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지금 진도군에선…국비전용으로 수백억 물어낼 판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10.3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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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 군수 권력’이 빚어낸 민낯 행정
감사원, 급수선 국비 다른 사업에 전용 확인
군수 지시에 보조금 손댄 ‘영혼없는 공무원’

전남 진도군이 국가 보조금을 딴 데 썼다가 군민혈세 수백억원을 페널티로 물어낼 처지가 됐다. 낙도 주민의 식수를 실어 나를 급수선 건조를 위한 국비를 무단으로 여객선(차도선)을 건조했다는 국가예산 전용 의혹이 감사원 감사에서 사실로 드러나면서다. 감사원은 최근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전환기 취약분야 특별점검 결과’에서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승인을 받지 못한 도서종합개발사업을 부당하게 추진해 집행된 보조금을 관련법에 따라 환수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정부 보조금이 급수선 건조가 아닌 차도선을 짓는데 쓰였고, 사업 목적에 맞게 사용된 국비는 한푼도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진도군은 3년 넘게 여객선 운항 중단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 섬마을 주민들을 위한 불가피한 적극적 행정조치였다고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진도군의 무모함이 화를 자초한 꼴이다. (관련기사 시사저널 2018년 9월13일자 '[단독] 국가 예산 제멋대로…진도군 배 돌려막기 논란', 10월 2일자 '차도선 늪 빠진 진도군, 배 돌려막기 후폭풍에 진퇴양난' 보도 참조)

 

‘황당한 행정’ 40억원 다른 사업 전용, 200여억원 물어낼 판

진도군이 정부 승인 없이 국비를 전용해 지은 여객선(차도선) 가사페리호 ⓒ시사저널 정성환
진도군이 정부 승인 없이 국비를 전용해 건조한 여객선(차도선) 가사페리호 ⓒ시사저널 정성환

칼자루를 쥔 국토부의 결정 여하에 따라 진도군은 최대 수백억원을 부담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국토부가 교부결정 취소를 하면 보조금 40억 원에다 이자와 5배 이내의 제재부가금이 부과된다. 이 경우 진도군이 물어내야 할 금액은 최대 200여억원에 이른다. 더욱이 결정취소 이후 1개월 이내에 전액 납부해야 하고, 지체되면 가산금까지 붙는다. 재정자립도 13.8%에 자체수입이 250억원 정도에 그치고 있는 진도군 재정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경우의 수다. 반면에 국고보조금 반환 결정을 받으면 보조금 40억원과 이자만 돌려주면 된다. 현재 국토부는 교부결정 취소를 할지, 아니면 보조금 반환 결정을 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도군은 국고보조금 반환 결정을 받기 위해 국토부와 협의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군 관계자들은 지난달 말 페널티 부분의 감액을 건의하기 위해 국토부 등을 다녀왔으며, 이번 주 중에 익산국토관리청을 방문할 예정이다. 완전히 다른 분야에 국고보조금이 사용된 것이 아닌 만큼 참작할만한 사유가 있다는 것이 진도군의 입장이다. 어려운 재정형편도 감안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진도군은 교부결정 취소를 ‘검토하라’는 감사원 처분에 대해 국토부가 재량의 여지를 활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잘 풀릴지는 미지수다. 

진도군 관계자는 “국토부에 국고보조금 반환금 감액 등을 건의했으나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받았다”며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세워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국토부와 익산국토관리청의 처분만 기다릴 뿐 이렇다 할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토부와 익산국토관리청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며 원론적인 입장이다. 국토부는 지난 9월 26일 관계자회의를 갖고 상황파악에 나섰다. 국토부는 줄곧 관계법령에 따라 국고 반환조치와 페널티 부과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을 진도군에 직간접적으로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도군의 목적이 ‘선의’라고 하더라도 국가 예산의 임의사용은 ‘불법’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국고보조금 반환금 감액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여서 진도군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동진 군수 탓인가, ‘주의조치’ 통보

국가예산 용도 임의 변경 논란에 휩싸인 진도군 청사 전경  ⓒ진도군
국가예산 용도 임의 변경 논란에 휩싸인 진도군 청사 전경 ⓒ진도군

이번 감사에서 이동진 군수가 주의 조치를 통보받은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의’는 선출직에 대한 징계권이 없는 정부가 내릴 수 있는 사실상 가장 강한 행정조치다. 반면에 이 군수의 지시를 이행한 공무원들은 비교적 가벼운 주의조치를 받아 대조를 보였다. 감사원은 이 군수를 이번 일의 지시자로, 관계공무원들을 보조자로 보아 결재권자인 군수책임이 그만큼 무겁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감사보고서는 ‘감사결과 문제점’이라는 별도 항목을 두고 이 군수(DP)를 주체로 적시하고 있다. 

감사원은 우선 이 군수가 도서종합개발계획 변경승인을 받지 못한 사실을 보고받고도 기존 도서종합개발계획에 맞지 않는 사업계획을 결재해 추진토록 한 점을 지적했다. 또 기존 선사나 다른 민간 선사의 선박이 가사도와 진도 본도를 운항하도록 하면 주민의 교통 불편 해소뿐만 아니라 선박 건조비용을 아낄 수 있었는데도 그 기회를 놓치게 한 책임도 물었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3월 가학~가사도를 운항하던 민간선사가 갑자기 민원을 이유로 운항중단을 목포해경에 신고하자 금광채굴 운반선을 이용해 내왕하던 가사도 주민들의 집단민원이 쇄도했다. 민선 자치단체장으로서 호환마마 보다 무섭다는 게 ‘주민 민원’이다. 이 군수와 진도군으로서는 민원해결이 당면과제였다. 이 군수는 2016년 2월 교통 불편을 해소해 달라는 가사도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가사도와 진도 본도 간을 운항하는 여객선 건조를 약속했다. 이어 그는 민원 해결책 마련을 주무부서 등에 주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소불위, “국토부 불승인 보고받고도 군수가 결재했다”

군수의 지시가 떨어지자 일은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군수의 대 주민 약속 및 지시사항 이행과 교통 불편에 따른 민원을 해소한다는 이유에서다. 담당부서는 그해 6월 제3차 도서종합개발계획에 반영된 급수운반선 건조사업(60톤, 40억원)을 가사도 도선 건조(150톤, 30억원) 및 기반시설 정비사업(10억원)으로 변경하려고 전남도를 거쳐 국토교통부에 제3차 도서종합개발계획의 변경을 신청했다. 

하지만 당국의 제동에 걸렸다. 국토부는 당시 행정자치부의 의견을 들어 ‘국가예산으로 여객선을 운항하고 있는 보조항로에 가사도가 포함돼 있으므로 이를 위한 신규 여객선을 건조하는 것은 지역발전특별회계 지원 제외 사업’에 해당한다는 사유로 변경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 진도군은 이 같은 내용의 문서를 전남도로부터 통보받아 이 군수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 군수는 이를 무시하고 강행했다. ‘가사도 차도선 건조계획(안)’을 그대로 결재해 추진하게 했다. 진도군이 국토부와 행안부에 신청한 개발계획 변경 신청이 반려된 지 17일만이다. 하려고 마음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무소불위 군수권력’의 민낯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3차 도서종합개발계획에 반영된 급수선 건조 예산을 빼다가 차도선을 짓고 4차 도서개발종합계획에서 차도선 명목으로 예산을 확보한 뒤 급수선을 만들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다는 게 진도군의 판단이었다고 시사저널을 만난 담당자는 실토했다. 

때마침 4차 도서종합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여서 이 계획에 차도선 건조 사업비를 포함시키면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계산도 했다. 실제 진도군의 의도대로 차도선 건조 사업비가 이 계획에 반영됐다. 문제는 제3차 도서종합개발 계획을 통해 확보한 급수선 사업비 40억원 가운데 27억 1000만원을 끌어다 먼저 여객 운송 등 다목적 기능을 갖춘 150여 톤급 차도선을 건조하면서 국가보조금 무단 전용문제가 불거졌다. 국토부가 급수선을 지으라고 국비를 내줬지만 임의로 사업계획을 변경해 여객선을 건조하는 데 쓴 것이다. 그럼에도 이 과정에서 군수가 위법행위를 결제했는데도 누구 하나 직언하는 관료가 없었다. 오히려 ‘무소불위 군수’의 민원 해결 지시에 부랴부랴 대책마련을 위해 보조금에 손댔다. 

 

지역 내 비난여론 확산 “군수, 수사의뢰해야” 

국토부가 보조금 환수방안 마련에 착수한 가운데, 지역 내 비난여론은 확산되고 있다. 상식 밖의 행정이 이동진 군수에게서 불거진 탓이다. 이 군수는 민선 5기인 2010년부터 9년째 진도군정을 맡고 있는 3선 군수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한국토지공사와 전남개발공사 사장을 지내는 등 공직사회에서 잔뼈가 굵었다. 때문에 누구보다 법치행정 준수와 국가보조금 집행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일각에서는 예산용도 임의 변경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이 군수에 대한 제재조치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며 수사의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주민은 “군수에 관한 감사원의 처벌 수위가 낮다”며 “단체장 전횡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수사기관에 고발해 직권남용 등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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