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한국영화 서사 펼쳐나갈 여성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4 14:00
  • 호수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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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감독 박남옥에서 한국 영화 미래 보여줄 신예 감독들

한국 영화계에서 자신의 시각을 보여주며, 영화계의 기대를 받고 있는 많은 여성 감독들이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전까지, 한국영화계에서 자신의 영화를 연출한 여성 감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끊임없이 자질과 능력을 의심 받아와야 했고, 제작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발이 닳도록 뛰어다녀야 했던 감독들이 있었다. 그렇게,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영화사가 시작됐다.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은 박남옥이다. 단 1편의 감독작만을 남겼지만, 최초의 여성 감독이라는 수식어만으로 큰 상징성을 띤다. 그가 알려진 것은 1997년 제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복원 상영한 《미망인》(1955)을 통해서다. 1950년대, 여성 감독에게 선뜻 연출을 제안하는 제작자가 없어 제작비를 스스로 조달해야 했고, 인맥을 동원하고 발품을 팔아가며 어렵게 영화를 꾸려냈다. 갓난아기를 등에 업은 채 촬영 현장을 누비던 박남옥 감독의 도전은 이후 여성 감독들이 영화 현장에 우뚝 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박남옥의 뒤를 잇는 두 번째 여성 감독은 자택에서 의문사한 한국 최초 여판사를 모델로 한 영화 《여판사》(1962)로 데뷔한 홍은원이다. 여성 영화인으로서는 드물게 충무로 도제 시스템을 통해 전형적인 감독 수업을 받은 인물이다. 최은희는 1965년 《민며느리》로 데뷔하면서 세 번째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자신에게 고착됐던 지고지순한 여성상이라는 배우로서의 한계를 《민며느리》(1965)등 3편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돌파하려 했다. 기획자로 경력을 시작한 황혜미는 1970년 《첫 경험》으로 감독에 데뷔했지만, 현재는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충무로 도제 시스템을 거친 이미례 감독은 1980년대에 활약한 유일한 여성 감독이다. 《수렁에서 건진 내 딸》로 1984년 데뷔한 후 당시의 다른 여성 감독들보다 월등히 많은 작품을 연출하며 영화에 매진했지만 결국 영화계를 떠났다. "억지로 쿼터 맞추려고, 장사하려고 한국영화를 찍는 분위기도 싫고, 청소년 영화감독으로 꼬리표가 붙는 것도 싫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왼쪽부터)박남옥 감독, 임순례 감독, 윤가은 감독, 김보라 감독 ⓒ 연합뉴스·뉴스뱅크이미지·엣나인필름 제공
(왼쪽부터)박남옥 감독, 임순례 감독, 윤가은 감독, 김보라 감독 ⓒ 연합뉴스·뉴스뱅크이미지·엣나인필름 제공

충무로에서 주목받는 신예 여성 감독들 

임순례 감독이 등장한 것은 영화계 입문의 폭이 훨씬 넓어진 1990년대의 환경을 보여준다.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우중산책》(1994)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1996년 데뷔작 《세친구》를 연출했다. 한동안 휴지기 이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으로 건재함을 과시했고, 이후 《제보자》(2014), 《리틀포레스트》(2018)에 이르기까지 활약을 보이고 있다.

향수 어린 시선으로 409만 관객을 동원한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2002)도 한국영화사에 이정표를 남겼고, 정재은 감독은 《고양이를 부탁해》(2001)로 2000년대 스무 살을 맞이한 여성들이 세상과 화해하는 과정을 여성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제 여성 감독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신인 여성 감독들이 국내와 해외 영화제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한국영화를 책임질 연출가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집》(2019)의 윤가은, 《벌새》(2018)의 김보라, 《메기》(2018)의 이옥섭, 《아워 바디》(2019)의 한가람 감독이 그들이다.

첫 장편 데뷔작 《우리들》(2015)의 성공에 힘입어 《우리집》을 내놓은 윤가은 감독은 어린 소녀들의 시선을 스크린에 그대로 담는 연출 방식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김보라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벌새》는 올해 가장 주목받은 한국영화 중 하나였다. 영화 《벌새》는 전 세계 27관왕이라는 신화를 썼고, 수없는 상찬이 쏟아졌다.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연출가 중 한 명인 이옥섭 감독은 문소리가 출연한 《메기》를 통해 또 한 번 이름을 알렸다. 단편 《장례난민》으로 제16회 미장셴 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작품상 영예를 안았던 한가람 감독은 지난 9월 개봉한 《아워 바디》를 통해 여성 관객들의 공감대를 자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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