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파 대해부④] ‘이념 양극화’에 설 자리 잃어가는 중도
  •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5 07:30
  • 호수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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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도·무당파층 유권자, 비율 크지 않고 성향도 다양해

최근 미국 정치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개념 중 하나가 ‘이념 양극화(ideological polarization)’ 현상이다. 미국의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에 소속된 정치인들의 이념 성향이 과거에 비해 좌우 양극단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만 해도 가장 보수적인 민주당 국회의원의 이념 성향은 가장 진보적인 공화당 국회의원의 이념 성향보다 더 보수적이어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공유하는 영역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보수적인 민주당 국회의원의 이념 성향이 가장 진보적인 공화당 국회의원의 이념 성향보다 더 진보적이어서 두 정당 간 의견 조정 및 합의 도출에 필수적인 ‘중간지대’가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미국 정당 구도의 변화는 유권자들의 이념 성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치인 및 정당의 메시지를 소화해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한다. 그런데 메시지를 생산하는 정당이 이념적으로 양극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 역시 과거에 비해 이념적으로 편향된 보도를 일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 성향의 유권자는 폭스뉴스로 대표되는 보수 성향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이념적 입장을 강화하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 성향의 유권자는 노골적으로 진보적인 시각을 앞세우는 매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라는 가장 극단적인 성향을 보인 인물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건이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정치권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양극화의 흔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10월 현재, 과거에는 지나친 좌편향 입장으로 이해될 만한 정책들을 제안하는 엘리자베스 워런과 버니 샌더스 후보의 지지율이 공고한 반면,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을 대표하는 조 바이든 후보의 지지율이 조금씩 내려가는 현상은 민주당을 조금 더 이념 스펙트럼의 왼쪽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오른쪽과 왼쪽으로 움직임에 따라 소외되는 중도 성향의 무당파층 유권자들이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념적으로 온건한 유권자들을 결집하는 제3세력, 새로운 정치운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이유는 대략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중도 성향의 유권자 혹은 무당파층 유권자 비율은 그다지 크지 않다. 둘째, 중도 성향의 유권자 세력이 있다 해도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성 때문에 그들이 대안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10월17일 댈러스에 있는 아메리칸항공센터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왼쪽 사진). 10월27일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뉴욕 시민들이 헤럴드 스퀘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P 연합
트럼프 대통령이 10월17일 댈러스에 있는 아메리칸항공센터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왼쪽 사진). 10월27일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뉴욕 시민들이 헤럴드 스퀘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P 연합

중도·무당파, 대안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기 어려워

‘중도 성향 유권자(moderate voters)’와 ‘무당파 유권자(independent voters)’는 명백히 구분되는 개념들이다. 중도는 스스로 보수 성향도 아니고 진보 성향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반면, 무당파는 미국의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을 모두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집합이다. 이념 성향이 중도라고 해서 반드시 무당파여야 하는 이유가 없고,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유권자가 반드시 중도 이념 성향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무당파 유권자를 공화당 지지자 혹은 민주당 지지자에 비해 이념적으로 온건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일부 무당파 유권자들은 공화당 지지자보다 더 보수적일 수도 있고, 민주당 지지자보다 더 진보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유권자가 무당파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간단한 설문 문항에 대한 답을 기준으로 무당파층을 찾아낸다. 그런데 많은 설문에서는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하는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재차 호감을 갖거나 지지할 의사가 있는 정당이 있는지를 묻곤 한다. 이 후속 질문에서도 호감 혹은 지지를 표하고 싶은 정당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무당파층이 되고, 이 질문에서 공화당 혹은 민주당에 호감을 느낀다고 답하는 응답자들은 약한 정파성을 띤 유권자가 된다.

그런데 지지 정당 유무를 묻는 첫 질문에 지지 정당을 밝힌 유권자와 두 번째 질문에서 특정 정당에 대해 호감 혹은 지지를 약하게 표현하는 유권자 간에 정치 행태 및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에서 큰 차이가 없음을 보고하는 연구들이 많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 논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다고 밝히는 응답자 모두를 무당파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중 적지 않은 일부는 특정 정당에 대한 약한 선호를 보이고 있다. 실제 무당파층의 비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적다.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 ‘제3세력’ 찾기는 꿈에 불과

이념 양극화가 공고화되면 서로 경쟁하는 정치 세력 간의 생산적인 대화가 어려워진다. 상대방을 정당한 경쟁자로 보지 않고, 제압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적대시하는 경향이 생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 간에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설전을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설사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 해도,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꺼리게 된다. 이념 양극화 현상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온건하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행위를 도덕적으로 더 바람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문조사에 의거해 선거전략을 짜고, 자료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실제보다 더 큰 규모의 무당파 혹은 중도 성향의 유권자가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정치인들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유권자들도 설문 작성 도중 빈번히 거짓말을 한다.

중도 성향의 유권자 혹은 무당파 유권자가 적다는 사실은 곧 대다수의 미국 유권자들이 현 정당 구조에 만족하고 있다는 말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적지 않은 미국 유권자들이 기존 양대 정당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에 보다 더 이념적으로 온건한 입장을 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공화당에는 조금 더 오른쪽으로, 민주당에는 조금 더 왼쪽으로 움직여 달라고 각각 목소리를 높이는 세력이다.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 이 양대 정당을 ‘넘는’ 제3세력을 찾겠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대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양대 정당 내부의 분파들의 움직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 입장을 견제하는 온건한 공화당 세력이 힘을 얻을 수 있을까? 2018년 연방하원에 입성한,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는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 당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내년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고민해 봐야 할 화두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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