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켓 믿고 샀는데 ‘짝퉁’이라고요?”
  • 차여경 시사저널e 기자 (chacha@sisajournal-e.com)
  • 승인 2019.11.07 10:00
  • 호수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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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커지는데 가품‧위조품 단속은 제자리…전문가들 “통신판매사업자 책임 강화해야”

“두 달 넘게 사용했던 쿠션팩트가 사실 가짜였어요.”

지난해 말 한 온라인 오픈마켓에서 I사의 쿠션팩트를 구매한 김아영씨(29)의 하소연이다. 김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가짜 화장품 구별법’이라는 게시글을 봤다. 혹시나 싶어 오픈마켓에서 산 쿠션팩트 일련번호를 확인했는데 해당 제조사에서 만든 제품이 아닌 가품이었다”며 “화장품은 얼굴에 직접 바르는 건데 그동안 짝퉁 화장품을 사용했다니 기분이 안 좋았다”고 토로했다.

위조상품 압수액 규모 4819억원

한국은 온라인 쇼핑의 중심지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올 1~8월 주요 인터넷 쇼핑 상위 5개 서비스 결제액은 35조7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결제액 1위를 기록한 옥션·G마켓은 11조4000억원이었다. 쿠팡은 10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7% 증가했다. 11번가, 위메프, 티몬이 뒤를 이었다. 대형 포털 네이버의 결제액은 대략 13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늘었다.

온라인 쇼핑 시장이 커지고 있음에도 ‘짝퉁’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판매자들이 자유롭게 상품을 등록할 수 있는 오픈마켓 특성상 진품이 아닌 가품이 올라와도 검열과 제재가 쉽지 않은 탓이다. 판매자들은 ‘진품급 제품’이라는 단어로 교묘하게 규제를 피해 가기도 한다. 국내 중소업체들과 소비자들은 오픈마켓 가품 문제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전 규제와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특허청 분석 결과 최근 10년(2010년~2019년 7월)간 오픈마켓에서 판매된 상품 중 위조상품으로 압수된 물품은 모두 1130만 개, 압수액은 4819억원 규모다. 그중에서도 화장품이 78만8000여 건, 건강식품류 64만2000여 건, 의약품이 58만9000여 건, 가방이 33만8000여 건이었다. 하지만 형사입건 수는 2000여 건에 그쳤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오픈마켓 가품 판매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여전히 논란은 뜨겁다. 지난 10월1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관세청·통계청·조달청 국정감사에서 재차 오픈마켓 가품 판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영문 관세청장은 “지속적으로 온라인 오픈마켓 등을 살펴보고 있다”며 “관련 인력 및 예산 증액과 함께 개선을 하겠다”고 답변했다.

제품을 판매하는 중소기업, 자영업자들도 오픈마켓 가품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시계산업협동조합은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픈마켓에서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짜리 명품시계의 모조품이 2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상품 수도 500여 종에 달한다”며 “국내 업체들은 수입산에 밀리고 가짜 명품 시계에 밀리는 처지다. 가짜 제품이 유통되면 국산 시계 입지가 좁아진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오픈마켓 특성상 판매자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에서 판매업자가 거짓, 과장된 사실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이커머스나 오픈마켓은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사업자’가 아닌 ‘통신판매중개업자’다. 제품 판매자와 소비자들이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제공하는 역할인 탓에 면책이 인정된다.

국회에도 오픈마켓에서 가품이나 위조품이 판매되지 않도록 막는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현재 계류 중인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통신판매중개업자들에게도 거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24일 대표발의한 관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사전예방에 더 무게가 실렸다. 이 법안은 관세청이 오픈마켓과 판매업자가 현행법을 이행하는지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공표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두 법안 모두 국회 계류 중이다.

김 의원은 “오픈마켓은 국민 소비생활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으나, 오픈마켓을 통한 가짜상품, 부정수입품 등의 유통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 우려가 지속된다. 판매업자의 가짜상품 등 판매에 대해 오픈마켓은 법적 책임이 없어 한계가 있는 실정”이라며 “외국상품 판매자와 관계인 등의 판매·영업활동에 대해 점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관세청장이 오픈마켓 내에서 이뤄지는 판매행위 등을 점검해 그 실태를 소비자에게 알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오픈마켓도 자체적으로 가품과 위조품 판매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대형 오픈마켓들은 판매 상품을 등록할 때 기준이 맞지 않는 제품은 삭제하거나, 소비자 불만 접수 인력을 늘리는 등 대안을 내세웠다. 일각에서는 중개 플랫폼에 과도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이커머스 산업을 위축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전자상거래업계 한 관계자는 “이커머스 플랫폼은 판매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거래가 특징이다. 그러나 플랫폼에 과도한 법적 규제를 부과한다면 오히려 거래 흐름이 둔화될 수도 있다. 검열이 아닌 예방 형태의 안전망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전자상거래법·관세법 개정안 국회 계류 중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오픈마켓 피해 소비자를 보호하는 법적 안전망을 강조하고 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오픈마켓 가품 판매를 막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결국 통신판매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불법행위를 근절할 수 있도록 사업자를 압박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면 가품 판매 행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며 “모든 불법 판매를 막지는 못하겠지만 플랫폼 사업자의 법적 책임을 확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 사무총장은 이어 “판매업자가 가짜상품을 파는 불법행위를 했을 때 처벌도 약하다. 상법을 위반한 범법자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가품을 판매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처벌이 더 무거워야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전반적으로 전자상거래의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했을 때 가품 판매 등 불법행위들이 자연스럽게 정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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