게 줄이고 20~30대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386세대가 20여 년간 정치권력 안에서 상당히 장기 집권했다. 이제는 386의 포션(비중)을 자발적으로 대폭 줄여서 후세대가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86의 마지막 임무는 후세대에 대한 후견 기능이다. 이들을 보살펴 정치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보진영도 과거 적폐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보가 기득권에 연연하면 진보가 아니다. 그건 진보꼰대다. 이건 더 나쁘다. 자기확신을 갖고 꼰대짓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논리에 갇혀 젊은 층의 이야기를 공감하지 못하면 진보가 아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보수를 낡은 보수 혹은 수구라 표현하지 않나.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란 것이다. 이들보다 높은 기대를 받기 때문에 더 많은 비판을 받는 것이다. 무능한 진보라면 역사 발전에 걸림돌이다. 진보는 유능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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